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대로 산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사람이든 동물이든 결국 제각기 생긴대로 살기 마련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 나는 그것을 나의 작은 고양이에게서 배웠다.::김자혜, 하동, 지리산, 마당, 시골집, 가드닝, 고양이,귀촌,여유, 민박, 힐링,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한옥, 레노베이션, 건축, 집, 엘르, elle.co.kr:: | 김자혜,하동,지리산,마당,시골집

늘 내가 바라는 바대로 살아왔다. 큰 굴곡이 없는 삶이었으니 온 우주에 감사할 일이다. 어쩌면 기억력이 지나치게 나쁘거나 지나간 기억을 좋은 방향으로 조작하는 데에 탁월한 덕일 수도 있다. 원체 그릇이 작아 그럭저럭 분수에 맞는 걸 꿈꾸고 만족해 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대체로 평화로운 한해 한해를 살아오던 중,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자가 있었으니, 턱시도를 입은 작은 고양이였다. 처음 우리집에 온 시절의 모습. 언제나 깜짝 놀란 동그란 두 눈을 장착한 녀석!자동차 엔진룸에서 구조되어 ‘엔지’라는 이름을 얻은 고양이는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태어난지 5개월 된 겁이 많은 아기고양이. 집에 온지 일주일이 넘도록 소파 밑에 숨어있던 고양이를 보고 우리는 단지 조금 소심한 탓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웬걸, 그녀와 한집에 산지 벌써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녀석을 제대로 만져보지 못했다. 사람의 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는 전문가의 추측. 손을 가까이 가져가기만 해도 난리가 났다. 병원에라도 데려가야 하는 날엔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버둥거리고 할퀴고 심지어 깨물고, 배설물을 지리고서야 겨우 잡히는 녀석. 한없이 사랑스럽다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녀석. ‘너무 귀여워!’와 ‘대체 왜저래?’가 반복되는 날들이, 원망과 하소연과 체념의 시간을 지나 벌써 햇수로 벌써 삼년째다. 어떤 날은 꿈을 꾸었다. 그 아이를 쓰다듬는 꿈. 콧잔등을, 작은 뺨과 목 뒷덜미, 기다란 등을. 보드라운 털을 한없이. 하지만 현실은 늘 그만큼의 거리.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녀석은 매일매일 집안 어딘가에서 평화를 누리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만 들려주는 이상한 소리로 울고 눈을 꿈뻑이며 애교를 피운다. 저 멀리에서 삐약거리는 작은 소리. 좋아한다고 해서 꼭 만져야하는 건 아니라는 걸, 오만가지 사람이 있듯 오만가지 성격의 고양이가 있다는 걸 녀석에게서 배웠다. (위) 서울에 살던 시절, 아파트에서.(아래) 하동으로 이사온 뒤, 창가에서 겨울 볕을 즐기는 모습.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나. 시골에 와 살며 알게 된 동네 사람들 때문에 남편과 나는 꽤 곤혹을 치렀다. 말도 안되는 것을 말도 안되게 요구하는 사람, 무턱대고 마당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 온갖 참견을 다 하는 사람, 나쁜 소문을 내는 사람 등등. 대체 저들은 왜 저러는가! 어느 날 홀로 가만히 앉아 동네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대부분 이곳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 이 땅과 낡은 제 집과 밭이 그들의 전부다. 낯선 이들의 등장에서 시작된 호기심을, 드디어 생겨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왠지 모를 불안을 그들도 어찌할 줄 몰랐을 것이다. 귀촌하려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마도 동네 사람들의 텃세일 것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물론 동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도시인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 심리적 거리, 그리고 표현 방식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건넨다. 어떤 이는 무조건 ‘세게’ 나가라고 하고, 어떤 이는 아양을 떨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약간 거리를 두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나의 고양이에게서 배웠다. 오만가지 성격의 고양이가 있듯 오만가지 사람이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