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사랑스런 남자, 마이클 패스벤더
광기의 <맥베스>와 편안하면서도 솔직한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가진 배우로서의 이상향과 실제 모습을 오가는 극단의 필모그래피다. 그는 사랑스러운 남자인 채로 ‘어둠의 자식’이길 서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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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돌풍에 낙엽이 소용돌이처럼 뒹굴던 어느 날, 마이클 패스벤더는 뉴욕의 크로스비 바로 조용히 들어선 후 표범 같은 움직임으로 소호의 힙스터들을 지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늦어서 미안해요. 이미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당신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데 무슨 소리에요?’ 달콤한 크림을 손에 넣은 고양이 같은 내 표정이 속사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정중한 사과를 마친 그는 화이트 와인 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그동안 수많은 ‘어둠의 자식’들을 연기해 온 마이클 패스벤더를 밝고 낙천적인 사람으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300>의 비극적인 용사 스텔리오스, <피쉬 탱크>의 혼란스러운 섹시남 코너, <엑스맨>의 악역 매그니토, <제인 에어>의 암울한 저택 주인 로체스터, <프로메테우스>의 아름답고도 기묘한 데이빗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마치 정상이기를 거부하는 배우 같다. 그중 베스트 3는 단연 스티브 매퀸의 작품들이다. <헝거>에서 이 배우는 183cm 키에 56kg까지 체중 감량을 했고, <셰임>에서는 지독한 공허감을 감정과 몸으로 고스란히 표현했다. 또 <노예 12년>에서 잔혹한 농장주 에드윈 엡스로 분한 그는 노예에게 뼈가 드러날 때까지 채찍질을 가하는 폭력성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캐릭터에 빠져들까? 혹시 스티브 매퀸이 감독의 권위로 그를 혹사시키는 건 아닐까. “오, 무슨 소리에요.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마이클은 전혀 몸을 사리지 않아요. 자신을 작품에 던져 버리죠. 바보 같아 보여도 신경 쓰지 않고요. 하지만 우린 그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충실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있죠.” 매퀸의 항변에 이어 그의 절친 제임스 보이의 견해도 들어봤다. “마이클은 ‘대중이 극단적인 인물을 보고 싶어할 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의예요. <엑스맨>에 같이 출연할 때도 그랬어요. 그는 인간적인 한계를 깰 수 있는 배우거든요. 아마 필요하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절벽 끝에 서 있을 거예요.” 하지만 <스티브 잡스> (2016년 국내 개봉 예정)에서 호흡을 맞춘 케이트 윈슬렛은 마이클 패스벤더를 영화 속 캐릭터와는 정반대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우선 사교적이고 어디든 갈 준비가 돼 있는 오픈 마인드를 가졌어요. 소년적인 면도 있어요. 그를 만나기 전까진 저도 당연히 강렬하고 암울하고, 모퉁이에서 검은 구름에 휩싸인 사람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에요. 완전히 반대였죠.” 하지만 그는 준비할 게 많은 혁신적인 인물인 데다 편안하면서도 솔직한 매력을 선보여야 했던 스티브 잡스 역을 하는 게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얘기 도중 그의 두 눈이 아주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테이블 위에 감자튀김이 서비스됐을 때였다. 마이클은 로스트 치킨과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허브 감자튀김이 함께 서비스된 거다. “와우, 굉장한 보너스 메뉴네요!” 당황한 웨이터가 테이블을 두리번거리자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들면서 “절대 가져가지 마세요!”라는 농담을 건넸다. 물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농담인 거 알죠?”라고 했지만 다행히 감자튀김은 그 자리를 지켰고 마이클은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뭐, 정말 감사히 먹겠습니다!” 케이트 윈슬렛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완벽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부터 누나 캐서린과 함께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마을 킬라니(Killarney)에서 자라났다. 이곳에서 그는 패스벤더라는 이국적인 이름으로 현지인인 동시에 이방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터득했다. 학교에 있지 않을 때 그는 부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웨스트 엔드 하우스(어머니는 운영 담당, 아버지는 요리사였다)에서 허드렛일을 돕거나, 헤비메탈 음악을 기타로 연주하거나, 집 건너 들판을 가로질러 포사에 있는 교회로 향했다. “종을 울리고 촛불을 켜고 성찬식을 준비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이었거든요. 솔직하게 말하면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좋아하는 소녀가 나타나길 기도했죠.” 그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동작을 취한 뒤 눈동자를 힐끔 치켜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행동에 가까워요!”
조 크래비츠, 니콜 비헤리, 그리고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의 여배우들과 만남을 이어온 그는 연애 경험이 남들에 비해 더딘 편이었다고 한다. “다들 나보다 빨랐어요. 남자들의 첫 경험은 대개 13세 정도지만 난 18세 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음… 더 이상의 솔직한 얘기는 사람들을 당황시킬까봐 접어야겠어요.” 마이클 패스벤더의 부모는 아들이 대학에 가길 원했지만(누나는 신경심리학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17세에 이미 배우의 길을 택했다. 지역 극단에서 일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틴에이저 버전으로 각색한 연극을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이 연극에서 미스터 핑크를 맡았을 때만 해도 그가 13년 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출연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아무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런던 드라마 센터 출신으로 콜린 퍼스, 톰 하디, 러셀 브랜드, 폴 베타니 등 쟁쟁한 배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마이클은 칼 융의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한 안무가 루돌프 라반의 ‘인간의 움직임, 즉흥 표현’에 대한 분석법을 공부했다. 비록 학위를 따진 못했지만 덕분에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데인저러스 메소드>에서 칼 융 역을 맡을 수 있었다. “라반 분석법이란 감각적, 감정적 특성에 관한 거예요. 쉽게 설명하면 배우 말론 브랜도는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다음에 감정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어요. 반면 제임스 딘은 감정이 먼저 일어나고 감각은 부수적인 것이었죠. 그 차이를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껏 그가 맡아온 캐릭터를 분석해볼 때 패스벤더는 모든 것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타입이다. 제임스 딘보다는 말론 브랜도에 가깝고, 로미오보다 맥베스에 더 가깝다. “드라마 스쿨에 다닐 때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면서 ‘난 로미오는 결코 할 수 없을 거야’라고 중얼거렸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로미오의 명대사 “저쪽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빛은 무엇인가?”를 읊조리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마이클에게는 “내 마음에 전갈이 가득 자리 잡고 있는 듯하오”라는 <맥베스>의 대사가 더 잘 어울린다. 마리옹 꼬띠아르와 호흡을 맞춘 영화 <맥베스> 역시 곧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현대심리학 관점에서 본다면 전쟁에 지친 맥베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시달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전적인 전투는 눈앞에서 누군가의 살점이나 뼈가 나뒹구는 걸 지켜봐야 해요. 그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환각과 환청, 그리고 마녀들… 맥베스는 가장 클래식한 형태의 PTSD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레이디 맥베스는? 아이를 잃은 고통,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 그리고 소외감이 그녀에게 어떻게 작용했을까. “왕을 암살하고 왕과 왕비가 되려는 탐욕은 두 사람을 강하게 결속시켰어요. 하지만 그녀를 독기와 야망을 지닌 위험한 여인으로만 보기는 힘들어요.” 마리옹 꼬띠아르에게 그와의 첫 만남을 물어보니 “내가 기억하는 건… 음, 아니, 절대 얘기 못하겠어요”라며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여러모로 유쾌한 사람이에요. 특히 그의 미소야말로 여자들에겐 커다란 기쁨이죠.” <맥베스>의 연출을 맡은 저스틴 커젤은 그의 준비성에 감탄했다는 말을 남겼다. “마이클은 촬영 전에 이미 <맥베스>의 모든 대사를 완성도 있게 외워 왔어요. 촬영은 마치 재즈 연주와도 같았어요. 연극 무대처럼, 그 순간에만 가능한 연기가 만들어졌거든요.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난 마이클은 스마트폰으로 점심 비용을 결제한 후 “솔직히 테크놀로지에는 서툰 편이에요”라고 덧붙였다. 다음 스케줄이 스티브 매퀸과의 저녁 약속이라는 얘길 듣고 나는 두 사람이 뮤지컬을 제작한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짓궂은 표정으로 “난 정말 뛰어난 싱어예요! 하지만 노래하는 걸 즐길 뿐이죠”라는 애매한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말론 브랜도가 <아가씨와 건달들>에 출연한 걸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가 바를 나섰을 때 주변엔 파파라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기다리는 건 올리비아 팔레르모였고 그 주인공은 마이클 뒤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고개를 돌려 눈인사를 나누는 순간, 아름다운 그녀 역시 그를 응시했다. 언젠가 스티브 매퀸이 그를 묘사한 기묘한 섹시함과 존재감이 감도는 ‘그 순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Credit
- WRITER HOLLY MILLEA
- PHOTOGRAPHER KUDACKI PAOLA
- EDITOR 채은미
- TRANSLATOR 권태경
- ART DESIGNER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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