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 드는 존재입니다
평균 48세. <우리, 나이 드는 존재>의 필진들이 유쾌하게 주름을 헤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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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하나가 입은 레더 재킷은 Korlat. 셔츠는 Flow Jeans. 데님 팬츠는 Poem. 슈즈는 Tod’s. 벨트는 Saint Laurent. 고금숙이 입은 터틀넥은 Gcut. 블랙 레더 셔츠는 320 Showroom. 슈즈는 Cadeau. 이라영이 입은 재킷은 Re Rhee. 셔츠는 Frizmworks. 데님 팬츠는 Flow Jeans.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수윤이 입은 터틀넥은 Damoyera. 드레스는 Biscuitshop. 슈즈는 Eloshman. 김희경이 입은 블랙 수트 세트업은 Prairie. 슈즈는 Salt & Chocolate.
1985년생부터 1967년생까지 아홉 명의 여성이 자신만의 ‘나이 드는 법’을 담은 <우리, 나이 드는 존재>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젊음은 자연의 우연한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다.”(엘리너 루스벨트) 각자 이 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정수윤 언어를 다루는 저는 ‘아름답다’는 어휘와 우리 삶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고민해 봤어요. ‘아름’이라는 순우리말 어원에 관한 가설 중 하나가 ‘아’ 자가 ‘나 아’에서 온다는 것인데, 아름답다는 건 결국 나답다는 거지요. 젊어서는 꽤 마음대로 행동하다가도 나이 들수록 걱정이 많아집니다. 사회 걱정, 세상 걱정, 가족 걱정, 돈 걱정…. 그 과정에서 나다운 걸 잃어버리는 건 아름다움과 멀어지는 일이에요. 김희경 대문자 ‘T’인 저는 노년이 예술 작품까지 갈 것 있나, 싶었습니다(웃음). 나이 드는 일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노력하면 누구든 잘 나이 들 수 있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저는 좋은 사람이 좋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인간이 되려는 노력이 잘 나이 드는 일의 전제입니다. 이라영 사회학자인 저는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개념이 개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이 듦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노년 일자리 문제나 복지, 주거, 건강에 관한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 나이 든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일종의 권력 문제처럼 느껴지죠. 고금숙 일단 모든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해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될 것인지, 흉측한 예술 작품이 될 것인지 말이죠. 그러니 이 문장은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진다는 말로 들립니다. 여자들은 나이 들수록 훨씬 자유로워지죠. 스스로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가 되고요. 나이 드는 일은 확실히 여자에게 유리한 지점이 있어요. 김하나 의지와 선택에 의해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물론 완벽한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서 예술 같은 노년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환경에서도 좋은 선택을 통해 아름다운 자신을 만드는 사람도 있으니 절반은 동의하겠습니다.
나이 드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나답게 늙어가는 일상을 공유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정수윤 저는 어릴 때 주변을 굉장히 신경 쓰고 살았어요. 점점 나이가 들며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구축하는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세상의 조건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를 향해 달려왔는지 돌이켜보는 친구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 제 경험과 용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냥 너희들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된다고요. 김희경 2023년에 펴낸 전작 <에이징 솔로>를 보고 제안을 주신 것 같아요. 그 책은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는 주제로 혼자 사는 여성들이 어떻게 관계망을 맺는지 중점적으로 쓴 책이었는데요. <우리, 나이 드는 존재>의 독자는 싱글만 대상으로 하지 않으니 혼자와 함께 사이의 균형에 관해 썼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혼자 살면 ‘고립’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아는 건 나이 들수록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라영 여성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공적 영역에서 축소되고 사라지며 비슷한 덩어리로 재현되죠. 사회는 젊은 여성 또한 부정적 의미로 ‘소비’하고요. 나이는 상대적입니다. 70대인 우리 엄마 눈에 저 같은 50대는 어린애죠. 20~30대 여성에게 40~50대 여성은 아주 멀게 느껴지고, 젊은 남성이 상상하는 40~50대 남성과 젊은 여성이 생각하는 40~50대 여성은 정말 다르거든요. 공적으로 드러난 얼굴이 다르니까요. 평범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다채로운 일상이 많이 노출됐으면 좋겠어요. 고금숙 저는 사심으로 임했습니다(웃음). 다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어서요. 제안 당시 부산에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실무 중이라 아쉽게 거절했는데, 편집자님께서 아주 다정하게 기다려주셨거든요. 김하나 각자 상황 중계를 실시간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은 여성의 나이 듦을 자꾸 가리려 하고, 나이 든 여성도 “난 하나도 나이 들지 않았어”라며 자꾸 자신의 나이를 지우려 하니까. 팟캐스트에서는 생리가 오락가락한다거나, 손가락 관절이 아픈 게 갱년기 증상이라는 얘기를 낱낱이 해요. 무서운 일도 아니고 모두 겪을 일이니까요. 이번 기회에 또 다른 중계에 동참하려고 했어요.

정수윤 1979년생. 번역가. 역서로 다자이 오사무 전집 <만년> <인간 실격>,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저서로 <파도의 아이들> <날마다 고독한 날> 등이 있다.
정수윤 번역가는 잘 나이 들기 위해 수영을 합니다. ‘물고기 되는 일’이 젊음과 일상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매개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수윤 수영은 변신하는 일이라 재밌습니다. 새로운 자아, 그러니까 완벽한 하나의 동물로 변신하거든요. 원래 저는 인간이기에 두 발로 걷고 중력의 힘에 기대 살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육지에서 쓰지 않는 근육을 쓰고, 수영을 배우기 전에는 전혀 하지 못했던 동작을 해나갑니다. 하루에 1시간, 물에 들어가는 순간 주문을 걸어요. ‘난 물고기다, 변신 그리고 변신!’ 그렇게 되뇌지 않으면 물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인간의 행동을 하게 되거든요. 변신했다고 상상하면 물을 더 잘 타게 되고, 마음과 몸이 변환되는 순간이 즐겁습니다. 닿을 수 없었던 몸의 구조에 다가가는 모험이에요. 7~8년 했지만 매일 다르고, 늘 새로 배울 게 생겨요.
육지에서의 삶과 물속의 삶, 그 두 세계에서 당신의 존재는 완벽히 분리되나요
정수윤 물론 초창기에는 제가 그저 인간으로 추정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웃음). 마구 허우적대면서요. 그런데 지금은 완벽히 물고기가 돼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몸을 익히고 있어요. 23시간을 인간으로 살다가 1시간 정도 동물로 사는 게 굉장히 재밌습니다. 해보세요. 끝나고 집에 걸어갈 때는 새로 태어난 느낌이 들거든요.
그 물고기가 인간 정수윤에게 한마디한다면
정수윤 물에서 하는 것만큼 지상에서도 좀 용맹하게 살아보렴! 아직 지상에서는 물에서만큼 제멋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김희경 1967년생. 논픽션 작가. <에이징 솔로> <이상한 정상가족>을 썼다. <동아일보> 기자,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사업본부장,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일했다.
김희경 전 차관은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연마합니다. “잘 나이 들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 중 하나가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균형 잡기”라고 말했는데 균형 잡기 위한 조언은
김희경 사람의 기질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도, 정반대인 사람도 있잖아요.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적합한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있어요.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해요. 예를 들어 2020년까지 정말 정신없이 바빴고, 어떻게 해서든 일주일에 하루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어떻게든 일주일에 약속을 두 개 잡아요. 지나치게 혼자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결국 가고자 하는 방향은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죠.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과 타인에게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균형이 필요합니다. 혼자 있는 상태에 대한 편견도 깨고 싶어요. ‘고독사’라는 단어는 고립사로 바뀌어야 합니다. 고립된 사람들이 고립된 상태로 가는 것일 뿐, 고독이라는 말 자체가 오염된 것 같아요. 고독은 굉장히 좋은 것일 수 있는데 말이죠.
맞아요. 혼자 사는 노년층을 비희망적 상태로 얘기하거나 ‘솔로’와 ‘고립’을 같은 뜻으로 해석하려는 맥락이 우리 사회에 분명 있습니다
김희경 혼자 산다고 하면 맨 처음 듣는 말이 늘 “외로워서 어떡해?”입니다. 저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요. 워낙 ‘고립사’가 많이 일어나는 사회다 보니 모두 ‘관계 맺기’를 강조하는데, 사실 혼자이고 싶은 사람도 많아요. 우리는 제대로 혼자 살 수 있어야 해요. 성인이 혼자 못 지내는 것도 문제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인데요.
<에이징 솔로>에서 인터뷰한 어느 61세 비혼 여성은 “나는 이 세계에 소속돼 있어요. 필요한 만큼. 그리고 분리돼 있어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경계를 넘나드는 신호는 무엇일까요
김희경 분명 마음이 신호를 보내요. 그분은 기준을 하나 정해놓는다고 했어요. 설거짓거리가 사흘 치 쌓였다면 요즘 어떻게 살았나 생각한대요. 저도 청소에 집착하는 편이라 바닥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닌다면 괴로운 상태로 해석합니다. 술을 찾는 건 두 번째 바로미터입니다(웃음).

이라영 1976년생. 예술사회학 연구자이자 문화평론가. <말을 부수는 말> <타락한 저항> <폭력의 진부함>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등을 썼다.
이라영 학자는 사라질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합니다. 안타깝게 사라지는 세계와 부지런히 연결되는 건 당신이 나이 드는 일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이라영 ‘이제부터 나이 드는 시점이야’라고 정해져 있지는 않죠. 결국 나이 드는 것은 일상생활의 연장선인데, 저라는 인간이 지금까지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모든 화두의 근본에는 발화 권력과 목소리의 불평등 문제가 있었습니다. 누구는 한 마디 탁 하면 그게 법이 되고 사회 구조를 좌지우지하는데, 상대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는 존재들이 대다수잖아요. 쉽게 지나칠 만한 평범한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그 안에서 그들과 제 삶을 발견하게 돼요.
그 목소리를 채집하다 보면 실제로 삶에서 어떤 것이 변하나요
이라영 변화보다 담담해지는 면이 생겼어요. 삶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결코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죠. 누구든 힘든 시기를 넘어가면 일이 잘 풀릴 거라고 혹은 나이 들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파도를 타요. 실제 나이 들어가는 주변 지인들이 돌아보면 60대가 제일 좋았다고, 애들 다 보내놓으니 좋다지만 막상 70~80대가 됐을 때 어떤 고난이 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직시하는 것이 나이 드는 일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고금숙 1978년생. 제로 웨이스트 가게 '알맹상점'과 리페어 카페 '수리상점 곰손' 운영 중. 저서로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가 있다.
고금숙 대표는 10년째 유언장을 새로 쓰며 해마다 새롭게 죽을 결심을 한다지요. ‘전지적 독수리 시점’에서 나의 죽음을 더욱 상세하게 들여다보니 더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까
고금숙 저는 다혈질에 흥분하는 성격인데요. 일상에서 정말 화낼 일인지, 상대와 관계를 끊을 만한 일인지 한숨 쉬고 돌아보게 돼요. 요가할 때 심호흡이 중요하듯, 삶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죠. 앞으로 쭉 날아가 보면 정말 사소하고 작은 일인데. 자기 돌봄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게 정말 나한테 중요해?’ ‘너가 진짜 원하는 거야?’ 유언장은 저를 돌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에요.
장례식 초청 명단, 공간, 음식, 주요 프로그램까지 구체적으로 기획합니다. 장례 초청 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면 주변 사람을 더욱 포용하게 되나요
고금숙 아니요, 오히려 인간관계가 칼같이 정리됩니다(웃음). 시간은 중요해요. 신경 쓸 것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할 시간과 관심을 잘 분배해야 하죠. 저는 에너지 총량의 법칙과 ‘지랄’ 총량의 법칙을 믿는데, 그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것인지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다만 인생에서 후회할 부분은 만들지 않으려 해요. 예를 들어 룸메이트와 싸운 뒤 출근할 때 오늘 저녁에 내가 다시 이 문으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 끝마무리를 잘하려고 해요. “지금 너와 작은 일로 싸웠지만, 너는 내 장례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되레 ‘최애’임을 고백하죠(웃음). 상황의 마무리를 항상 아름답게요!

김하나 1976년생.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금빛 종소리> <말하기를 말하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공저) 등을 썼고,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한다.
김하나 작가는 배움과 호기심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자신에게 그토록 다양한 기회를 스스로 부여하는 것은 나이 드는 일에서 얼마만큼 중요할까요
김하나 부모님은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서 만났지만, 세월이 지나 점점 다른 길로 가게 됐어요. 저는 아빠와 닮았지만, 엄마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평생 해왔죠. 아빠는 세상과 단절한 조개껍데기셨어요. 점점 굳는 것이 제 눈에도 보였다면, 엄마는 계속 호기심을 유지하며 굉장히 유연한 삶을 살았습니다. 늘 아빠 말고 엄마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 관찰했죠. 아빠는 자기 고집이 세고 굳어가는 걸 깨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고, 책도 읽던 것만 읽으셨어요. 엄마와 달리 뭐든 “됐다, 치워라”라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자신에게 기회를 전혀 주려 하지 않았죠. 엄마는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보고, 매번 새로운 잎이 나왔는지 나무를 관찰하고, 일상에 감탄하는 일을 계속해요. 몸이 굳지 않기 위해 스트레칭하듯 정신적 유연함을 유지하기 위해 호기심을 계속 가져야 합니다.
어머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김하나 저희 어머니는 고전적 어머니의 삶이나 보통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엄마의 능력’과 굉장히 거리가 멀어요. 제게도 살림을 좀 편하게 해라, 지저분함을 견디는 능력을 늘 지니라고 잔소리하십니다(웃음). 1세대 로봇 청소기를 사주며 “이거 돌려놓고 책이라도 한 장 더 읽고 친구들 만나라”면서요. 엄마의 능력은 새로운 것에 늘 호기심을 갖고,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언제나 현재적 농담을 하는 데 있습니다. 제 인생 모토 중 하나가 ‘하면 는다’거든요. ‘하면 된다’는 말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는다’는 말은 편안하게 어떤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줘요. 망신당하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기회를 스스로 줘보려 하고 있어요. 지금 가진 가장 큰 호기심은 난생처음 탁구 대회에 나가는 겁니다. 바로 내일. 처음 겪는 감정이 엄청 많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76세인 어머님은 <즐거운 어른>의 이옥선 작가이기도 하죠. 여전히 설레는 일이 끝없이 생기는 ‘그녀’와 함께 나이 드는 건 얼마나 즐겁고 의지되는 일인가요
김하나 그런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는 건 제게도 엄청난 기회입니다. 원래 아빠와 똑 닮은 얼굴인데요, 나이 들면서 목소리나 주름이 지는 방향까지 엄마를 닮았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어요. 지금 혼자 지내는 엄마는 너무 바빠요. 목욕탕에서 만나는 사람들, 일주일에 한 번씩 보는 동창들과 산에 가야 해서요. “엄마도 바쁘거든. 스케줄이 있거든”이라며 존중해 달라고 얘기하는데, 서로 존중하며 지내도 데면데면하거나 멀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엄마를 보며 늘 자극받습니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세상과 호흡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고립감보다 계속 숨 쉬고 호흡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그런 미래가 너무 궁금해요.
오늘의 대화 또한 서로 좋은 연대로 남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나이 들기에 좋은 점 그리고 서로의 방식을 보며 영감을 얻은 것은
정수윤 나이 든 여자끼리 연대도 좋지만, 더 어린 친구들과 많이 소통하고 싶어요. X와 인스타그램을 다 열어놓고 그 친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듣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 변화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해 주려고요. 김희경 유언장을 따라 써봤습니다. 친구들 생각을하면서요. 나이 든 여성들의 연대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지만 제가 보기에는 주변에 굉장히 많아요. 80대인 엄마는 성당 할머니들과 정말 두툼하게 연대합니다. 내 친구 자랑이 머쓱할 정도거든요(웃음). 29년 직장생활 중 22년 정도를 극단적인 남초 환경에서 보냈습니다. 지금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과 폐경 증상부터 인생의 큰 방향까지 얘기를 나눈다는 게 가장 즐거워요. 이라영 사소하게는 김하나 작가님이 76년생 동갑인데, 참 반가웠어요.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동갑 여자들을 만나기 쉽지 않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층이 생겨나거나,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될 뿐이거든요. 고금숙 나이 드는 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상황을 얻게 됐어요. 자기를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며 나이 드는 서로의 상태를 드러내는 일. 이렇게 느슨하고 비공식적 연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김하나 책을 통해 비슷하게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이 순간이 좋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만나 사진을 찍을 때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거나 느껴온 뭔가를 다시 함께 느끼며 말이에요.
나이 드는 일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정수윤 매일 변신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김희경 점점 더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일. MBTI에 비유해 삶을 돌아봤을 때 10대 때는 극단적 I였고, 대학 입학 이후부터 사회생활을 할 때는 굉장한 사회적 E로 학습됐어요.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양극단으로 가본 경험이나 사회생활을 하며 사라졌다고 믿었던 어릴 때 기질도 전과 다른 의미로 되살아나 내 안에서 통합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라영 어떤 고통 속에 있더라도, 아주 작은 아름다움이라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 고금숙 내 숨을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아는 일. 해녀들에게 중요한 건 물질이나 수영 능력보다 숨을 참고 들어갔다가 어느 시점에 올라올지 정확히 아는 거래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계속해서 살아보고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했던 경험을 축적하며 물 밖으로 언제 오를지 알아야 해요. 김하나 나이는 다들 먹는 것. 모두가 하지만 모두에게 매번 새로운 일입니다. 윤여정 선생님이 “나도 67세는 처음이야!”라고 하셨듯 저도 50세는 처음인데요. 같은 세상도 이전과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 일, 흰머리가 나거나 관절통이 오는 일도 가끔 설레고 재밌습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진소연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이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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