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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라면 다 이루어질지니

수지가 머무는 풍경은 늘 현실이 된다. 속삭이듯 고요하게,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반짝이는 모습으로.

프로필 by 전혜진 2025.09.30

요즘 발레에 푹 빠져 있더군요. 수지가 춤을 잘 추는 건 모두 알지만, 발레는 조금 다른 결의 움직임인 것 같아요

시작한 지는 4개월 정도 됐어요. 아직 입문 단계라 스트레칭 위주로 하고 있고요. 발레의 움직임은 우아하기도 하고, 자세도 바르게 잡아줘서 연기할 때는 물론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즐겨 하고 있어요.



반짝이는 엠브로이더리 드레스는 Celine.

반짝이는 엠브로이더리 드레스는 Celine.

지난 <엘르>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긴 적 있어요. “나를 제대로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발레를 배우는 것처럼 요즘 수지는 자신을 챙기는 일에 얼마나 힘쓰고 있나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자신을 챙긴다는 건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뜻과 같아요.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게 느껴져요. 나는 이런 걸 싫어했구나 혹은 좋아했구나. 그런 취향들이 점점 선명해지니까 자신을 더 효율적으로 챙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셀린느 룩으로 가을을 맞이했어요. 지난 7월 파리에서 열린 아티스틱 디렉터 마이클 라이더의 첫 쇼인 ‘셀린느 2026 봄 컬렉션’에 흠뻑 빠져 감상하던 모습이 생생해요

쇼는 경쾌하고 자유로웠어요. 그때 비가 오락가락했던 파리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 모든 것이 ‘프렌치 시크’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램스킨 테일러드 재킷과 스트라이프 코튼 셔츠, 부츠 컷 데님 팬츠, 양말, 트리옹프 레드 램스킨 슈즈, 트리옹프 클래식 백은 모두 Celine. 여인의 초상화와 꽃 그림은 손정민 작가의 작품.

램스킨 테일러드 재킷과 스트라이프 코튼 셔츠, 부츠 컷 데님 팬츠, 양말, 트리옹프 레드 램스킨 슈즈, 트리옹프 클래식 백은 모두 Celine. 여인의 초상화와 꽃 그림은 손정민 작가의 작품.

쇼도 쇼지만, 함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박보검, 방탄소년단 뷔 등 친구들과 파리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죠. 타국에서 동료들을 만나는 건 어떤 즐거움인가요

정말 즐겁게 시간을 보내서 모든 순간이 쇼의 또 다른 순간이자 연장선처럼 느껴졌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특별할 것 없는 근황을 나누다 보니 쇼가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더 즐겁고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반짝이는 엠브로이더리 드레스와 플리츠 트라우저, 트리옹프 화이트 램스킨 슈즈는 모두 Celine.

반짝이는 엠브로이더리 드레스와 플리츠 트라우저, 트리옹프 화이트 램스킨 슈즈는 모두 Celine.

차기작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가 드디어 세상에 공개되네요. 예고편만 보면 촬영장의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데, 재미난 일이 많이 벌어졌겠죠. 의상이든 소품이든 혹은 CG 효과까지 심상찮아요

1000년 만에 깨어난 램프의 정령 지니와 인간이 만나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라니,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동화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후반으로 갈수록 깊어지는 감정선에 더 깊게 빠져들기도 했고요. 김은숙 작가님 특유의 유머와 이상하고 아름다운 스토리가 합쳐지니까 현장에서 연기하면서도 정말 신선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몇몇 장면은 이미 보는 분들과 교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도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그레이 컬러의 파인 울 드레스와 트리옹프 화이트 램스킨 슈즈는 모두 Celine.

그레이 컬러의 파인 울 드레스와 트리옹프 화이트 램스킨 슈즈는 모두 Celine.

당신이 연기하는 가영은 ‘감정 결여 인간’으로 소개되더군요. 감정 결여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고민됐던 지점 혹은 ‘감정 결여 연기’의 새롭고 즐거웠던 점이 있었다면

가영을 ‘학습된 아이’라 생각하고 늘 가영식의 사고로 접근하고, 생각해 보려 했어요. 본능적으로 대답하고 싶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다시 돌이켜보면서요. 아주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표정을 지으면 이런 감정이 나타난다고 했으니, 이런 표정을 지으면서 이런 대답을 해야 해’라고 로봇처럼 입력돼 있다고 보았거든요. 하지만 그로 인한 솔직함은 가영의 매력이기도 해요.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표현이 있듯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솔직한 마음을 조금씩 감추기도 하죠. 어쩌면 배려하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가영은 느끼는 대로 말하고 소위 ‘필터링’이 없기 때문에 주변인은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그런 부분들이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할 거예요. 대리만족하는 것처럼요. 그런 가영식의 위로와 직설적인 말들이 분명 위로가 되는 지점이 있을 테니까요.




캐시미어 터틀넥 스웨터와 부츠 컷 데님 팬츠, 벨트는 모두 Celine.

캐시미어 터틀넥 스웨터와 부츠 컷 데님 팬츠, 벨트는 모두 Celine.

램프의 정령 지니 역의 김우빈과는 두 번째 호흡이라 더 기대되는 면이 있어요. 약 9년 전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로 함께할 때와 다시 만난 지금, 여전한 점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전한 점은 서로에 대한 배려였어요. 둘 다 배려하는 마음이 커서 <함부로 애틋하게>를 촬영할 때도, 지금도 따뜻하게 촬영할 수 있었거든요. 조금 달라진 점은 좀 더 잘 맞는 호흡이요!



그간 수지가 바라던 것은 대체로 다 이루어진 것 같나요

사실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요. 스스로 무엇을 바란 적이 많이 없다는 것도 느꼈죠. 마치 가영처럼요. 아무래도 작품을 하면서 ‘만약 내가 소원을 빈다면 어떤 소원을 빌게 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수없이 떠올랐는데, 무엇을 원하는지 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마도 지니가 실제로 제 삶에 등장하면 제 진짜 욕망이 드러나지 않을까요(웃음).



실크와 울 케이디 미니드레스, 블랙 플리츠 트라우저는 모두 Celine.

실크와 울 케이디 미니드레스, 블랙 플리츠 트라우저는 모두 Celine.

지니가 이곳에 나타났다고 상상하고 한번 떠올려봐요. 이 작품을 통과한 당신은 지금 무엇이 이뤄지길 바라는지

당장은 <다 이루어질지니>의 성공을 바라죠. 하지만 그 ‘성공’이라는 것에 기준이 없다는 것이 이 소원의 오류인 것 같아요. 극중에서도 ‘소원자’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소원을 빌어야 하거든요. 음, 제가 생각하는 성공에는 흥행도 있겠지만, 그저 간절한 진심이 닿길 바라요. 이 작품을 위해 달려온 모든 사람의 진심이 시청자에게 오롯이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왕이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말이죠!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의 성격이 본체 안에 하나씩 축적된다”고 얘기한 적 있어요. <다 이루어질지니>의 가영을 통해 당신의 내면에 축적된 건 무엇인가요

가영을 연기하며 오히려 따뜻한 마음이 축적된 것 같아요. 참 신기한 게 저도 주변 사람에게 감정 표현을 크게 못하는 편인데 가영을 연기하면서 어떤 갈증을 느꼈어요. 결국 사람은 ‘따뜻한 게 최고다!’라면서 주변에 좀 더 따뜻한 사람이고 싶어서 다정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달까요?



블랙 엠브로이더리 드레스와 트라우저는 모두 Celine.

블랙 엠브로이더리 드레스와 트라우저는 모두 Celine.

개인적으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이 너무 기대되더군요. 예고편처럼 울면서 꾸역꾸역 케이크를 먹는 버석한 얼굴의 수지가 마음을 울릴 때가 많아서요. 원작 백영옥 작가는 ‘수지 배우가 아닌 사강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을 정도예요

원작은 한참 전에 읽었어요. 백영옥 작가님의 책에 매료돼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거든요. 영화로 탄생하게 돼서 제게는 아주 의미가 커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의 아픔과 마주하기 위해 이상한 모임에 가게 되는데, 그런 설정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저라면 그 모임에 갈 것 같았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캐시미어 터틀넥 스웨터와 부츠 컷 데님 팬츠, 트리옹프 캔버스&카프스킨 소프트 쇼퍼백, 스웨이드 로퍼와 양말은 모두 Celine.

캐시미어 터틀넥 스웨터와 부츠 컷 데님 팬츠, 트리옹프 캔버스&카프스킨 소프트 쇼퍼백, 스웨이드 로퍼와 양말은 모두 Celine.

왜 그럴까요

아마도 제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것도 완벽한 타인에게 말이죠. 만약 슬플 때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과 나만 이렇게 아픈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고 싶어서 그런 모임에 참석하고 조금은 이상한 위로를 받고 싶다는 데 끌렸어요. 그리고 소설에서 묘사되는 아침밥의 온기도 너무 따뜻했어요. 누구나 다양한 형태의 실연을 맞이하고 각자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슬픔을 나름대로 마주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좌절하고 또 성장해 나가는 데 마음이 이끌렸어요.


레드 캐시미어 스웨터는 Celine.

레드 캐시미어 스웨터는 Celine.


전작 시리즈인 <이두나!>의 두나와 <안나>의 유미와 안나 모두 그랬던 것 같아요. 참 아름답지만 마냥 밝게 웃기만 하는 여성들은 아니었죠. 그런 여성들을 그려내는 데 끌릴 때가 있나요

복합한 감정을 가진 인물에 끌려요. 사람은 모두 그러니까요. 이러면서도 저럴 수 있는 면모 말이죠. 밝은 사람들에게 끌리지 않는다기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쪽보다 아닌 쪽이 좀 더 저 같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이들의 공통점은 상처를 입더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수지도 이들을 연기하며 힘을 얻은 적 있나요

무너지더라도 다시 나름의 방식으로 일어나는 사람들이 좋아요. 그동안 수많은 인물을 작품으로 마주하며 매 순간은 아니지만 어떤 대사나 어떤 상황의 순간순간이 큰 힘이 될 때가 많아요. 그런 순간들의 힘으로 저도 한동안 살아가게 되니까요.



더블 페이스 캐시미어 코트와 헤리티지 실크 스카프, 램스킨 스몰 러기지 백은 모두 Celine.

더블 페이스 캐시미어 코트와 헤리티지 실크 스카프, 램스킨 스몰 러기지 백은 모두 Celine.

가볍게 상상했을 때, 이들 중에서 누구와 가장 친해졌을 것 같나요

아무래도 <다 이루어질지니>의 가영이요. ‘감정 결여 인간’ 친구는 아무래도 신기하니까요(웃음)!



실크 크레이프 장식의 드레스는 Celine.

실크 크레이프 장식의 드레스는 Celine.

오랜만에 유튜브로 수지의 일상을 그린 8년 전 리얼리티 <오프 더 레코드 수지>를 다시 봤어요.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은 오늘도 여전했는데, 그때보다 어른이 된 수지는 좀 더 단단해졌나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겠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만큼 저 또한 어딘가 분명 더 단단해졌을 거라고 믿어요.

Credit

  • 패션 에디터 이하얀
  • 피처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김희준
  • 패션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 헤어 스타일리스트 백흥권
  • 메이크업 아티스트 초은비
  • 세트 스타일리스트 김예솔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어시스턴트 임주원·오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