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그린스페셜] 냉소 대신 한 발 앞서기를 택한 다섯 명의 굳건하고 앳된 얼굴

16세부터 30세까지. 남다른 환경 감수성과 확신으로 계속 나아가기를 결심한 사람들.

프로필 by 이마루 2024.04.16
재킷은 From Arles. 스커트는 Neu_In. 슈즈는 Charles & Keith. 셔츠와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From Arles. 스커트는 Neu_In. 슈즈는 Charles & Keith. 셔츠와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를 표현한다면
환경 인플루언서! 내가 ‘덕질’ 중인 지구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환경을 보호 혹은 공존의 대상으로 처음 인지한 순간
2019년, 경북 의성의 쓰레기 산에 대한 뉴스가 보도됐다. 의성에 있는 20만 톤의 쓰레기 산에서 불이 났다는 것. 어머니와 그곳을 찾아갔고, 쓰레기가 아파트 8층 높이로 쌓여 있는 풍경과 마주했다. 그 순간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강하게 느꼈다. 취재 결과 전국에 200개 이상의 쓰레기 산이 2016년부터 존재했고, 2021년 그 산의 개수가 4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통계를 확인했다. 산을 뒤덮은 쓰레기의 80% 이상이 건설현장이나 사업장 폐기물이라는 사실도 함께.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쓰레기 산에 대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쓰레기 산에서 춤을!>이라는 책을 썼다.

현재 이끌고 있는 환경 동아리 ‘지지배’와 비영리 단체 ‘지구시민연합 청년팀’의 목표는
선거 쓰레기 문제. 특히 선거 유세 기간 동안 걸리는 현수막 홍보물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다. 한번 제작된 홍보물은 13일만 벽에 걸리고 다시 제작해 13일 동안 부착되는데, 이 반복적인 과정이 전국에서 이뤄지는 탓에 엄청난 양의 현수막 쓰레기가 발생한다. 우리의 대안은 홍보물 온라인화다. 150명을 대상으로 ‘선거운동 기간 안 가장 자주 찾는 매체’에 대해 조사하니 영상 매체와 카드 뉴스에 대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다행히 2022년부터 홍보물 개수 제한에 대한 법이 마련돼 3개에서 2개로 줄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홍보물 온라인화하기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활동가로서 힘이 빠지는 순간
하나의 캠페인을 만드는 데 6개월이 소요된다. 오랜 준비 끝에 공개해도 사람들 관심 밖의 일로 그칠 때 어쩔 수 없이 허무하다.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기껏 만든 환경 동아리를 무산시키는 청년도 많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2019년에는 소모임 앱이 유행했다. 당시 앱에 생성된 환경 모임은 30개가량이었는데, 거리 두기가 해제된 후부터 점점 줄어들었고 지금은 5개도 안 된다. 안타까운 결과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
2018년에 내가 자주 찾던 곳은 재활용 선별장이다. 전국에 있는 스무 군데가량의 소각장과 매립장을 방문해 보니 내가 버린 쓰레기가 처리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최근 환경단체들이 펼치는 매립장 탐방 패키지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수도권 매립지 홈페이지에서 예약만 하면 버스와 해설사를 무료로 지원한다. 이런 서비스를 잘 활용하길 바란다.

활동가로서 언제 힘을 얻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환경 교육 강연을 진행하는데, 아이들끼리 환경 문제를 토론하며 흥분할 때가 있다. 특히 초등학교 친구들은 질문도 많고 창의력이 넘친다. 그들의 열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가끔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너무 순수해서 더욱 정곡을 찌른다. “선생님!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인데 우리가 뭘 해도 의미가 있을까요?” 안타까운 질문을 던지는 그들에게 기업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이룬 훌륭한 사례를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이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더욱 분발해야 한다.

환경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사람들을 보면 드는 생각
당장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노년 세대에게 환경 문제는 뒷전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청년 세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 문제를 다룬 한 통계에 따르면 기후 문제가 1 · 2위를 다투고, 통계에 참여한 비율을 보면 청년 세대가 가장 높다고 한다.

내가 살고 싶은 미래의 풍경
나무와 자연을 해치지 않은 그린 빌딩과 제로 에너지 빌딩이 솟아난 도시. 케이블카가 사라진 풍경. 재생에너지로 살아가는 생태 도시에서 살고 싶다. 언젠가 숲 해설가인 어머니와 함께 생태마을을 꾸릴 예정이다. 함께 명상하며 자연을 느끼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다.

홍다경 지지배 활동가
1997년 대구 태생인 홍다경은 쓰레기 문제를 고민하며 전국의 재활용 업체를 방문했고, 쓰레기 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스무 살에 떠난 뉴질랜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뉴질랜드 풍경에 환경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사소한 행동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7년간 환경 문제를 취재하고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며, 현재 환경 동아리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와 비영리 단체 ‘지구시민연합 청년팀’을 이끌고 있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던 안성 쓰레기 산을 비롯해 30만 톤 이상의 쓰레기가 누적된 ‘쓰레기 산’에 대해 다룬 <쓰레기 산에서 춤을!>을 펴내기도. 생태 도시로 거듭난 미래를 꿈꾸는 홍다경은 멈추지 않는다.


재킷과 부츠는 모두 Neu_In. 스커트는 Zara. 셔츠와 타이, 이어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부츠는 모두 Neu_In. 스커트는 Zara. 셔츠와 타이, 이어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를 표현한다면

보라색. 빨강(감성)과 파랑(이성)을 섞었을 때 나오는 보라처럼 자연과 생명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동시에 냉철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환경을 보호 혹은 공존의 대상으로 처음 인지한 순간
2017년에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주 복무지가 강원도였다. 산과 바다에 쌓인 쓰레기를 보며 군생활 중반부터 고민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2021년 전역 이후 환경단체들의 SNS를 팔로하며 작은 것부터 실천하거나 이런저런 캠페인에 참여하며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3년부터 녹색연합 활동가 활동을 시작했다.

기부와 후원, 정치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퇴화하는 시점에서 시민단체 ‘녹색연합’의 강점은
현장성.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시민들에게 정확히 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민과 직접 만나고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참여 프로그램과 전문가 강연, 워크숍 개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지난해에는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홈구장 아홉 곳을 다니면서 어떤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어떻게 배출했는지, 각 구단이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기록하고 관찰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재질에 따라 분리배출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더라. 이렇게 발로 뛴 것을 토대로 법과 제도를 고민한다. 녹색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있는 녹색교육센터, 녹색법률센터,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등 전문기구와 함께한다는 점, 정부 정책이나 기업들의 개발 광풍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환경운동의 특성상 독립성이 중요한데, 정부 보조금 없이 시민 후원으로 운영된다는 점도 많은 후원자가 인정해 주는 부분이다.

활동가로서 언제 힘을 얻나
이 일이 옳다고 믿어주는, 함께하는 시민들이다. 녹색연합 회원 수나 SNS 계정 팔로 수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 최근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총선 네트워크를 출범시켜 21대 국회에서 민생경제, 인권, 평화 등의 부문과 관련한 반개혁적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올리는 공천반대운동을 펼쳤는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가 시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창구가 돼야 한다.

오늘 배경으로 선 이미지는 어떤 상징성을 가졌나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 유예, 종이컵 일회용품 규제 품목 제외 등 후퇴한 환경부의 일회용품 관리 방안을 규탄하며 약 321개의 환경 · 기후 · 소비자 · 청소년 단체가 지난해 11월에 가졌던 시위와 퍼포먼스 풍경이다. 2022년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UN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플라스틱협약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협약을 준비할 만큼 국제사회가 깊게 공감하는 문제다.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물 발생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다. 재활용으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플라스틱이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분명히 밝혀졌고, 실질적인 생산과 소비를 줄이면 된다는 명확한 해법이 존재함에도 약속된 규제를 이행하지 않고 역행 중이다.

환경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사람들을 보면 드는 생각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탓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정치 · 경제 기득권자들이 환경에 무관심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생각한다. 성장이 중요하다, 환경 문제보다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정보를 접하게 되면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 환경 문제다. 활동가로 일하면서 매일의 고군분투가 거대한 문제 앞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너져가는 생태계를 보면 분명히 후회할 것을 알기에 이윤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반대 목소리를 부끄럽지 않게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살고 싶은 미래의 풍경
강원도의 자연을 좋아한다. 다른 동식물과 각자 사는 생활방식과 서식지를 존중하며 자연 가까이 살고 싶다.

진예원 녹색연합 활동가
1994년 서울 태생인 진예원이 처음부터 환경운동가를 꿈꾼 것은 아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다른 생명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가치에 막연히 공감하며 분리수거 정도를 실천하는 시민이었던 그가 자연과 가까워진 것은 직업 군인의 길을 걷게 된 2017년 이후다. 군인으로서 지키려 했던, 우리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현장에서 느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수해와 산불, 가축전염병에 투입되는 군 병력들, 작전 지역인 해안에 쌓인 쓰레기를 보면서 기후 위기를 절감한 것. 전역 이후 환경보호가 인생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가치임을 깨닫고 녹색연합 활동가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딘 진예원은 시민의 힘을 믿는다.


재킷은 Bottega Veneta. 니트 베스트는 Sunflower. 팬츠는 Add. 슈즈는 Marni. 볼 캡은 Miu Miu. 셔츠와 타이,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Bottega Veneta. 니트 베스트는 Sunflower. 팬츠는 Add. 슈즈는 Marni. 볼 캡은 Miu Miu. 셔츠와 타이,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를 표현한다면

자유로운 영혼.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은 어느 정도 그렇게 된 것 같다.

환경을 보호 혹은 공존의 대상으로 처음 인지한 순간
기억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관련 행사를 많이 다녔다. 가끔은 가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날에도 내가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그리고 새만금 마지막 갯벌이라고 불리는 수라가 있는 군산이 집이다 보니 이 풍경을 지키고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느낀다.

어머니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봤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없잖아요”라는 말처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운 풍경은
어떤 것을 대상으로 그런 마음이 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내가 볼 수 없는 것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계절도 점점 덥거나 춥거나,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나. 기후를 비롯해 많은 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중학생이다. 친구들과 기후 위기와 관련해 나누는 대화도 있다면
자연과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대안학교에 다니다 보니 내부적으로 환경보호와 관련된 활동이나 수업이 있다. 기후 행진에 참여하기도 하고. 동물권을 비롯해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선배도 있다.

대안학교를 택한 이유는
일반 학교를 다니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를 알아가고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고민이 있었다. 공부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시험과 경쟁에 치여 지내기보다 나에 대해 모색하고 싶었다.

제천의 풍경은 군산과 어떻게 다른 것 같나
군산은 바다와 갯벌이 많다면, 제천은 산에 둘러싸여 있다. 각자 매력이 있기에 어느 쪽이 좋다고 꼽을 수 없다.

특별히 좋아하는 생물체
매. 날카로운 눈빛을 비롯해 보는 순간 멋있다는 생각이 즉각적으로 든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입소한 매를 아버지가 치료하는 것을 가까이 본 적도 있지만, 역시 매는 하늘에 있을 때가 가장 멋있다. 요즘 새들이 유리창, 방음벽에 부딪혀 많이 죽는 것이 문제인데 아버지가 관련 정책을 발의했다. 방음벽 제작 과정에서 격자 무늬 패턴을 입혀, 새들이 알아보고 피할 수 있는 정책이다.

그럴 때는 부모님이 자랑스럽겠다
자랑스럽다. 엄마도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감독으로서 워낙 여러 번 수상하다보니 집 진열대가 상으로 가득하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경험
지금 학교에 오게 된 것.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새로운 문제를 많이 고민하게 됐다. 관계의 갈등도 경험하며 다른 사람한테 나를 굳이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환경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사람들을 보면 드는 생각
그게 어른들이라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나이 들어 죽는다지만 다음 세대는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일까? 지금 환경을 둘러싼 각종 문제들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적극적이지 않은 또래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기와 직접 연결된, 나중에 겪게 될 문제인데 아쉽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쿨’한 사람! 그게 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망설이지 않는 대범한을 가진, 해보고 싶은 일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계여행도 떠나고 싶다.

내가 꿈꾸는 미래
돈이나 이윤보다 사람을 먼저 볼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전쟁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회 문제들이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도 필요하지만 사회는 그보다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태어나서 가장 몰입한 것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맨몸운동을 하고 있다. 많은 변화를 느낀다.

김도영 학생
김도영은 남달리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났다. 동물원과 로드킬, 채식과 갯벌 등 다양한 분야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영화감독 어머니,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근무하는 수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까. 탄생과 유년시절의 일부가 채식과 육식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에 기록 되기도 했던 도영은 “거기에서 아빠가 악역을 맡았죠”라는 농담을 건네면서도 내심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지금의 도영은 그냥 김도영이다. 섬세하고 명징하게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하고 씩씩한 소년을 충북 제천에서 만났다. 소년 뒤에는 칠면초가 피어나고 철새가 날아가는 군산, 수라의 풍경이 걸렸다.


환경을 보호 혹은 공존의 대상으로 처음 인지한 순간
신문 읽기를 좋아했던 고등학생 시절, 기후 위기 관련 기사가 다양하고 많아지는 걸 절감했고, 기후 위기는 우리 삶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다.

오늘 배경으로 선 이미지는 어떤 상징성을 가졌나
2022년, 국내 팬들로부터 기부받은 8000장 이상의 실물 앨범을 팬들의 메시지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옥으로 보내는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NKDP)’ 캠페인 이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들이 기후 행동에 참여했다. 3주 만에 8000장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한편으론 팬들도 골머리를 앓았을 거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꼈다. 캠페인 이후 SM과 YG엔터테인먼트는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발매했고, JYP는 이 산업 최초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한국형 RE100’을 달성했다. 하이브는 BTS 제이홉의 솔로 앨범을 디지털 플랫폼 앨범으로 발매해 실물 앨범 쓰레기를 최소화했다.

그럼에도 K팝 산업이 여전히 간과하는 부분
산업 구조상 팬들이 가장 절실하게 변화를 요구하는 ‘실물 앨범 쓰레기 줄이기’는 여전히 이뤄지기 힘든 게 현실이다. 캠페인을 하며 가장 강력하게 외친 내용은 팬들이 앨범을 구매할 때 실질적으로 수령할 앨범 개수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는 ‘앨범 미수령 옵션’을 영구적으로 도입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이 옵션을 시도한 기획사가 없어 아쉽다.

지금 케이팝포플래닛이 집중하는 문제
많은 아티스트가 패션 하우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금, UN기후변화협약의 자료에 따르면 패션 브랜드는 연간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모든 운송과 국제선 항공편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지속 가능성을 외치고 있지만,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래서 우리는 패션 캠페인 ‘명품 언박싱: 그린 워싱 에디션’을 통해 세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첫째, 그린 워싱 그만두기. 둘째, 2030년까지 공급망에서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할 것. 셋째, 전 공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투명성을 높일 것. 패션 캠페인 이후 구찌와 생 로랑의 패션 하우스인 ‘케링(Kering)’과 만남을 가졌고,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함께 상의하는 중이다.

활동가로서 언제 힘을 얻나
케이팝포플래닛은 나를 포함해 7인의 활동 멤버로 구성된다. 좋은 아이디어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캠페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서로 지탱해 주고 있다. 매일 줌이나 메신저, 온라인으로 만나는 사이지만 이들은 나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자 영감이다.

환경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사람들을 보면 드는 생각
노년 세대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갈 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세대는 나를 포함한 청년층보다는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고 심각성을 비교적 적게 느낀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최근 한 환경 기사에 따르면 기후 위기에 대해 인지하고 그에 대한 정책에 따라 투표할 의사가 있는 기후 유권자의 비율은 40대부터 60세 이상 연령대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전에 갖고 있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고, K팝 팬덤은 나이 제한이 없는 만큼 앞으로 다양한 연령대를 고려해 캠페인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살고 싶은 미래의 풍경
정부와 기업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를 갖고 있음을 인지해 소비자와 시민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풍경을 보고 싶다. 그리고 K팝 아이돌이 K팝 산업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K팝 아티스트가 관여하고 있는 모든 산업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캠페이너로서 최종 목표다. 팬덤의 문화와 사랑의 힘으로!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
이다연은 200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환경 문제를 외치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시절, 청소년 기후 행동 단체 ‘청소년기후행동’ 활동이 시작이었다. 이 단체에서 K팝 열기가 한국만큼이나 뜨거운 인도네시아 캠페이너 ‘누룰 사리파’를 만나 함께 ‘케이팝포플래닛’을 결성했다. 이미 K팝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숲을 조성하거나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하는 등 기후 행동에 임하고 있었기 때문. 지금의 케이팝포플래닛은 앨범과 굿즈 생산량을 줄이는 등 지속 가능한 K팝 산업과 사회를 위해 다채로운 캠페인을 선보이고 있다. 내가 향유하고 싶은 문화가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라는 ‘팬심’을 담아.


블라우스는 Dint. 팬츠는 The J.Soo. 슈즈는 Charles & Keith. 벨트는 Celine. 링과 시계는 모두 본인 소장품. 이어 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라우스는 Dint. 팬츠는 The J.Soo. 슈즈는 Charles & Keith. 벨트는 Celine. 링과 시계는 모두 본인 소장품. 이어 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를 표현한다면
사랑 많은 사람. 동물도, 아이도, 환경도 좋아하는 보통의 대학생이다. 그러니 기후 행동 또한 사랑하는 것들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활동가이기에 미디어 속의 모습처럼 급진적이고 날 선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서툴지만 명랑한 내 모습을 보며 “너는 그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향해 좀 더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이야”라고 얘기해 준다.

오늘 배경으로 선 이미지는 어떤 상징성을 가졌나
2018년부터 비자림로 2.94km 구간을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삼나무 700여 그루가 잘려나갔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일. 그때 나는 온전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활동가로 쉼 없이 달려온 이유는 내 동생, 내 친구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살길 바라서였는데 온몸과 마음을 써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보상받고 싶었고,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었다. 당시 비자림을 향한 행동가들은 그런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때 아쉬움과 감사함을 기억하기 위해 골랐다.

지금까지 활동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
환경운동은 눈에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결과가 없어 씁쓸하지만, 그래도 최근 가장 뿌듯했던 건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 투쟁에서 법정이 해녀들의 손을 들어준 일에 목소리를 보탠 것. 4년간 활동을 이어가며 사람들이 이슈에 관해 내게 대화를 시도하고, 내 이야기가 세상에 실리거나 회의적이었던 부모님이 마음을 여는 모습, 특히 주변 사람들이 일상에서 환경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모습을 보면 뭉클하다.

‘청소년녹색당’으로 연대 활동을 이어간다
급식권 개정 운동으로 학교를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고, 작은 성취를 이뤘지만 학교 밖으로 나오는 순간 현실은 똑같았다. 결국 법이 바뀌어야 사회적 움직임이 있단 걸 깨닫고 입당했다. 특히 탁상공론 법안에 지역 당사자성을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대위원장으로 당 정책에 의견을 내고 기후 위기와 청소년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있어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 인식에 차이가 있다고 보나
아무래도 지역 내 활동은 이슈가 잘 묻힌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너도나도 다루지 않나. 활동가들이 지역 내에서 발품을 팔면서 얘기할 수밖에 없으니 그 지역의 일이 될 뿐이다. 최근 정읍에서 소싸움이 폐지됐지만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처럼. 지역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도 크다. 과도한 수도권 밀집화와 하향식 국가사업계획 때문인데 수도권과 도시화된 곳에 제공해야 할 전기 같은 에너지원과 많은 양의 하수는 땅값이 비싼 도시가 아닌, 근교에서 처리해야 한다. 밀양 송전탑, 석탄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로 인한 소음과 공해 등의 리스크를 지역이 감당하고 있다. 하향식 국가적 사업도 마찬가지다. 광주 무등산 케이블카 사업의 경우 지역 특성과 현실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다는 1차원적 생각에서 나온 계획이다. 야생동물을 쫓아내기보다 지역 특색을 살린 후 상권을 살리는 정책과 사업 계획이 생겼으면 좋겠다.

특히 ‘한국적’이라고 생각되는 환경운동에 대한 편견들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뒷배가 있다는 말. 뭐든 한 번씩 꼬아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을 설득하고 함께하는 일이 곧 기후 행동이다.

최근 가장 관심 있는 환경 문제는
제주 우주환경센터 설립 이슈. 강정해군기지와 국제공항도 우주 전쟁을 위한 시판대처럼 느껴진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과도한 탄소를 배출하는 우주 산업화, 과연 국민과 지구를 위한 방향일까?

기후우울증을 실감한 경험
현재 기후 변화 추세가 지속될 경우 인류와 지구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 탐구한 <2050 거주 불능 지구>라는 책을 읽고 크게 앓았다. 내가 열심히 목소리를 내도 국가와 기업, 사람들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말랑말랑’하게 설명하면 관심을 두지 않고 날카롭게 외치면 적대감을 느끼니 그 과정이 고되고 힘들다. 무력감에 상담도 받고 약도 먹었는데, 내 목표는 분명하니 한두 시간이라도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간다.

활동가로서 힘이 빠지는 순간
‘그럴 시간에 공부해라.’ 활동가들의 삶에 무관심한 말을 들을 때. 활동가들은 반대 의견만 세우지 않고 그에 따른 대안과 사회과학적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요즘 전 세계의 젊은 활동가들은 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닦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귀 기울여주시길.

“‘여자애가 저렇게 기가 세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내게 다가오는 차별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청년이자 여성 그리고 환경운동가. 이 여러 층위의 개념에는 다채로운 차별과 혐오가 존재한다. 모두 내가 ‘온순’하길 바란다. 하지만 이 문제 앞에 성별이 잣대가 될 수 없다. 탁상 결정권자는 대부분 남성들인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만들어가는 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 사례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고등학교 때만 해도 굉장히 배척했다. 최근 다시 화두가 됐다. 이 문제를 이분법이 아닌, 융합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로 이해하는 시선이 늘어간다는 걸 느낀다.

내가 살고 싶은 미래의 풍경
평범하다. 적절한 임금을 받고, 누구든 정치를 하며, 청소년들이 주체적인 삶을 찾아 공부할 수 있는 사회, 야생동물이 자연에서 살 수 있는 지구. 기후 위기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강대국이 아닌 소수 국가에 영향을 끼친다. 폭우가 오면 가장 낮은 집이 잠기고, 날로 뜨거워지는 햇볕에 어린이들이 사망한다. 그 일이 닥칠까 봐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해 보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이은지 청소년녹색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은지는 자신의 모든 동력을 ‘사랑’이라 말한다. 급진적이고 날 서 있는 사람이라는 오해 뒤편에 밝고 명랑한 스물한 살의 이은지가 있다. 2004년 광주에서 태어나 환경 감수성이 풍부한 부모님과 소농하시던 할아버지 품에서 자란 그는 당연한 풍경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조금 더 높일 뿐이다. 학교를 바꾸기 위한 환경활동을 넘어서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후 행동에 전념하기 위해 자퇴를 결심했다. 대부분 환경운동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지만, 한때 기후우울증과 번아웃에 시달려 외면했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를 다시 이끈 것도 사람. 환경운동이 곧 ‘사람 운동’이라 믿는 그는 지금 제주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4년째 청소년녹색당 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역과 여성, 청년이라는 복합적 층위에 따른 편견 어린 시선에도 그는 1년 혹은 단 10분이라도 지구의 수명 연장을 꿈꾼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보편적인 말.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사진가 이예지 / 진소연
  • 스타일리스트 박선영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