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호와 13 호의 합체 13호. 내 손가락에 맞는 반지 치수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이제껏 반지를 낀 적 없으니 손가락 둘레를 잴 일도 없었다. 하물며 몇 번의 연애가 엎어지고 깨졌어도 커플 링은 남의 연애질에서만 존재했다. 어차피 이별의 피날레를 겪고 나면 낡은 퍼즐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을 애써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반지라면 또 모를까. 살다 보니 반지를 맞출 일이 생기더라. 나름의 정절을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결혼반지다.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밥 먹었어?”란 말이 안부고 인사가 될 즈음 결혼하기로 했다. ‘끼리끼리 논다’고 우리는 잘 맞았고, ‘끼리끼리 산다’로 상황이 바뀌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같이 사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하지 말아야 할 변명은 없었다.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초혼 나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지만 혼자 사는 미래가 두려워서 내린 결심은 아니었다. 다만 사연 많은 만남에는 회전초밥집의 레일 시스템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해, 좋은 사람을 놓치면 그만 한 상대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살면서 이렇게 큰 지출을 한 적이 있었을까 싶다. ‘결혼’을 명분으로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 돈을 쓰는 중이다. 손으로 쥐어본 적 없는 뭉칫돈들이 통장에서 새어나가고 있다. 결혼은 눈 질끈 감고 외치는 주문이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일에도 준비하고 마련해야 할 것은 차고 넘쳤다. “살림살이는 살면서 채우면 되지.” 처음에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담백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우리의 초심은 얇은 비닐봉지처럼 가벼웠다. ‘이때 아니면 언제 해 보겠어’ 하는 생각에 씀씀이가 커졌고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이란 위안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에디터란 직업이 나름 호사스런 물건을 보고 만지는 일이라고, 나도 모르게 눈높이가 높아진 것도 지금 사태의 한 원인이 됐다. 나는 내가 좀 무던하고 수더분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격을 묻지도 않고 그녀 것보다 화려하고 대담한 디자인의 결혼반지를 직접 고른 뒤 생각을 고쳐 먹었다.어느 시인은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라고 썼다지. 가슴 저릿하게 만드는 시구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섹션을 클릭했다가 무기력과 낙담을 느끼게 되는 요즘 같은 때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입지 조건을 배제하더라도 ‘의자 몇 개 놓을 수 있는 신혼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이런 과정이야 1차원적인 문제다. 시간을 할애하고 발품을 팔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다가오는 주말에도 신혼부부 코스프레를 하고 타인의 사적인 공간을 스캐닝해야 하는 입장에선 그렇게 믿고 싶다. 오히려 의자 몇 개를 사는 일이 이보다 엄정하고 고차원적인 사유를 요구한다. 신혼집에 비해 살림살이는 대안이 많고 가격이 만만해 보여 다분히 기호와 취향을 타기 쉬운 속성을 지녔다. 그런 까닭으로 칫솔 하나를 사더라도 만족스러운 합일의 지경에 도달하는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계산대에 이를 수 없다. 이 사실을 처음 실감한 건 주방용품 매장에서였다. 각자 디자인과 실용성을 운운하며 밀어붙이다 팽팽한 긴장 사이에 고립된 것이다(디자이너인 여자친구는 나만큼이나 삶의 방식과 취향이 확고하고 멋진 사람이다). 오래도록 개별자의 삶을 살아온 성인들이 ‘너와 내 것’이란 공동 개념에 익숙하지 않아 일어난 불협화음이랄까. 지금의 이 과정은 어쩌면 함께 사는 인생을 대비한 적응 훈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평행 궤도를 잡아가고 있지만 좋은 점은 이거다. 조율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뭔가 하나씩 클리어할 때마다 누가 먼저든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이해해 주고 양보해 줘서, 방금 전 판매원의 화술에 넘어가는 나를 타일러줘서 고맙다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아끼게 되는 이 말을 부쩍 많이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다행이다. 덜컥 흔들리는 내 중심을 가만히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결혼 준비를 안 해 봤으면 모를 뻔했다. 아내가 될 여자친구의 손가락 둘레 사이즈가 7호란 사실도 더불어. 김영재·피처 에디터긴 여행을 위한 지침서벌써 3년이다. 3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아내가 돼서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러니까 아내와는 6년째 알고 지낸 사이가 된 셈인데 우린 남들이 신혼부부라고 부를 때도 특별히 신혼 같다는 생각을 못했다. ‘4년째 연애 중’이 ‘결혼 4년 차’로 갑자기 바뀐 기분이었달까. 어쨌든 연애라는 것이 인생에서 쓸모없는 단어가 된 뒤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혼했다는 것이 새삼스레 실감 난다거나 그렇진 않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종 실감한다. 이를테면 타인의 결혼식장에 가게 되는 경우, 턱시도를 입을 일도 없었고, 주례사를 들을 일도 없었고, 결혼사진을 찍을 일도 없었던 내게 언제나 결혼식은 경험해 보지 못한 신기한 구경이지만 경험해 보지 않아서 다행인 통과의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결혼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인 결혼 준비 절차를 밟는 대부분의 예비부부들과 다른 방식의 결혼 과정을 겪었던 것도 어떤 의미에선 남다른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누가 그랬다. 결혼은 일생일대의 쇼핑 기회라고. 부피가 큰 가구부터 사소한 가재도구까지, 사야 할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필요할 것 같아서 사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 살면서 필요한 게 생기면 그때 사라는 유경험자의 조언을 받들어 최대한 절제한다고 했건만 3년을 살고 나니 부질없이 자리를 차지하거나 어딘가에 처박힌 물건들도 있다. 가령, 아이스크림 만드는 기계 같은 것 말이다. 3년 동안, 아니, 결혼하고 1년 사이에 두세 번 정도 썼나. 그러니까 그때는 인생에서 쓸모없는 것들이 굉장히 갖고 싶어지는, 절정의 지름신을 접신하기 좋은 타이밍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니 혹시라도 결혼을 앞두고 세간을 장만 중인 예비부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살면서 이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구매 리스트에서 일단 지우는 게 좋겠다.결혼 과정에서 선결 과제는 신혼집을 구하는 일이다. 집을 구하면 일단 결혼 과정의 절반은 끝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 과정은 만만치 않다. 아내의 직장과 내 직장의 중간지대에서 집을 보러 다녔고, 최대한 발품을 팔아 일대의 부동산을 샅샅이 방문해 연락처를 남겼는데 그만큼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사실 집을 보러 다닌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단순히 집을 보러 가는 것 같지만 결국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삶을 훔쳐보게 된다. 세상엔 정말 별의별 집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집을 구하는 신혼부부는 호구가 되기 좋은 존재라는 것도 깨달았다. 신혼집은 결혼식 전까진 구해야 하니 적당한 집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닥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어느 친절한 부동산 주인이 조언해 준 뒤로 그동안 봐왔던 집들이 새롭게 보였다. 한 번은 터무니없는 집을 보여주며 “이 정도면 신혼부부가 살기 딱 좋죠. 그런데 결혼식 날짜가 언제예요?”라고 묻는 의도가 갑자기 의심스러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집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동네에, 원하던 예산 안에서.아까도 말했듯이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결혼 과정의 기준점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혼 과정들이 헤쳐 모이는 장점이 있다. 우리 부부는 신혼집을 확정하기 전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유인즉슨 성수기 시즌이 와서 항공료나 숙박비가 오르기 시작하는 5월이 되기 전인 4월에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경비를 상당히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4월에 하와이로 이륙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함께한 건 나와 아내, 친한 지인까지 세 사람이었다. 아내와 나는 어차피 함께 술 마시며 어울릴 수 있는 지인이 있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겠냐는 의기투합으로 상황에 어울리는 지인을 섭외해 신혼여행을 빙자한 그냥 여행을 했던 셈이다. 만약 그 지인이 없었다면 하와이 신혼여행은 지금보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와이 여행에 동행한 지인은 하와이 현지에서 금발의 신부가 주례를 서는 결혼식을 선물했는데 정말 뜻깊은 추억이 됐다.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 결혼행진곡도 축가도 없는 결혼식이었지만 앞으론 바다가 보이고, 등 뒤론 공원이 이어지는 곳에서 아내와 함께 잘살 것을 다짐했던 기억은 분명 인생에서 잊기 힘든 순간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결국 내가 결혼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겪을 수 있었던 남다른 과정들은 사실 그 결혼을 흔쾌히 허락해 준 양가 부모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묵한 미식가이신 장인 어른과 손재주가 남다른 장모님을 뵙기 위해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여행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인생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혼이란 내게 여행과도 같은 것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민용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