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덕업 일치’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파고드는 ‘덕질’이 직업과 일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 또한 한때 덕업 일치를 이룬 적 있다. 전 직장에서 ‘코덕’ 즉 코스메틱 덕후로 인정받은 덕분에 화장품 론칭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게 된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화장품 ODM 업계의 톱을 다투는 중견 기업 두 곳과 함께 보디 전문 제품을 론칭하는, 코덕 친구들 사이에서 성공한 덕후로 인정받을 만한 커리어였다. 어떤 화장품을 만들지에 대한 기획과 브랜딩 전략부터 패키지와 VMD, 인테리어 디자인, 화장품 개발과 생산, 유통, 광고 및 홍보까지 화장품 산업을 A부터 Z까지 훑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비록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간에 이직해서 제품 생산 이후의 과정을 직접 지켜보진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평생 기억해야 할 교훈 하나를 얻었다. 화장품 원가는 화장품 가격의 10%도 채 되지 않으며, 고로 10만 원짜리 화장품과 1만 원짜리 화장품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점! 미미한 성분으로도 피부 컨디션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예민한 피부가 아닌 이상 굳이 값비싼 화장품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새삼스러운 진리를 깨달은 당시는 딱히 필요한 화장품이 없어서 한동안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미백 크림이 필요해 최근 제품을 수소문하던 중 불현듯 화장품 원가의 불편한 진실이 기억났다. 그래, 이번에는 백화점에 가지 말고 ‘온라인 유명템’을 써보자! 이번에도 내 든든한 뷰티 구루 <엘르> 뷰티 디렉터에게 SOS를 쳤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제품 여섯 가지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제품을 사용하기 전에는 홍보나 광고성 콘텐츠에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 미리 제품을 검색해 보지 않았다. 어딕션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접한 브랜드였기에 어떤 편견이나 호불호 없이 사용해 본 내용임을 밝혀둔다. 괄호 속의 숫자는 원고를 쓰는 지금 이 순간 확인해 본 인스타그램 속 제품의 해시태그 개수이다. 제품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랄까.주근깨, 기미 등의 얼굴 잡티 뿐만 아니라 겨드랑이, 팔꿈치 등의 색소 침착된 보디에도 사용할 수 있는 스팟 올킬크림, 4만9천원, Aplin. #애플린(746) #애플린올킬크림(55) #애플린스팟올킬크림(146) 제일 먼저 뚜껑을 연 제품은 개인적으로 당장 필요했던 미백 제품인 애플린의 스팟올킬크림이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말이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속담 아닌가. 요즘 햇빛은 주근깨가 30년째 콤플렉스인 나에게는 쥐약 같은 존재다. 고로 미백 크림은 내 피부에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애플린의 스팟올킬크림에 대한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강추하길래 나간 소개팅에서 얼굴 보고 키 보고 실망한 느낌이랄까. 요즘 화장품에 비해 패키지 디자인이 시대를 역행한 느낌이다. 하지만 막상 제품 자체는 꽤 괜찮았다. 스킨케어 제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레몬 컬러의 투명한 젤 타입 크림이었는데 겨우내 밤 타입의 끈적한 크림을 쓰다가 가벼운 크림을 바르니 피부에 흡수도 잘되고 부드럽게 발렸다. 미백 크림의 특성상 좀 더 오랜 시간 꾸준히 써봐야 효과도 훌륭한지 확인할 수 있겠지만!립 제품과 섞이지 않는 특수 오일, ‘폼블린’이 함유돼 립 컬러를 코팅한다. 립실드, 2만5천원, Urica. #유리카(3929) #유리카립실드(211)입술 톱 코트라니, 제품 컨셉트가 독특해 기대가 높았던 제품이다. 자그마한 립밤 정도의 사이즈인데 내용물은 두 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어 충분히 흔들어 사용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내용물이 작고 불투명한 튜브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흔들어도 잘 섞인 건지 확인할 길이 없다. 립 제품과 섞이지 않는 특수 오일이 함유돼 입술을 코팅해 주는 기능을 해준다는데, 불행히도 내가 입술을 잘 깨물어서인지는 몰라도 기대했던 만큼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바르기가 무섭게 입술에 흡수돼 버리는 립 락커같은 제품에 제 효과가 드러나는 듯! 오일 성분 때문에 반짝이는 텍스처를 남긴다.‘닦토’(닦아내는 토너)의 과정을 간편하게 도와주는 원스텝 핌플 클리어 패드, 2만5천원, Cosrx.#코스알엑스(4197) #핌플패드(2496) #원스텝핌플클리어패드(408) 7~8년 전, 뷰티 업계 지인으로부터 피터 토마스 로스의 패드를 추천받은 적이 있다. 보통의 크림 보틀 속에 각질제거제에 적신 코튼 패드가 들어 있고, 패드 한 장을 꺼내 얼굴을 닦아주면 각질이 제거되는 제품이었다. 아주 혁신적이고 편리했다. 코스알엑스의 원스텝 핌플 클리어 패드도 그와 같은 컨셉트의 제품이다. 보디 크림 사이즈의 플라스틱 보틀 안에 천연 BHA 성분이 함유된 각질제거 성분을 적신 엠보싱 코튼 패드가 들어 있다. 얼굴에 테스트하지 전, 좁쌀여드름 퇴치가 시급한 등에 먼저 사용해 보기로 했다. 손가락에 코튼 패드를 끼워 뒷목 아래쪽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부위를 꼼꼼하게 닦아주었더니 다음날 놀랄 만큼 등이 매끈해져 있는 게 아닌가. 1주일에 한 번씩 얼굴은 물론, 등 케어에 적극 사용할 예정이다.SNS 유저라면 한 번쯤 피부 비포 앤 애프터를 봤을 만큼 여드름 피부의 인생템. 바데카실P, 2만2천5백원, 23 Years Old. #바데카실(2947) #바데카실P(345)수면 팩처럼 바르고 자면 각질을 제거해 주는 제품이다. 천연 식물에서 뽑아낸 해독 성분으로 피부의 해독 효소를 활성화시켜 주고 항산화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미세 먼지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혹할 만한 기능이지만 아쉽게도 내 피부는 얇고 건조해서 각질이 잘 쌓이지 않아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크림에 피부가 적응하기까지 한 달 정도는 1주일에 세 번만 사용하라고 조언하는데, 얇고 민감한 피부를 가졌다면 1주일에 한 번 사용으로 충분할 듯하다.입체적인 펄감이 반짝이 덕후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바셀린’ 섀도란 별칭이 더 익숙한 더 아이섀도우, 92 마리아쥬, 99 미스유모어, 2만5천원, Addiction.#어딕션(4618) #어딕션섀도(209)차가운 날씨에는 매트하고 차분한 컬러의 아이섀도를, 더운 날씨에는 반짝이는 펄 섀도를 사용하는 것은 클래식 메이크업의 공식이다. 이제는 펄이 필요한 계절! 개인적으로 곱고 미세한 펄보다는 ‘차르르’ 바셀린 광이 나는 펄 아이섀도를 선호하는데, 어딕션의 펄 섀도들은 기존에 아껴온 고가의 유명템과 쌍벽을 이루거나 혹은 그 이상이다. 촉촉하고 반질반질한 아이 메이크업을 원한다면 강력 추천! 컬러 셰이드가 다양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유해 성분에 민감한 한국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7무 네이처소스 휘핑 클렌저, 2만8천원, Dewytree. #듀이트리클렌저(9) #듀이트리(3145) #듀이트리7무클린헬시폼(9)폼 클렌저든, 핸드 워시든 거품을 알아서 만들어주는 클렌저를 좋아한다. 듀이트리의 7무 클린 헬시폼도 펌핑하면 고운 입자의 폼이 나오는 편리한 제품이다. 약산성 클렌저라 세안한 뒤 땅기는 느낌도 없었다. 향기가 그리 좋지 않고, 눈에 제품이 들어가면 살짝 따갑다는 점이 아쉬웠다. 최근 D 사의 새로 나온 폼 클렌저도 펌핑해서 사용하는 제품이라 듀이트리와 번갈아 가며 사용했더니, 향기나 눈에 자극이 적다는 건 D 브랜드의 장점이지만 듀이트리와 비교해 가격이 1.5배 이상 비싸다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다. 두 제품 모두 세안 후에도 피부가 촉촉하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