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괜찮아나는 본래 술을 좋아한다. 스무 살에는 술자리가 좋았다. 매일같이 동기들과 학교 앞 단골 술집에 모여 밤새 소주를 들이부었다. 안주는 정체불명의 빨간 찌개 하나와 시시껄렁한(하지만 당시에는 치열했던) 연애사였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술자리는 많았다. 좀 더 좋은 안주에 술을 마셨다. 하지만 많이 마시되,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상한 룰이 따라붙었다. 하루는 회사 일로 술을 마시고, 하루는 회사 욕을 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나날이 이어졌다. 수많은 술자리를 거친 나는 지쳐버렸다. 소모됐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더 이상 술을 마시는 내내 새로운 이야기를 지껄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마시기 시작했다. 주로 집에서. 혼술에는 구차한 주도가 없다. 거창한 룰도 없다. 내가 이 술상의 주인이다. 시작도 끝도 내가 정한다. 어떤 관계도 완벽하게 지배해 본 적 없는 내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은 짐짓 어른의 반열에 든 듯 완전하게 느껴졌다. 혼술은 고르는 것부터가 즐거움이다. 일반적인 술자리라면 일행의 입맛을 모두 수렴할 수 있는 뻔한 안주에 뻔한 주종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혼술은 내 취향으로 가득하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 아주 신중하게 술을 고른다. 섹시한 라벨을 입고 줄지어 서 있는 보틀을 훑어보는 흥분 가득한 쇼핑. 내가 주로 마시는 건 맥주나 와인이다. 시대가 나의 혼술을 반기는 것이 틀림없다. 요즘은 주류 전문점을 찾지 않아도 일반 편의점 맥주 리스트가 아주 훌륭하다. 하나씩 정복한다는 마음으로 낯선 라벨에 도전한다. 다양하게 마시다 보면 내 취향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나는 라거나 바이젠을 좋아한다. 올여름엔 주로 독일산 바이젠을 마셨다. 샤워를 마치고 선풍기 앞에 앉아 바이젠 특유의 묵직한 캐러멜 향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면 그렇게 흐뭇할 수 없다. 매일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되면, 누구와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집에 갈 때 무슨 술을 살까?” 하는 생각에 가벼운 설렘을 느낀다. 연애 초반과 같은 기분인데, 좋은 점은 권태기가 없다. 뭐든 내 마음대로니까. 와인은 주로 모스카토를 마신다. 샴페인과 비슷한 풍미의 가볍고 깔끔한 맛이 즐겁다. 혼자 마시기에 일반 와인의 750ml 용량이 부담스럽다. 고맙게도 모스카토는 맥주병 사이즈로 출시된 귀여운 제품이 많다. 이제 날씨가 서늘해졌으니 레드 와인을 마셔도 어울리겠다. 안주는 내 멋대로다. 냉장고에서 소시지를 꺼내 문어 모양으로 쓱쓱 자른 후 팬에 구워 맥주와 먹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사온 인스턴트 안주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뚝딱 먹어 치우기도 한다. 편의점 안주도 풍미가 제법이다. 프랑스 맥주 1664블랑에 편의점표 맥앤치즈를 곁들였더니 즐거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냉장고 재료 사정이 좋을 때는 안주가 풍성해진다. 아버지가 옥상 농사에 심취한 덕에 올해는 집에 식재료가 넘쳐났다. 특히 질 좋은 토마토가 가득했는데, 아버지의 토마토 생산량을 우리 네 식구의 소비가 따라가지 못해 말썽이었다. 그래서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토마토 소스는 매일 내 안주가 되는 은총을 누리고 있다. 페투치니 파스타를 삶아 소스와 치즈를 얹고 차가운 화이트 와인과 마시면, 여느 이탈리아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사치스러운 맛이다. 채소를 가득 넣고 볶아 반숙 달걀로 마무리하는 ‘에그인헬’도 훌륭한 술안주다. 조금 매콤하게 만들면 의외로 소주를 곁들여도 어울린다.  혼술을 즐긴 이후론 가끔 남대문에 들러 술 쇼핑을 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위스키나 베일리스를 보틀로 사두면 안주 없이 온더록으로 마셔도 좋다. 여유 있게 혀 끝으로 조금씩 술을 감아 마시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혼술은 한없이 자유롭다. 안주가 무엇이든 상관없으며, 빨리 마셔도, 천천히 마셔도 상관없다. 깨끗한 민낯으로 드라마를 보다 눈물을 찔끔거린들 누가 알게 뭐람. 어떤 날엔 살가운 이와의 술자리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알딸딸한 기분에 괜히 주책맞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 앞에 있었다면 바보 같은 얘길 했을지도. 하지만 다행히도 혼자다. 술주정은 잔에 담아 함께 마셔버릴 수 있다. 혼술은 참으로 깔끔하다. 술자리가 끝난 후엔 불러도 오지 않는 택시를 쫓아 힐 신은 발을 동동거릴 필요도 없고,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드는 죄책감도 없다. 한 잔 더 마실 때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계산서도 없고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실수한 게 없나, 반성의 시간을 가질 일은 더더욱 없다. TV에서 어여쁜 여배우들도 ‘혼술’을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뒤늦은 트렌드가 반갑다. 이제 내 삶에 따라붙은 ‘#혼술’이라는 해시태그가 꽤 세련된 느낌으로 포장될지도 모른다. 혼자 술을 마셨다면 무슨 일 있냐고 묻는 고루함은 내려놓자. 나는 홀로 있는 순간에도 좋은 술을 좋은 잔에 따라 마신다. 모두와의 대화에 지쳐 나와 대화할 틈이 없었기에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절실했다. 무조건 혼자를 강요하고 싶진 않다. 그저 이 글은 ‘혼자여도 괜찮아’라는 격려의 메시지다. 하경화·<디 에디트> 에디터처음이자 마지막 ‘혼술’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데는. 하지만 내겐 없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일 만한 이유가. 개인의 취향은 존중한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게 좋다면야 그러려니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게 뭐가 좋은 건지. 혼자서 밥도 잘 먹고, 영화도 잘 보고, 심지어 공연도 잘 보지만 혼자 술을 마실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밥은 먹어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공연도 봐야 하지만 술은 마셔야 할 이유가 없었다. 굳이, 혼자서. 술이 마시고 싶은 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누군가와 말하고 싶어서였다. 가끔씩 나이가 드니 술 없이 누군가 만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픈 적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최선을 다해 술을 만났다. 그래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덕분에 가끔 술이 나를 마셔버려 힘들었고, 지난밤의 나를 찾아가 술잔을 든 손을 꺾고 싶기도 했지만 나는 대체로 술을 잘 마신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대체로 잘 마셨다. 하지만 좀처럼 술이 좋아서 술을 마신 건 아니었나 보다. 술은 그저 거들 뿐. 그러니 ‘혼술’이란 게 가당치도 않지. 그런데 그것이 일어났다. “혼술에 관한 원고 하나만 써주세요.” 원고 청탁이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시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는다. “그럼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의 혼술 경험담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이것은 주(酒)님의 말씀입니다.” 고로 이르시니 행하노라. 그리고 내비게이션을 찍을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혼자 술 마시기 좋은 곳이란 아무래도 혼자 앉아 있기 좋은 곳일 거다. 혼자 앉아 있기 좋은 곳이란 사람이 많이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왁자지껄하기보다 새침한 곳. 그리고 맛있는 걸 먹자. 어차피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건 거기서 거기다. 입이 즐거워야 혼자서 즐기든, 견디든 할 것이므로. 한남동에 오사카 요리를 파는 곳이 있다고 했다. 오사카 요리? 오코노미야키? 그보다는 일본식 전골인 스키야키와 우동이 유명하다고 했다. 도쿄에서 먹었던 스키야키가 생각나 침을 삼켰다. 마치 발보다 혀가 먼저 뛰어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택시를 불렀다. “아저씨, 한남동으로 가주세요.” 막상 가게 앞에 당도하니 어딘가 망설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테이블 몇 개 없는 자리에 한 쌍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자리 있나요?” “한 명이에요?” “네.” “여기 앉으세요.” 2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았다. 가게가 좁다 보니 왼편에 앉은 이들의 수다가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키야키 있어요?” “스키야키는 예약 주문만 받아서 많이 준비를 안 하다 보니 1인분밖에 안 남았는데.” “그럼 스키야키 1인분이랑 판우동 하나 주세요. 그리고 맥주도 주세요.” 맥주가 먼저 나왔다. 꿀꺽. 꿀꺽. 꿀꺽. 세 모금을 내리 삼켰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대화할 사람이 없었고, 당장 먹을 스키야키도 없었다. 맥주잔에 말을 걸 순 없어서 맥주를 두 모금 더 마셨다. 차라리 벽을 보고 앉아 있으면 편하겠다. 그래도 옆자리에서 주문한 스키야키 향이 나름 괜찮았다. 맛있는 걸 먹겠군. 나는 주문을 외웠다. 혼자 밥을 먹으러 왔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사실 나는 반주도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오늘은 정말 특이한 날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간절히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 적이 또 언제 있었을까 싶었다. 스키야키가 먼저 나왔고, 우동이 나왔다. 그새 맥주 한 잔을 다 마셔서 한 잔을 더 시켰다. 1인분이라 스키야키는 아예 전골로 익혀서 내왔다. 젓가락을 빙빙 돌려 노른자를 풀었다. 그리고 고기와 채소를 푹 찍어 입에 넣고 천천히 음미하기보다 씹고 먹고 맛보고 삼켰다. 그런데 즐겼나? 아, 물론 맛은 있었다. 다만 평소보다 좀 더 열심히 먹는 데 집중한 느낌이랄까. 혼자 밥을 먹으러 갔을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혼자 술을 마신다니, 도무지 취할 수 없잖아. 술에 취하는 과정이란 그저 알코올 농도에 지배당해 몸속의 알코올 분해 요소보다 정신이 분해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술에 취하기 전에 분위기에 취하는 게 더 중요하다. 혼자서 술을 마실 순 있지만 술 마실 맛이 나질 않았다. 만취해도, 적당한 취기를 느껴도, 언제나 분위기에는 취해야 했다. 함께 떠들 친구가 필요했다. 남은 우동을 후루룩 빨아들이곤, 벌컥벌컥 남은 맥주잔을 비운 뒤 빈 잔을 바라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뭐하냐? 별 일 없으면 술이나 한잔할까? 그리고 친구와 함께할 2차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혼술은 끝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민용준·칼럼니스트밤으로의 긴 여로가끔 혼자 술을 마신다. 타인과 함께 있는 건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반응하는 과정이다. 그건 대체로 즐겁고 자극적인 일이지만, 성가시고 불편한 시간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술을 마시든 밥을 먹든 뭔가를 구경하든, 혼자 하는 일의 장점은 늘 비슷하다. 외부에 방해받지 않고 내 감각과 욕망에 정확하게 집중할 수 있다. 안부를 묻는 이야기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 술의 첫 향기를 놓치는 일도, 상대의 취향이나 귀가 시간을 배려하느라 내가 가고 싶은 술집을 포기하는 상황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차피 일상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이나 하나마나 한 소리들에 둘러싸일 필요도 없다. 결국 ‘혼술’의 매력은 오직 나에게만 합당하고 기쁘며 효율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제각각 다른 맥락으로 마음을 설득하는 밤, 나는 혼자 술집에 간다. 오리지널 칵테일의 유무부터 문을 닫는 순간 흘러나오는 선곡까지 술집의 정체성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동행 없이 바에 들락거리기 시작하던 무렵, 자주 들렀던 술집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음악이었다. 세부적인 음악 취향은 가게마다 달랐지만, 주인과 손님 모두 술보다 음악을 둘러싼 조건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지막한 바 뒤쪽엔 수많은 앨범이 나름의 질서대로 수납돼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온 손님 중 상당수는 오랜 단골손님으로 남고, 술집 주인은 바텐더라기보다 DJ에 가깝다. 칵테일 리스트가 그리 장황하진 않지만 계절에 따라 맥주를 고를 수 있는 정도의 메뉴는 충분히 갖추고 있다. 술집 이름은 주인이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타이틀 혹은 장르에서 따왔다. 대학로의 ‘샘 쿡’, 홍대 앞의 ‘코카인’이나 ‘스트레인지 프룻’처럼. 이런 술집에서 혼술의 재미는 좀 역설적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뿐 아니라 주인과 단골손님으로 구성된 일종의 커뮤니티와 친밀해지는 데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술집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르는 법이고, 비슷한 애정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하루어치의 친밀함을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 스툴에 가장 편안하게 앉는 법을 습득할 즈음이면, 대부분의 단골손님들과 인사를 나눈데다 그중 몇몇과는 평생 친구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을 성급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혼술주의자들에게 이런 술집들은 오랜 지기처럼 남는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찾을 수 있고, 어떤 친구들이 모여 있을지 기대하는 것도 즐겁다. 자주 들러도 부담스럽지 않고, 오랜만에 들러도 낯설지 않다. 종로 2가 뒷골목, 2000년대 초반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음악 바 ‘라커스’, 2006년 처음 인사를 나눴던 DJ 앞에 앉아 차례로 들어서는 단골들과 인사하며, 4시간 동안 필스너 우르켈 8병을 비운 지난 수요일이 그랬듯. 최근 혼자 들린 바들은 좀 다르다. 10년 전부터 서울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싱글 몰트위스키 바나 칵테일 바는 모든 면에서 홀로 즐기기 좋다. 방대하고 독보적인 칵테일 리스트와 노련한 서비스는 마시는 즐거움만으로도 시간을 가득 채운다. 바텐더들이 노련하게 이끄는 대화도 즐겁지만, 바 뒤 천장까지 빼곡하게 늘어선 술병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 테이스팅해 보거나 기분과 입맛에 따라 칵테일을 추천받는 일도 흥미진진하다. 요즘 가장 자주 향하는 바는 서촌 근처 뒷골목에 숨어 있는 ‘텐더’다. 불 끈 한정식 간판들 사이의 한적한 주택가로 걸어 들어가면 하얀 담장 위에 조용하게 불을 밝힌 사각형 조명이 보인다. 한옥을 고쳐 만든 실내는 단란하다. 서까래 아래의 길고 좁은 공간, 모두 합쳐 15석 정도 되려나? 바 안쪽에서 하얀 수트를 입은 바텐더 두 명이 반가운 미소로 맞는다. 도쿄 긴자의 하드 셰이킹 장인 우에다 가츠오에게서 수련한 오너 바텐더의 장기는 칵테일 김릿과 사이드카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은 후 그날의 기분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주문한다. 이 모든 과정을 혼자 반복하는 일은 술자리라기보다 각별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사이드카 잔을 입술 쪽으로 살짝 기울인다. 쓰고 향기로운 오렌지 껍질 냄새. 각각 다른 재료들의 혼합이 아닌, 원래 이런 풍미의 술이 있었다는 듯 온전한 밸런스가 입 안을 채운다. 여기에 무엇을 더 추가해야 할까? 언제 어디에서나 떠들 수 있는 농담을 나누기보다 이 훌륭한 한 잔의 술을 코와 입으로 체험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는 것이 나는 더 즐겁다. 게다가 내 앞에는 멋진 술들이 줄 지어 기다린다. 에르메스에서 만든 녹차 리큐어, 셰리 와인과 베르무트, 후춧가루를 뿌린 위스키 하이볼. 조용히, 천천히 잔을 비운 후 바텐더를 향해 입을 연다. “다음 술은….” 밤이 아직도 길다. 정미환·<크래프트> 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