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몸에는 아름다운 선이 흐른다. 태생적으로 부드러운 선을 부여받은 여자들은 타인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곡선미’를 가꾸고 치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 곡선미를 강조한 ‘노출’은 극단적인 유혹이자 야릇한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구애로 치부된다. 마치 사회적 금기를 깬 불순한 행동처럼. 하지만 현재, 패션계는 노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패션 기술로 당당하게 즐기라고 말한다. 두 가슴을 바짝 모아 클리비지를 아찔하게 드러내던 노출과는 다른, 가슴과 엉덩이의 새로운 노출 방식이 화두로 떠올랐다. 상의 탈의의 자유를 주장하는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이 가장 대표적이다.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가 소환한 프리 더 니플은 여성의 몸에 코르셋 해방을 선사한 코코 샤넬처럼 브라 안에 고정된 가슴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여성 혐오 발언과 니플 노출을 금지한 SNS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여자들이 브라를 벗어 던진 행동이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설파하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디올의 슬로건 티셔츠도 노 브라를 전략적으로 드러내는 페미니즘 패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회적 움직임과 페미니즘적인 패션의 만남은 프리 더 니플이 선정적이지만 정당한 이유를 안고 훨훨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었다. 니키 미나즈가 가슴을 드러낸 채 2017 F/W 하이더 아크만 쇼에 참석하고, 켄덜 제너가 니플이 보이는 시스루 룩이나 니플이 그려진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 나타난 건 관심종자여서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유를 찾기 위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역시나 할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언더붑(가슴 아래) 노출 역시 프리 더 니플 캠페인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엘르> 미국은 ‘Is Underboob the new sideboob?’이라고 표현하며 과감하게 파인 톱 사이로 사이드붑(가슴 옆면)을 노출하던 스타들이 언더붑을 노출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카일리 제너는 인스타그램에서 언더붑 패션으로 섹슈얼한 매력을 극대화시켜 ‘좋아요’ 세례를 받았고, 레이디 가가는 ‘Why Not?’이란 표정으로 언더붑이 드러난 티셔츠 룩을 쿨하게 소화했다. 지난 미국 대선을 앞두고 투표 장려 캠페인을 위해 타임스퀘어를 찾은 켄덜 제너는 짧은 크롭트 톱을 입은 채 사람들 앞에 섰다. 그녀는 외설적인 도발이 아닌 당당한 노출임을 말하듯 ‘Under Boob is My Ting’이란 문구와 함께 자신의 언더붑을 찍어 스냅챗에 올리기도 했다. 여기에 이번 시즌 펜디와 발맹 펜티 푸마, 이지가 언더붑이 패션의 새로운 성감대임을 알리듯 언더붑이 드러난 애슬레저 룩까지 선보였으니, 이 정도면 유례없는 파격적인 가슴 노출이 시대적 흐름과 함께 하이패션부터 스트리트 영역까지 도달한 셈이다.더 나아가 노출의 기술은 가슴에서 엉덩이로 내려와 풍만한 뒤태로 이어졌다. 엉덩이 아래쪽 라인을 은밀하게 드러내는 일명 ‘베어 버트 진(Bare Butt Jeans)’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 젊음을 상징하는 데님과 슬릿 사이로 벌어진 언더버트(Underbutt)의 노출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자극하며 아찔한 관능을 선사한다. 데님 브랜드 리/던(Re/Done)은 오른쪽 주머니 아래 슬릿이 들어간 ‘High Rise Ass Rip’(엉덩이 부분에 칼집이 들어간) 데님 팬츠를 선보였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대다수가 품절된 상태. 여기에 베트멍이 베어 버트 진 스타일에 파격을 더할 만한 이슈까지 터트렸다. 얼마 전 리바이스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엉덩이 중심을 따라 지퍼가 달린 데님 팬츠를 선보인 것. 이 지퍼는 실제로 열리고 닫힌다! 베트멍은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퍼를 열어 엉덩이를 노출시킨 이미지를 선보였는데, 댓글에는 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스타일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내는 능력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클래식한 데님 브랜드인 리바이스가 이런 파격을 남길 수 있는 건 노출 패션에 대해 거침없는 발상을 떠올린 베트멍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을 테니까.최근, 카라 델레바인이 삭발한 채 2017 메트 갈라에 등장해 이슈가 됐다. 그녀는 시한부 암환자 역할을 맡은 <라이프 인 어 이어>를 위해 삭발을 감행했는데, 이를 놓고 불편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아름다움은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아름다움에 제한은 없다”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확고한 메시지를 설파했다. “사회적으로 규명된 아름다움의 정의에 매우 지쳤다. 옷을 벗어 던지고, 메이크업을 지우고, 헤어를 잘라내라. 우리한테 있는 모든 것들을 지워버려라.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아름다움을 정의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아름다움이라고 봐야 하는가?”라고 언급한 카라 델레바인의 토로처럼 노출 방식 역시 사회적 규범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단정 짓고 있는 건 아닐까? 노출에 대한 시각의 틀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둔다면 반항적인 도발이 아닌 자유롭고 대담한 자기 표현으로 인식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