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에스파를 진짜 '리치 맨'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감독

"계속 변화하는 것 자체가 내 연출법" 윤승림 감독과 엘르의 두 번째 만남.

프로필 by 김동휘 2025.09.21

리전드 필름 윤승림 감독
에스파 'Rich Man'과 '아마겟돈',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등을 연출한 영상 디렉터.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탬버린즈 x 필릭스 '선샤인' 캠페인 등 브랜드 필름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연출 세계를 펼치고 있다.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MV 스틸컷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MV 스틸컷

에스파 'Rich Man' MV 스틸컷

에스파 'Rich Man' MV 스틸컷

전소미 'EXTRA' MV 스틸컷

전소미 'EXTRA' MV 스틸컷



엘르와의 두 번째 만남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보시다시피 계속 작업하면서 지냈죠.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땐 임신 중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웃음) 제 아이 도호와 함께하고 있어요.


감독으로서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어때요?

저는 몰랐는데 주변에서 더 여유로워졌다고들 하더라고요. 정신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은 더 안정된 것 같아요.


태교 음악이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였다고요

임신 중에 프리 단계랑 촬영을 하고, 출산 후에 후반 작업을 마무리했어요. 막 홀로서기를 시작하던 때라 불안했는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준 고마운 작업이죠.


어쩌면 소속사 관계자 외에, 가요계에 오랜만에 혼성 그룹이 나온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접하지 않았을까요

처음엔 소속사에서 아티스트가 누군지 안 알려주더라고요. 여자 그룹인지, 남자 그룹인지 물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죠(웃음). 킥오프 미팅 때 혼성이라는 걸 알고, ‘이거 진짜 재밌겠다’ 싶었어요.


특히 어떤 부분이 재미있던가요?

멤버들의 서사를 담아내는 거요. 팀으로 모이기까지 각자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직접 멤버들 인터뷰를 요청해서, 각자가 보여주고 싶은 걸 들었어요.


예컨대 어떤 이야기가 있었어요?

베일리 님이 영화 <테넷>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영화 메시지가 ‘운명이 아무리 비틀어져도 결국 내가 가야 할 자리에 가게 된다’는 건데, 본인 또한 댄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결국 가수가 될 운명이었던 것 같다면서. 그래서 베일리 님 시퀀스는 모두 거꾸로 흘러가게 연출했어요. 겉으로 보기엔 그냥 멋있는 영상일지언정, 속엔 진짜 이야기를 담고 싶었거든요.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MV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MV


메시지에 화려한 CG까지 얹히니까, 보는 입장에선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VFX 슈퍼바이저 제임스 최가 정말 고생 많았죠. 특히 하이힐 바닥에서 도시로 전환되는 장면은 제가 30번 넘게 수정 요청을 했는데, 끝내 멋지게 완성해 줬어요. 에스파 'Rich Man'도 그렇고요.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MV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MV


그런 면에서 전소미 ‘EXTRA’는 감독님의 필모에서 특히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CG가 거의 없던데요

맞아요. 일부러 클리닝 정도 빼고는 CG를 거의 쓰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저를 CG를 잘 쓰는 감독으로 기억하긴 하지만, 사실 그게 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계속 변화하는 것 자체가 제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순간, 제 스타일이 사라지는 거겠죠.


CG를 줄이는 대신 집중한 게 있었다면요?

공간이요. 가사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건 사랑 얘기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는 소외감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감정이잖아요. 이런 메시지는 보통 인물 간 충돌로 표현하는데, 저는 공간으로 풀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호승 미술 감독님과 함께 의미 있는 공간을 설계했죠.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이었나요?

큰 소방 훈련장을 만들고, 그 안에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을 곳곳에 넣었어요. 사실 그곳은 모든 게 다 가짜잖아요. 구조 대상도 사람이 아니라 더미고요. 그런데도 주인공은 그와 닮으려고 애쓰는 거죠.

전소미 'EXTRA' MV

전소미 'EXTRA' MV

전소미 'EXTRA' MV 스틸컷

전소미 'EXTRA' MV 스틸컷


아티스트는 이 곡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소개하던데, 감독님은 어떤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세요?

사춘기를 겪는 모든 사람들. 사실 성인이 돼서도 사춘기는 오잖아요. ‘나는 왜 이럴까’, ‘왜 남들과 다를까’ 고민하는 분들. 기자님도 그럴 때 있지 않으세요?


그래서 뮤직비디오를 보는데 위로받았어요. 이런 작업은 아티스트에게도 특별할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 때 모습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드셨더라고요. 저한테 먼저 보여줬어요. 자기가 이 뮤직비디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겠다며(웃음). 어떤 여자아이돌이 손으로 스파게티를 집어 먹겠어요. 근데 소미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제안했고, 할 수 있었어요.

전소미 'EXTRA' MV

전소미 'EXTRA' MV


에스파 ‘Rich Man’도 일반적인 여자 아이돌에게서 흔치 않은 모습이어서 신선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여자’를 구현한 거예요. 소속사에서도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셔서, 진짜 멋진 여자가 필드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달리는 여정을 그리고 싶었죠. 무언가에 열망이 타오르고, 죽을 만큼 달리고, 또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그런 과정이요. 사실 진짜 여유로운 사람들은 쉴 때 명품 쇼핑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별장이나 농장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에스파 'Rich Man' MV 스틸컷 에스파 'Rich Man' MV 스틸컷 에스파 'Rich Man' MV 스틸컷 에스파 'Rich Man' MV 스틸컷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경우에는 아티스트의 역할도 특히 중요하겠어요

필릭스 님과 탬버린즈 캠페인 영상을 찍을 때였어요. 개껌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필릭스 님이 애드리브 연기를 하시자마자 모두가 환호하면서 “됐다!”를 외쳤어요. 개껌을 꽉 깨무시더라고요.

탬버린즈 x 필릭스 '선샤인' 캠페인

탬버린즈 x 필릭스 '선샤인' 캠페인


‘Rich Man’ 농장 씬을 촬영할 때 카리나 님이 어떤 포즈가 좋을지 고민하시더라고요. 제가 ‘상여자의 휴식’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곧바로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다리를 차셨죠(웃음). 이런 주저 없는 과감함이 장면을 완성하는 힘이 돼요.

에스파 'Rich Man' MV

에스파 'Rich Man' MV


이쯤에서 궁금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멋있는 여성’은 누구예요?

줏대 있는 여자. 어떤 상황이 와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감독님이 절대 굽히고 싶지 않은 줏대는 뭐예요?

뮤비를 만들 때 늘 고민돼요. 음악을 직관적으로 풀지, 아니면 완전히 틀어버릴지. 결국 후자를 택하기로 했어요. 여태껏 안전한 해석은 많이 해왔으니까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도, 그 장면이 왜 존재하는지 논리가 확실하니까 자신 있어요. 또 그런 해석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요.


‘Rich Man’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이 조각된 명예의 벽이 걷히며 시작됩니다. 만약 ‘윤승림’이라는 이름의 벽화를 만든다면 어떤 그림을 넣고 싶으세요?

에스파 'Rich Man' MV

에스파 'Rich Man' MV

음, 엄청 큰 차안대를 쓴 경주마요. 20대 때 저를 두고 주변에서 그렇게 불렀어요. 뭐든 남들보다 절반 시간 안에 해내려고 달렸었죠. 각자 인생마다 맞는 페이스가 있다면, 그게 제 페이스인 것 같아요. 중간엔 무척 힘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한 단계 성장했어요.


그냥 말도 아니고, 엄청 큰 차안대를 쓴 말이라는 게 포인트네요

목에 깁스까지 채울까 봐요(웃음). 기수가 떨어지고 있어도 재밌겠네요. 전 그냥 레이스가 시작되면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목에 깁스를 채워지고 기수가 떨어져도, 끝까지 제 페이스대로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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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각 아티스트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