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들의 출격
90년대가 뜬다. 복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대중문화계를 접수한 1990년대생 스타들의 활약과 이들을 뉴 제너레이션으로 구분 짓는 ‘뭔가 다른’ DNA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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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엘르> 10월호 커버를 장식한 주인공은 수지. 1994년생 스물두 살, <엘르> 코리아 최연소 커버 걸이다. 너무 어린 거 아니냐고? 판매 부수와 SNS 등을 통해 편집부가 체감한 피드백은 그 어떤 역대 스타 커버보다 뜨거웠다. “90년대에 태어난 애들이 뭘 알아?”라는 푸념 혹은 핀잔은 얼른 집어넣으시길. 현재 대한민국 대중문화계에서 ‘핫’하게 주목받거나, 나아가 판도를 흔들고 있는 90년대생 스타들이 적지 않다. 먼저 1990년생 여배우 트로이카 고아라, 박신혜, 박보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기대주’라 불리던 이들은 2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물 오른’ 미모와 연기력을 경신하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1991년생 중에는 효린과 구하라, 박형식 같은 다재다능한 아이돌 스타들이 눈에 띈다. 창간 23주년을 맞은 <엘르> 코리아와 동갑내기 1992년~1993년생 라인은 유독 풍성하다. 당찬 소녀 아이유와 고아성이 있고 유승호, 서강준, 박보검, 이현우 등 훈훈한 남동생 배우들이 줄 서 있다. 자신만의 시크한 뉘앙스를 지닌 크리스탈은 1994년생, 청순 미모의 뉴 아이콘으로 각광받고 있는 설현은 1995년생이다. 음반 불황 시대에 ‘더블 밀리언셀러’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을 세운 엑소는 맏형 시우민부터 막내 세훈까지 1990~1994년대생에 속한다.
그런데 수지는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 여러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지만 답은 하나였다. “예쁘잖아.” 수지는 예쁘다. 나이에 맞게, 자연스럽게, 자기답게 예쁘다. 대중의 시선에 있으면서도, 억지로 다른 모습을 연출하거나 과하게 자신을 어필하지 않는다. 무대나 연기에서도 그런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현재의 반짝임을 즐기려 한다. 그리고 이건 90년대생 여자애들의 공통적인 특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 90년대생 배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을 꼽으라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와 영화 <오피스>에 출연한 고아성. 그녀는 어린 여배우들에게 기대되는 ‘뻔하고 착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대신, 10대 임산부와 사이코패스 역을 맡았고, 이를 통해 아역 이미지를 벗고 변신이 기대되는 20대 여배우로 급부상했다. 브라운관을 넘어 전해지는 그녀의 개성은 지난해 두바이에서 열린 샤넬 패션쇼에서 그녀를 인터뷰했던 <엘르> 피처 디렉터 채은미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다. “수많은 스타들이 하이패션 브랜드의 해외 컬렉션에 초대되지만 막상 쭈볏거리지 않고 현장을 즐기기란 쉽지 않은데, 고아성은 달랐어. 스스럼 없이 맨 앞에서 틸다 스윈턴, 칼 라거펠트 등과 어울리며 파티를 즐기더라.”
대한민국에 존재한 적 없던 아티스트형 아이돌의 시대를 연 1988년생 지드래곤의 나이도 이제 스물여덟이다. 세계가 열광하는 글로벌 아티스트로 성장한 지드래곤의 배턴을 이어받아 ‘프로듀싱 능력을 지닌’ 뉴 키즈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첫 번째로 올해 <쇼미더머니4>의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발탁되면서 커다란 화제를 모은 블락비의 지코(92년생). 어릴 적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한 실력파로 일찍부터 팀의 음반 작업을 도맡으면서 ‘제2의 지드래곤’으로 거론됐다.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94년생) 또한 작곡, 작사 능력을 갖춘 걸출한 실력의 래퍼로 인정받는 아이돌.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면서, 주말에는 홍대에서 형들과 취미로 음악을 했다”는 이야기는 90년대생 아이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데뷔하자마자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빅뱅의 직속 후배 그룹 아이콘은 어떤가. <쇼미더머니3> 화제의 우승자 바비(95년생)와 양현석이 “과거 지드래곤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 비아이(96년생), 아이콘의 주축인 두 멤버가 이제 겨우 22세, 21세라는 사실! 그들의 완성도 높은 음악과 스웨그를 떠올려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다.
누가 뭐래도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90년대생은 스물셋 아이유일 거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대화의 말을 빌리자면 "전통적으로 싱어송라이터의 미덕이라고 여겨진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으면서 대중적으로는 아이돌을 압도하는 영향력을 가진 가수. 한때 비주류라고 생각됐던 것들을 가장 유연하게 주류 안으로 빨아들인 뮤지션"이 바로 아이유다. ‘국민 OOO’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지만, 음악은 포크와 재즈를 끌어안고 윤상, 이적, 김창완 같은 윗세대의 전설들과 함께 작업한다.
올해 ‘판’을 흔들 만한 신선함을 선사한 또 다른 스물셋 아이콘이 있다. <무한도전>을 계기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혁오밴드. 네 명 전부 93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90년대에서 길어온 영감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했다. 흘러간 1990년대 문화가 그 시절을 향유한 세대가 아닌, 당시 겨우 걸음마를 뗀 90년대생들에 의해 재조명되는 흥미로운 현상. 혁오밴드는 자신들과 나이가 같은 93년생 아티스트들과 협력해 직접 뮤직비디오를 찍고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다. 그리고 혁오밴드를 좋아하는 이들은 오혁의 음악성이나 개성 있는 음색뿐 아니라 통 넓은 청바지, 끈이 길다랗게 묶인 컨버스에도 열광한다. 음악 평론가 김봉현은 자신이 관찰한 90년대생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에게는 아이돌과 비틀스를 동시에 좋아하는 게 전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비틀스를 올드하거나 다가갈 수 없는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지금은 흉내 낼 수 없는 ‘멋’과 ‘특별함’으로 받아들여요. 또 가수를 음악으로만 좋아하지 않아요. 음악은 기본이고 패션에 앨범 커버 아트워크까지 복합적으로 경험하고 평가해요. ‘청각+시각’ 관점이 자연스럽게 내재돼 있어요.”
‘90년대생 DNA’는 비단 스타나 아티스트들에게 국한돼 있지 않다. 이달 창간기념호 특집 프로젝트 ‘We are 23’를 통해 만난 평범한 스물셋 청춘들은 말 그대로 한 명 한 명 평범하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맡은 ‘더 도슨트’의 백윤석 감독은 아래와 같은 소회를 공유했다.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여서 그런지 카메라 앞에서 겁 먹는 사람이 없어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거나 소비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나 또한 이를 시도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무엇보다 20대의 장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더라고요.” 내재된 자신감과 크리에이티브 감각을 지닌 90년대생의 시대, 80년대생 언니는 기대와 질투가 섞인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Credit
- EDITOR 김아름름
- ART DESIGNER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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