토니상과 박천휴, 그리고 윌 애런슨
토니상을 품고 서울에 도착한 박천휴와 윌 애런슨. 두 창작자가 맞이한 특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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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휴가 입은 재킷은 Egonlab. 팬츠는 Helmut Lang. 부츠는 Mcqueen. 윌 애런슨이 입은 팬츠는 Ann Demeulemeester. 니트와 셔츠, 타이, 신발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늘 컨셉트는 ‘윌휴 콤비 인 서울’입니다. 서울의 감정을 담은 한 곡을 추천한다면
윌 애런슨(이하 윌) 영화 <Sabrina>(1995) 주제곡,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Sabrina> 앨범이 떠올라요. 서울은 여전히 로맨틱한 도시니까요. 박천휴(이하 휴) 최근 흥미롭게 들은 곡은 코르티스의 ‘What you want’. 멤버들이 LA에서 스스로 비트를 찍고 가사를 쓰는 모습에서 서울의 생동감이 겹쳐 보였어요. K팝 문화에서 다양한 크로스 컬처를 능숙하게 섞어 내는 에너지가 멋져서 어젯밤에도 계속 들었습니다.
제78회 토니 어워즈에서 작품상, 극본상, 작사음악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까지 6관왕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 속에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인간 클레어의 관계처럼, 휴와 윌의 작업실에 AI 조수가 있다면 어떤 기능이 가장 필요할까요
윌 테라피스트요.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 관점을 잃지 않는 건 참 어려워요. 그래서 AI가 철학가나 상담가 혹은 종교적 스승처럼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준다면, 그게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어시스턴트일 것 같네요. 휴 작가는 글만 쓰면 되는 직업인 줄 알았는데, 막상 작품을 완성하고 공연이 이어지면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창작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드는 게 두렵더라고요. 샤워를 하다 가도 ‘우리 본업에 집중하려면 얼마나 가지치기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걸 대신 걸러주고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알려주는 AI가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걸 어떻게 믿고 맡길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요(웃음).

‘윌휴 콤비’의 시작은 뉴욕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죠. 이 만남은 운명일까요
휴 이제는 너무 익숙한 사이죠. 2012년 데뷔부터 햇수로 따지면 13년을 함께했으니까요.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쑥스럽고, 행운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절로 흘러간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고, 다듬어온 관계예요. 우정이든 협업이든 연애든 결국 노력 없이는 유지되지 않거든요. 윌 천휴를 만나기 직전에 저는 커리어를 완전히 바꿀 만한 큰 기회들을 놓쳤어요. 당시 실망이 컸죠. 이미 우리는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를 함께했고, “이렇게 된 김에 새로운 작품을 시작해 보자”고 했어요. 그게 <어쩌면 해피엔딩>이었어요. 돌아보면, 그런 좌절들이 오히려 저를 이 길로 이끌었어요. 인생은 정말 예측 불가능하죠. 아, 천휴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야기합니다. 그게 장점이기도 한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예요.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감각이 예민하고 섬세하다는 것이 장점이죠
휴 저는 자존감이 낮아서 자기자랑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 친한 극작가 한정석 씨가 한 번은 이렇게 말한 적 있어요. 제가 다른 공연 포스터나 의상 디자인까지 꼼꼼히 보며 의견을 내는 걸 보더니 “이건 네가 비주얼 감각이 있어서 가능한 거야. 사실 그게 축복이자 저주일 수 있어”라고요. 글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그 부분만 신경 쓰면 되니까 편한데, 여러 분야에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더 잘 보인다는 거죠. 뮤지컬은 본질적으로 협업 예술이라 모든 걸 내 마음에 들게 만들 수 없잖아요. 연출조차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데, 하물며 다른 영역은 말할 것도 없죠. 그래서 늘 타협해야 해요. 정석 씨는 제 고민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아. 오히려 나는 여러 분야에 감각이 없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고 말해줬어요. 그 말이 큰 힘이 됐어요. 내가 예민해서 힘든 게 아니라, 그냥 그만큼의 감각이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죠.
윌은 편곡, 작곡 등 창작 뮤지컬의 음악에 기민한 감각을 쏟고 있죠
윌 맞아요. 제 전공은 음악이에요. 학부 시절 초반에는 과학도 공부했지만, 결국 극본과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제가 뇌과학이나 의학을 전공했다는 소문을 들고 오는데 사실이 아니예요(웃음). 저는 음악 쪽에 완전히 매혹됐어요. 예술에 유혹당한 셈이죠.

재킷과 팬츠는 모두 The Row.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예술에 유혹당한 두 사람은 이야기를 어떻게 꿰매어 가나요
윌 작곡할 때는 보통 작은 스케치들을 몇 가지 만들어서 천휴에게 들려줘요. 그러면 천휴가 ‘이 장면에는 이 소리가 어울린다’는 식으로 피드백을 주고, 저는 그 의견을 반영해 곡을 발전시켜 나가요. 휴 제가 ‘이건 좋아, 이건 별로야’ 하고 취향대로 고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희는 대본을 함께 쓰니까, 어떤 장면에 어떤 소리가 필요한지에 대해 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윌이 초안을 들려주면, 그중 우리가 논의했던 감정이나 상황에 가장 가까운 곡을 고르고, 거기서 또 발전시키는 식으로 작업합니다. 그래서 훨씬 더 유기적으로 협업이 이뤄져요.
그 유기적인 협업인 <어쩌면 해피엔딩>이 10월, 한국에서 10주년 공연을 앞뒀습니다. 헬퍼봇과 인간관계를 다루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까요
휴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기본적으로 연민을 느껴요. 다른 사람들이 불쌍해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 자신을 향해서도 그렇습니다. 외로울 때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울까, 왜 더 행복하지 못할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잖아요. 그래서 캐릭터를 만들 때도 그런 연민이 항상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이 인물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요. 윌 결국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우리는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을까요
휴 얼마 전 뉴욕에서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오는 밤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서 짐을 챙기는데, 갑자기 너무 공허하고 슬퍼지더라고요. ‘내 인생의 목표는 뭘까? 세상은 어떤 곳일까?’ 같은 철학적인 질문이 불쑥 밀려왔죠. 그때 윌에게 전화했는데 윌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좀 울어봐. 그러면 감정이 정화될 거야”라더라고요. 또 “인생을 게임이라고 생각해 봐”라는 조언도 함께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작은 즐거움이라도 붙잡아 보라는 거죠. 윌 사실 삶에서 의미라는 걸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생의 핵심이니까요. 휴 그러면 윌이 생각하는 인생은 뭔데? 윌 인생의 본질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해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이 주어지고, 사람들은 그걸 채우려고 사랑하거나 관계를 맺죠. 그 자체가 인생이 아닐까. 휴 결국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관계 때문에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죠. 모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시도하는 존재 아닐까요. 그게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데님 팬츠는 Dries Van Noten. 부츠는 Julius. 재킷과 빈티지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두 사람은 사랑할 때 어떤 사람이 되나요
휴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상대방에게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함께 취미를 나누는 것도 중요해요. 같이 달리기를 하거나,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하는 게 좋죠. 또 저는 상대를 존경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존경이란 큰 직함이나 부, 명예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 사고방식, 작은 습관 같은 걸 말해요. 그런 걸 존중할 수 있어야 마음이 갑니다. 윌 존경이 없으면 사랑을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휴 예전에 우리 둘 다 공감했던 게 있잖아요. 레스토랑에서 서버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과는 절대 사귈 수 없다고.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환생을 경험하는 연인, <어쩌면 해피엔딩>의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사랑, 그리고 <고스트 베이커리>의 유령과 인간의 우정까지. 이 작품 모두에 사랑 혹은 관계의 힘이 있습니다. 두 사람에게 있어 ‘관계’는 왜 반복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주제인가요
휴 관계야말로 이야기의 가장 큰 소재이자 우리가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치는 이유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이야기를 쓴다는 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세상은 어떤 곳인가’를 탐구하는 일이잖아요. 그런 탐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윌 동의해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죠. 다만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우리 둘은 생각이 좀 달라요.
예를 들자면
윌 <어쩌면 해피엔딩>의 경우, 저는 이 작품이 인간이 무언가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말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반려동물이든, 사람이든 혹은 키우는 식물이든요.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권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죠. 물론 그 과정은 어렵지만, 동시에 특별한 걸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이건 저희 다른 작품 <일 테노레>에도 연결돼요. 그 작품에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전하고 싶은 건, 인간은 그저 본능적으로 꿈꾸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것이 삶을 힘들게도 하지만, 또 긍정적인 무언가를 주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 작업은 결국 삶의 양가성, 모호함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말이죠.
“당신은 살아가며 무엇을 향해 달려가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죽음”이라고 답하더군요. 맞다고 생각하는 한편 냉소적인 대답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죽음과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 두 사람도 이 대답에 동의하나요
윌 우리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죽음이 우리에게 달려오는 거죠. 가만히 서 있어도 언젠가 도착합니다(웃음). 저는 죽음을 자주 생각해요. 그 생각이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강요하거든요.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건, 삶을 어떻게 써 나갈지 결정하는 데 늘 의미가 있어요. 휴 윌의 말이 맞아요. 인간은 모두 끝이 정해진 존재죠. 결국 어디에 초점을 맞추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님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냉소처럼 들리더라도, 실은 그만큼 두려움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뜻일 수도 있죠.

박천휴가 입은 재킷은 Egonlab. 팬츠는 Helmut Lang. 부츠는 McQueen. 윌 애런슨이 입은 팬츠는 Ann Demeulemeester. 니트와 셔츠, 타이, 신발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앞으로 무대에서 구현해 보고 싶은 소재가 있다면요
휴 여전히 끌리는 인물은 위인이나 슈퍼히어로가 아니예요. 우리와 비슷하지만 시간의 유한성 때문에 고통받는 인물들이죠. <일 테노레>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어쩌면 해피엔딩>에서는 근미래를 다뤘으니, 다음엔 좀 더 동시대적 배경의 이야기를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 때문에 남은 자리에 머무는 유령, 최신 버전에 밀려 버려지는 헬퍼봇처럼요.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에 계속 마음이 갑니다. 윌 겉으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관점이 좋아요. 슈퍼히어로도, 로봇도 아닌, 결국 우리와 닮아 있는 존재들. 우리 작업 전반에 흐르는 철학이기도 합니다.
한국 뮤지컬 창작이 세계 무대에서 가지는 강점은
휴 우리 문화의 특성과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역동적이죠. 창작 뮤지컬의 숫자만 봐도 압도적이거든요. 일본은 시장 규모나 매출액이 훨씬 크지만, 창작 뮤지컬의 숫자만큼은 한국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게 한국 뮤지컬의 힘이 아닐까 해요. 다만 앞으로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영화나 드라마처럼 우리 이야기를 독창적으로 풀어낸다면 훨씬 더 큰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윌 한국에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스타일처럼 규모 있는 뮤지컬도 있지만, 아주 조용하고 색깔이 전혀 다른 뮤지컬도 있어요. 그래서 ‘한국 뮤지컬의 국가적 스타일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만약 환생할 수 있다면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나요
휴 저는 1990년대 시애틀의 10대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할 때 ‘너바나’ 같은 밴드 공연을 직접 보고, 서브 팝(Sub Pop) 레이블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는 거죠. 얼마나 좋을까요? 문화적으로 풍부하면서도, 눈 덮인 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예술적 감각의 아티스트들을 직접 본다면요. 윌 저는 지금까지 제 삶이 너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됐지만, 천휴는 갔어야 했죠. 그런 걸 보면 제 삶이 얼마나 행운인지 실감합니다(웃음). 휴 갑자기 미안해지네. 나는 환생하고 싶다고 했는데! 윌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참 운이 좋은 거예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원하는 시대와 장소의 자료를 찾아보는 건 불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 컴퓨터도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셈인데 얼마나 놀라워요.

박천휴가 입은 롱 셔츠는 Ann Demeulemeester. 쇼츠는 Amiri.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좋아하는 두 사람, 가장 아끼는 영화를 한 편씩 꼽아줄 수 있나요
휴 이 질문만큼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 가능하면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하고 싶을 정도예요. 날카로운 유머와 쓸쓸함이 공존하는, 페이소스가 살아 있는 코미디를 좋아하거든요. 윌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표면적으론 유쾌한 모험영화지만, 제게는 인생의 은유예요. 주인공은 이유도 모른 채 모두에게 쫓기지만 끝내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죠. 저는 그런 태도를 늘 붙들고 싶거든요.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온 창작자로서 끝까지 잃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윌 항상 ‘처음’처럼 생각하려고요. 처음 작품을 할 때 느끼는 긴장과 설렘 말이에요. 이제 방법을 다 알았다는 느낌은 절대 가지지 않으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대 밖의 문제들이 늘어나면서 초창기의 들뜸이 옅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그 감각을 붙잡으려 해요. 휴 저도 비슷한데, 제 단어는 호기심이에요. 처음엔 ‘이건 어떻게 만들지? 배우들과는 어떻게 작업하지?’ 같은 궁금증이 제 설렘의 원천이었어요. 그런데 경력이 쌓이면 호기심이 사라지는 경우도 보게 되거든요. 나이가 들어도 작업 자체에 대한 호기심,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삶에서도요.

윌 애런슨이 입은 니트는 The Row. 팬츠는 Song for the Mute by MUE. 구두는 Zara.
요즘 당신들을 채우고 있는 호기심은 무엇인가요
휴 요즘은 특히 세대가 다른 창작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어요. 훨씬 어린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목표와 영감으로 작업하는지 듣는 게 재미있습니다. 윌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음악가를 발견할 때면 늘 호기심이 생기죠.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 밖을 덜 보게 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다시 밖으로 걸어 나가려 합니다.
그 호기심을 더욱 확장시킬 윌 애런슨과 박천휴에게 ‘해피엔딩’이란
윌 우리는 죽고, 관계는 어렵고, 꿈은 항상 이뤄지지 않죠. 제게 해피엔딩은 ‘꿈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도 살아낼 수 있는 힘’ ‘관계가 끝났을 때 그 사실과 화해하는 태도’에 가까워요. 좀 우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게 더 현실적인 행복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일 말이에요. 휴 저는 공정한 게임을 해온 사람이 마지막에 떳떳하게 서는 것, 그게 해피엔딩이라고 믿어요. 세상은 적당히 속이고 조정해서 성공하는 걸 당연시하죠. 그래도 우리는 ‘페어 플레이’를 하자고 서로 다짐합니다. 힘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끝에 가서 부끄럽지 않다면 그게 가장 좋은 결말 아닐까요.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사진가 곽기곤
-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지은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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