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유현준이 루이 비통 트렁크에 담고 싶은 것
'셜록현준'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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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가 달린 자수 로고가 포인트인 실크 풀오버와 와이드 핏의 실크 팬츠, 모노그램 장식의 비스텐 40 트렁크, 비스텐 60 트렁크, 가죽 핸들이 달린 말 쿠리에 110 트렁크, 다미에 장식의 비스텐 80 트렁크, 모노그램 알저 수트 케이스는 모두 Louis Vuitton.
오랜 세월 그 자체로 작품이 돼 여행 문화를 정의해 온 루이 비통 트렁크가 자신만의 여정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성과를 이뤄온 아이코닉한 여행자의 창의적 도전을 따라나섰다. <엘르>와 루이 비통이 함께하는 스페셜 시리즈 ‘아트 오브 트래블(Art of Travel)’의 두 번째 인물은 건축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드는 건축가 유현준. 건축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람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라는 토대 위에 우뚝 선 그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사무실이 근사하네요.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지중해 편 촬영으로 얼마 전까지 로마에 있었죠
이번까지 하면 다섯 번째네요. 첫 로마는 MIT 대학원 시절이었어요. 여름방학 때 한 달 정도 건축물 답사 다니고 그림 그리는 수업이었는데, 경비가 지원돼 수강 경쟁이 치열했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어요(웃음).
이번 로마 여행은 어땠어요? 이미 봤던 건물도 많았을 텐데요
학창시절엔 바게트만 먹었는데, 나이 들어 오니 훨씬 풍족하더군요(웃음). 로마는 언제 가도 좋아요. 고대부터 르네상스, 현대까지 다양한 시간의 켜가 쌓여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거든요. 또 건축물이라는 게 한 번 보고 끝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물면서 추억을 남기는 거잖아요. 건물을 보는 ‘나’도 다르고, 날씨나 주변 사람이 다르니 같게 느껴지지는 않죠.
오늘 함께한 루이 비통 트렁크는 19세기 최초의 현대적 트렁크에서 출발해 여행을 삶의 예술로 확장하는 데 앞장섰어요. 직업 특성상 여행 다닐 일이 많을 텐데, 마찬가지로 건축가에게 여행이란 물리적 이동 이상의 의미가 있겠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 건축가는 여행을 통해 많은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전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을 통해 서로 다른 지역과 문화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가령 로마와 뉴욕은 무척 다른 도시지만 공통분모가 존재해요. 이를테면 사람들이 햇빛이 드는 쪽으로 걸으려 하고, 광장으로 모여들며, 그 주변에 가게가 많으면 더욱 활성화되죠. 인간 본연의 습성으로 생겨나는 공통 현상이에요. 도시를 볼 때 이 껍데기 이면의 공간과 사람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해요.
목적 없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서울을 제외하면 역시 로마일 것 같습니다. 저는 자연에서만 쉬는 스타일은 아니라, 구경하고 배울 거리가 많은 도시가 좋아요. 그런 점에서 하와이의 오하우 섬도 좋겠네요. 와이키키 해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쇼핑센터가 나타나 도시와 자연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거든요.
혁신적 여행 가방의 아이콘인 루이 비통 트렁크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수많은 여행자의 충실한 동반자로 기능해 왔습니다. 오늘 만난 트렁크 중 당신의 여행에 함께하고 싶은 것은
가장 큰 트렁크인 ‘말 쿠리에 110’이요. 옷이나 책, 컴퓨터 등 들고 갈 게 많아요. 제 여행에는 많은 것이 담기면 좋겠어요.

시퀸을 장식한 칼라리스 트위드 재킷과 롱 슬리브 셔츠, 플레어 핏 테일러드 팬츠, 플래티넘 케이스에 메테오라이트 다이얼을 장착한 에스칼 워치는 모두 Louis Vuitton.
로마에 있는 동안 통신 문제로 건축사무소 업무 보고를 받지 못했다죠. 근래 들어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회상하던데요(웃음)
보통 ‘건축가의 업무’ 하면 창의적 생각과 디자인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사실 그 비중은 20% 정도죠. 나머지는 그 디자인을 현실화하기 위한 고된 설득의 작업이에요. 먼저 건축주 설득해야죠, 이후로도 심의위원과 허가권자, 시공 회사, 설비 관련 법령 등 장애물이 끊임없어요.
현재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얼마나 되나요
설계 단계 열 몇 개, 시공 단계 열 몇 개 돼요. 프로젝트마다 문제의 연속이에요. 디자인에 관한 문제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는데 그 외 여러 불가항력적 이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래서 글을 쓸 땐 오히려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니···
저는 작가가 아니니까요. 글은 누가 간섭하지 않잖아요. 다른 사람과 부딪칠 일도 없고요. 건축도 기본적으로 창작이지만 협업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타인을 설득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많은 창의적인 분이 이 필드를 떠나기도 해요.
지금은 이렇게 바쁜데 그렇지 않은 시절도 있었죠. 여정의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MIT 재학 시절 하루 14시간을 스튜디오에서 살아서 별명이 ‘포틴 아워(14 Hours)’였다고요
그땐 정말 목숨 걸고 공부했어요. ‘건축이 아니면 내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소명의식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을 향한 소명의식이었나요
‘건축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최고로 준비된 사람이고 싶었고요.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쓰러뜨리잖아요. 만약 다윗이 돌팔매질을 못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요? 그 분야에서는 최고였던 거죠. 다가올 결정적 순간에 저만의 돌팔매질을 잘해야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기술이 제겐 건축설계였고요.
그렇게 하버드 대학교까지 우등으로 졸업하고,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를 거쳐 한국에서 사무소를 차렸지만 일은 없었어요. 15년이나 되는 긴 공백기를 견뎠고요. 다른 좋은 선택지도 많았을 텐데, 자신의 선택에 의심이 들진 않던가요
‘건축을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관두기엔 너무 자존심 상했고, 또 어린 시절부터 세운 비전 때문에 쉽게 포기 못 한 것 같아요. 흔들릴 때마다 ‘이게 끝은 아닐 거야’라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어쨌든 내가 승부를 봐야 하는 필드는 여기니까,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미련도 많았죠. 되든 안 되든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계속 허우적거리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멋있게 헤엄친 건 아니고.

시퀸을 장식한 칼라리스 트위드 재킷과 롱 슬리브 셔츠, 플레어 핏 테일러드 팬츠는 모두 Louis Vuitton.
그 시기를 회상하며 “인생은 차선이 모여 최선이 된다”고 했죠. 그런 차선의 시간이 지금의 유현준을 만들었네요. 불안을 잘 다스리는 방법도 터득했나요
아뇨(웃음). 인생이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종종 기도는 했어요. 지금도 불안이 찾아오면 어쨌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기도든 명상이든 외부 정보나 생각을 차단하는 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불안과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을 두고 경기 직전 마이클 조던이 버저비터를 날리는 순간을 동경한다고 했죠. 그처럼 위기가 기회가 된 순간이 있었나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나오고 <알쓸신잡>에 출연하게 된 것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정면 돌파해서 통쾌함을 느낀 순간이라면 지난해 JYP 신사옥 설계 공모에 당선됐을 때 같네요.
경쟁 상대가 세계적 건축사무소 ‘헤더윅 스튜디오’와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였죠
흡사 건축계 메시와 붙은 느낌이었어요. 사실 직원들은 자신 없어 했어요. 그래서 한번은 야단도 쳤어요. 이길 수 있다고 믿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이기겠냐고. 결국 저희 디자인을 밀어붙여 당선됐을 때 통쾌했어요. 또 다른 결실을 맺은 느낌이었죠.
근래 크고 작은 결실은 꾸준히 있었죠. 지난해 공개된 용산 ‘아페르한강’이 화제가 됐고, 제주에 세컨드 하우스 ‘호미’도 지었어요. 호미의 경우 본인 집이기에 마음먹기 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건축주로서 재정적 역량이 조금 갖춰진 것 같아 3년 전에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예상보다 대출을 두 배는 더 받았지만. 이래서 건축가는 건축주 하면 안 되나 봐요(웃음).
그 집을 두고 “궁극적으로 유현준이라는 사람이 만들고자 하는 공간에 대한 답”이라고도 했어요. 머물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순간은
밤이 특히 좋아요. 정원에 조명을 켜고 침대에서 바깥을 보고 있으면, 순간 건축은 사라지고 자연과 온전히 마주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자신에게 이상적인 공간을 완성한 기분은 어때요? 다음 목표가 생겼나요
목표가 생겼죠. 다음 집은 도심에 지어보려고요. 서울 신당동에 준비 중이에요.
경주 오아르 미술관도 몇 주 전에 개관했어요. 통창에 담긴 대릉원이 정말 멋지더군요
고분을 어떻게 경험하게 하느냐가 중요했어요. 입구에서 반사되는 재질의 유리창에 비친 고분을 보며 들어가고, 내부엔 길이 30m에 달하는 유리창이 11등분으로 나 있어 고분이 병풍처럼 펼쳐져요. 이 외에도 카페 후면 창과 2층 비정형 창문, 마지막으로 옥상까지 총 다섯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관람자와 예술 작품, 대릉원을 어떤 조합으로 관계시킬 것이냐가 핵심이었죠. 그 과정에서 건축물은 최소한의 장치로만 작용하게 했고요.
그 외 몰두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JYP 신사옥과 모 기업 연구 연수원에 집중하고 있어요. 아직 착수 전이지만 송도에 있는 테라스 타운도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여의도 광장아파트 재건축 프로젝트는 너무 진행이 더뎌서 최소 환갑은 지나야 완성될 것 같아요. 그때라도 되면 다행이겠네요.

진주가 달린 자수 로고가 포인트인 실크 풀오버와 와이드 핏의 실크 팬츠, 디플로마 리슐리외 로퍼, 모노그램 장식의 비스텐 40 트렁크는 모두 Louis Vuitton.
건축은 기다림의 연속이네요. 건축가가 된 건 삶에서 좋은 선택이었나요
그럼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제 길을 발견한 것도요. 20대 땐 방황하기 쉬운데, 목표를 정하고 쭉 달려올 수 있었으니까요.
건축가라는 직업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건강이요. 건축가는 오래 살아야 성공하더라고요.
건축가 중 장수하는 사람이 많던데요
‘성공한’ 건축가가 오래 살아요. 건축가로서 성공하면 행복해서 장수하는 것 같아요. 성공 못 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빨리 죽고(웃음).
과거부터 현재까지 루이 비통 트렁크의 시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여정을 향했습니다. 건축가로서 유현준의 지난 여정은 어땠나요
이제 50대 중반인데, 건축가로서 본격적으로 제 작업을 해야 할 때예요. 젊은 시절엔 기회가 잘 안 주어져요. 일찍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 기회를 늦게 잡았죠. 건축가는 그저 묵묵히 만들고 공간으로 보여주잖아요. 말만 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 건축을 택한 것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0년은 말을 더 많이 한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그런 사유의 여정이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공간’을 꿈꾸게 하고, 건축가로서 꿈꾸는 이상에 한 발 더 다가서게 한 것 같아요. 루이 비통의 DNA에 내재한 여행의 의미 역시 그런 혁신과 발견에 있습니다. 앞으로 유현준 앞에 펼쳐질 여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바라던 바예요. 좋은 건축물이 지어지려면 좋은 건축주가 있어야 하고, 건축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높아져야 하거든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좋은 공간을 만들어야죠. 그래서 대중과 소통은 계속할 거예요. 하지만 말만 하진 않으려고요. 이젠 닥치고 만들어야죠(웃음). 그간 떠든 이야기들을 공간으로 보여줄 때가 됐어요.
Credit
- 패션 에디터 강민지
- 피처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김시내
- 헤어 아티스트 강여진
- 메이크업 아티스트 강미해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정혜림
- 어시스턴트 김도아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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