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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사는 법

삶이 뒤죽박죽인 당신, 정리 좀 하고 삽시다! 한때 컬렉터로 살아온 에디터 C. 이 맥시멀리스트가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프로필 by ELLE 2015.12.29

헨리 데이빗 소로처럼 살고 싶지만
“아~ 이걸 언제 다 치워!” 아무리 카오스를 즐기는 나라도 무질서의 극에 달한 상황에 직면할 때면 역정이 난다. 실제 여자들이 잡동사니들과 마주칠 때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치솟는다고 한다. 코르티솔 수치 상승은 만성적인 인지기능 장애, 피로, 면역력 저하 등으로 이어진다. 또 이 호르몬은 정리정돈을 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이 모든 게 자기 손을 떠난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단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글을 쓰기 30분 전까지만 해도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집에서도 형편없는 그림들을 자주 그린다. 그림의 주제는 주로 정리를 위한 새로운 공간 배치에 관한 것이다. 언젠가 살 집이나 머물 공간에 대한 것도 있지만 주로 지금 내게 주어진 공간을 구획하는 밑그림을 그리는 편이다. 그러고 나선 인테리어, 데커레이션 관련 책을 팁 삼아 들여다보고 마지막엔 스마트폰에서 핀터레스트 앱을 열어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으로 대리만족해 버린다. 그동안 나는 정리 문제 중 일부를 가구와 스토리지의 부재로 봐왔다. 오래 공들인 정리정돈이 ‘물건들의 위치 이동’으로 끝나버릴 때마다 우리네 싱글 라이프가 다 그렇지 뭐, 라며 적당히 체념해 왔다. 코르티솔 수치와 습관이 만나, 나는 결심만 하다가 끝나는 사람이 돼버렸다.


이번엔 칼럼을 위해서라도 책상 정리를 시도해 보자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내 방 침대 주변에 쌓인 책 정리를 시작했다. 내내 방치해 놓은 미니 오디오를 버리기 위해 박스에 포장한 후 그 자리에 부엌에서 사용하던 스토리지를 옮겨 책꽂이로 활용했다. 자주 보는 책, 자기 전에 읽기 좋은 가벼운 책 20여 권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원래 자리로 되돌려 보냈으며 흥미를 잃은 책은 기증용으로 모아뒀다. 이러면 된 건가 싶었는데, 스토리지를 옮길 때 엉망이 된 부엌 정리가 남았다. 안 쓰는 주서기와 전기밥솥, 커피 포트를 정리하고 자잘한 식재료는 싱크대와 냉장고에 나눠 넣었다. 그리고 정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어째서인지 안 해도 되는 신발장 정리를 시작했다. 버릴 건 버리고 세탁할 건 세제 푼 물에 담그고 자주 신는 신발은 신발장에, 나머지는 박스에 정리했다. “누나, 제발 필 좀 받지 마.” 일주일 뒤, 대야에 담긴 운동화 8켤레의 세탁을 마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이거다. 필 받은 그날만 한다. 지속적인 정리정돈이 힘들다는 거다. 빨래 뒤처리는 주로 남동생이 맡고 있다.




내일부터 미니멀리스트
“사람들이 정리정돈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의미는 보통 자신의 물리적, 정신적 환경에 대한 통제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지과학자 대니얼 레비틴이 쓴 <정리하는 뇌>에서 발견한 한 효율성 전문가의 말은 뒤늦게 ‘정리정돈이 잘되었다’는 뜻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정리 전문가인 베리굿정리컨설턴트의 윤선현 대표에게 서둘러 SOS를 친 이유다.
“정리는 단순히 깨끗하게 혹은 보기 좋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자신의 일과 삶 속에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정리라고 할 수 있는데 전 그 대상을 인생으로 확대해 시간, 인간관계, 공간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공간에선 목표하는 성과가, 살아가는 공간에선 행복과 건강이 이뤄져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는 일에 필요한 물건이 필요한 만큼만 있고,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그것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보관하고, 사용 후 즉시 깨끗하게 청소하며 정해진 자리에 두는 것이 유지되는 상태를 정리가 잘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의 말에 의하면 내 공간은, 나아가 내 인생은 정리된 상태가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물건이 많고, 그 물건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며, 대충 보관하다 가끔 청소하고, 정해진 자리에 두는 것은 일부 아이템에 국한된 곳에서 살고 있음이 분명하니까. 하지만 내가 이런 공간에서 제법 효율을 내며 일하고 있다는 건 아니러니한 일이다. 작가로 활동 중인 내 어릴 적 선배는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책 탑 위에 키보드를 올려 놓고는 사무용 의자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한심한 눈으로 올려다본 그녀의 삶과 칼럼은 퀴퀴한 가운데서도 유쾌했고 효율적인 일처리가 가능했다. ‘클린 데스크 정책’, 즉 꼼꼼한 목록과 색인에 투자하는 모든 노동이 일을 더 잘 처리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라는 게 증명된 케이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질서가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나만의 질서를 만드는 도전이 아닐까.


“선배는 잘 들여다보지도 않는 서재 정리는 카테고리별로 그렇게도 꼼꼼하게 하면서 정작 화장대, 책상 위의 잡동사니 정리는 자주 안 하잖아. 그러고 보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 동그라미를 그렸을 때 그 원 안에 있는 게 우선이 아니라 밖에 있는 걸 먼저 챙기다 보니 사소한 것에 신경을 덜 쓰는 거지.” 내 생활 패턴을 잘 아는 예전 룸메이트의 얘길 들어보니 꽤 그럴싸했다. 철학자 이나 슈미트의 말처럼 평생 신고 살았기에 앞으로도 같이 늙어가고 싶은 실내화처럼 익숙한 습관이 나의 정리 부재에 한몫할 것이다.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대한 열망이 아무리 강해도 인간은 낡은 것,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지 않나. 하지만 이왕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김에 버림의 미학, 홀가분한 삶에 대한 성찰은 제대로 해볼 요량이다. 내가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이국의 풍광이나 새로운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따로 해야 할 일이나 걱정거리가 없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긴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생을 여행하듯 홀가분하게 산다면 여성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처럼 강박에 가깝게 짐들을 끌어안고 살다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리 노하우에 앞서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시간, 동그라미 안의 것들에 관심을 가질 것임을 다짐해본다. 언제부터? 우선 내일부터!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시작을 코앞에 둔 시점, 당신도 나와 같다면! 



Credit

  • EDITOR 채은미 REFERENCE BOOKS <미니멀리스트>(이상)
  •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한 정리법>(문학테라피)
  • <정리하는 뇌>(와이즈베리)
  •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어크로스) DIGITAL DESIGNER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