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선택, 소피아 코폴라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감독이자 작가, 프로듀서인 소피아 코폴라가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로 제 70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특유의 여성적인 시선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그녀를 마주했다::소피아코폴라,영화,영화감독,매혹당한사람들,칸,칸영화제,엘르,elle.co.kr:: | 소피아코폴라,영화,영화감독,매혹당한사람들,칸

 주역 배우들과 함게한 칸영화제 포토콜 현장.  화려한 캐스팅과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국내 개봉 미정.  칸에서 날아온 소피아 코폴라의 감독상 수상 소식을 듣고 “드디어!”라고 외쳤다. 위대한 아버지의 이름에 가려져 종종 ‘소녀 취향의 영화’로 폄하되던 그녀만의 영화 세계가 당당히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칸영화제가 열리기 전, <엘르>가 그녀를 만난 건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작은 그리스 레스토랑. 식당에 들어서서 직원에게 이름을 댔으나 뜻밖에도 예약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폴라 이름으로 예약돼 있지 않나요?” 심지어 그는 소피아 코폴라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 <처녀 자살 소동> <마리 앙투아네트> <블링 링>을 연출한 그녀를 모른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불안한 마음에 떨고 있을 때, 기다리던 주인공이 나타났다. 에이전트 없이 혼자 등장한 그녀는 정중한 미소를 띤 채 약속시간에 늦어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마크 제이콥스 울 탱크톱, 사카이 셔츠, 블랙 진 차림의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두 블록 떨어진 편집실에서 <매혹당한 사람들>을 작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블링 링>(2013) 이후 한동안 영화계를 비운 그녀는 넷플릭스의 <어 베리 머리 크리스마스>를 연출했고 지난해엔 <라 트라비아타>로 오페라 데뷔도 했다. 그리고 올해 토머스 P. 컬리넌의 고딕 소설을 각색한 <매혹당한 사람들>로 돌아왔다. 미국 남북전쟁시대를 배경으로, 한 부상당한 군인이 여학교에 머물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소피아 코폴라는 영화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레스토랑을 나설 무렵, 서빙 직원이 다가와 살짝 귀띔했다. “당연히 그녀를 알고 있어요. 그녀는 수프 레이디에요! 언제나 수프만 주문하거든요.”<매혹당한 사람들>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칸은 당신에게 여전히 중요한 의미인가 당연하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칸에 가곤 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처녀 자살 소동>(1999)도 칸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오랫동안 매달린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는 건 늘 두려운 동시에 흥분되는 일이다. 토머스 P. 컬리넌의 소설은 이미 돈 시겔이 영화화했는데, 동일 작품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프로덕션 기획자인 앤 로스로부터 <매혹당한 사람들>의 또 다른 버전을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처음부터 리메이크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일단 돈 시겔의 영화부터 살펴봤는데, 뭔가 계속 떠오르더라. 원작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재해석하면 흥미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줄거리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파워에 관한 것인데, 그건 우리의 영원한 주제이기도 하니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나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평등하다고 믿는다. 누구나 대화에 스스럼없이 참여하길 원하지. 영화제작 시에도 강인한 여성들을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편이다. 예술 분야 그리고 영화계에선 특히 더 강한 여성적 관점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주로 여성일까 음,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물론 뭔가를 표현할 때 여성적 관점을 부각시키는 편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남성적 관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이 당당하게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영감을 주는 여성을 꼽는다면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제인 캠피언. 그녀는 내게 어릴 적부터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마초적인 남성 감독 사이에서 자라난 터라, 그녀가 철저히 여성의 관점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다가오더라. 콜린 파렐은 직접 캐스팅했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의 빌 머레이처럼 캐릭터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각본을 쓰면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둔 배우는, 이제까지 한 번도 함께 작업해 본 적 없는 니콜 키드먼이었다. 그리고 커스틴 던스트와 엘르 패닝이 떠올랐지. 콜린 파렐을 떠올리게 도와준 이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캐스팅 컨설턴트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남자 주인공은 이래야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콜린을 처음 본 순간 ‘완벽하고 카리스마가 넘쳐!’라는 생각이 들더라. 캐릭터가 지녀야 할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면을 모두 갖춘 배우다. 여성 캐릭터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남성성을 지니기도 했고. <매혹당한 사람들>의 촬영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지난가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두 달 가까이 촬영했다. 시내에서 먼저 그리고 낡은 농장으로 옮겨갔다. 남부 지방은 참 아름답고 이국적이다. 특유의 문화도 있고. 12월 즈음 촬영이 마무리됐던 것 같다. 평소 인터뷰를 보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신뢰가 느껴진다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작업이 편안하고 심플해진다. 끊임없이 모든 걸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팀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작업 과정이 여러모로 간결해진다. 2010년 <썸웨어>를 촬영했던 엘르 패닝과 지금의 엘르 패닝은 많이 다른가 당시 그녀는 열한 살이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만났을 때 느낌 그대로 성장했다. 여전히 즐겁고 생동감 넘치는 소녀지. <매혹당한 사람들>은 그녀가 보호자 없이 처음으로 움직인 영화여서 특히 대견스럽다. 이번 영화에는 앵거리 라이스를 포함해 다른 소녀 배우들도 많이 등장하는 만큼, 그들을 잘 챙기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엄마가 되면서부터 더욱 강해진 생각인 것 같다. 두 딸(10세 로미와 7세 코시마)에게 특별히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를 갖는 것이 무엇인지 평생을 거쳐 알려주고 싶다. 엄마로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 이탤리언으로 뉴욕에 살고, 때때로 파리에서 1년의 절반 이상을 보내기도 한다. 프로젝트 때문에 세계 곳곳에 머무는 일도 잦고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자라면서 언제나 중요시하는 나의 뿌리는 ‘가족’이다. 함께 모여 식사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고, 딸들도 그런 분위기를 이어가길 바란다. 여행에 더없이 익숙하지만, 여행 때문에 가족과 멀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하나 프랑스어는 들으면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한다. 어머니가 이탤리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린 영어로 소통하며 자랐다. 아빠가 프랑스인(코폴라의 남편은 밴드 피닉스의 보컬 토머스 마스)인 딸들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모두 편안하게 말하긴 한다. 그러고 보면 파리는 사람들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분위기가 참 좋다. 이를테면 점심을 2시간 동안 먹는 것 말인가 맞다(웃음). 정말 좋지 않나? 미국인과는 달리 디너를 위해 정성껏 차려입는 문화도 멋지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나 음, 서툴다. 딸들 때문에 능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 때 가장 겁이 난다. 이탤리언이어서 무조건 요리를 잘해낼 거라는 편견이 있거든(웃음). 왠지 유기농이나 채식, 글루텐 프리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데, 어떤 식단을 선호하나 정해놓은 룰은 없지만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건 맞다. 남편 토머스 마스의 밴드인 피닉스의 신곡들이 하나둘 베일을 벗고 있다. 부부로서 두 사람 관계의 비결은 아버지는 내게 늘 ‘프라이버시’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자신만의 공간이 중요하다는 걸 어릴 때부터 인지했지. 토머스 마스와 나는 떨어져 있지만, 그때그때마다 많은 걸 공유한다. 떨어져 있는 시간을 근사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 우리 관계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패션 매거진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여성’으로 선정되곤 한다 놀라울 뿐이다. 패션을 사랑하지만, 날마다 신경 쓸 만한 여유는 없다. 물론 시사회장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웃음). 패션은 자신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측면을 돌아보게 만들어서 흥미로운 것 같다. 스타일에 관해 영감을 주는 여성을 꼽는다면 프랑스 여배우 오로르 클레망(Aurore Cle′ment)! 내겐 숙모나 다름없다. 클레망의 남편이 아버지 프로덕션의 디자이너로 일했던 터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자랐다. 그녀는 내게 유럽 여성이 가진 세련됨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오로르는 남성 화이트 셔츠를 응용해 간결하게 스타일링하곤 했는데, 지금이야 흔한 방식이지만 당시엔 아주 특별했다. 최근 눈여겨본 패션 아이템이 있나 음. 한동안 좁고 어두운 편집실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잘 모르겠다. 누에고치에서 갓 빠져나온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일할 때는 유니폼처럼 늘 입는 옷이 있다. 샤르베 셔츠와 블랙 진. 한동안 이렇게 입었고, 다른 패션 아이템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 정말 오랜만에 파리에서 디디에 뤼도(Didier Ludot)를 만나러 갔을 때 1990년대에 제작된 밝은 핑크 컬러의 샤넬 재킷을 걸쳤는데, 마음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더라. 패션계에서 일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처럼 되고 싶어서 매거진 패션 에디터를 꿈꾼 시절도 있었다. 패션계를 좀 더 가까이 둘러볼 기회도 있었는데, 15세 즈음 부모님의 친구인 캐롤 부케(Carole Bouquet; 샤넬 No. 5 모델로 활동했다) 덕분에 샤넬 메종을 견학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도 칼 라거펠트는 정말 친절했다. 얼마 전에 칼을 만났는데, 언제나 그렇듯 근사하더라. 항상 내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해주는 좋은 친구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너무 열심히 일해서 올여름에는 본격적으로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생각해 봐야 할 것도 많고. 영화는 한 편의 제작이 끝나갈 무렵에는 정말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진짜 너무 힘들거든. 하지만 잘 알고 있다. 조만간 또다시 새로운 일을 벌일 거라는 걸(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