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컬렉터 ‘찰스 사치’의 아티스틱한 사치
이성과 감성, 철학과 상술, 평정심과 괴팍함을 넘나드는 우리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트 컬렉터 찰스 사치를 어렵게 인터뷰하고 쉽게 쓴 인터뷰 북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채디렉의 책꽂이에서 꺼낸 오리지널 북도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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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by 오픈하우스
‘2011.4.23. CHAE’. 커피 자국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My Mame Is Charles Saatchi And I Am An Artoholic>의 커버를 열어보니 읽기 시작한 날짜와 사인이 있었다. 2011년이라… 아마 런던에 있는 사치 갤러리를 다녀와서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다 읽지 못했고, 불과 2주전 커버가 더럽혀진 채로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좀 닦아볼까, 하고 책을 꺼내 놓은 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점 이 책의 번역본인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이 책상으로 날아들었다. 책을 소개할 때도 타이밍이 있나 하면, 바로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영국 파이돈 출판사에서 출간된 오리지널 북의 제목은 <My Mame Is Charles Saatchi And I Am An Artoholic>.
 
 
‘찰스 사치’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 번 들어봤을 거다. 위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아트에 미친 슈퍼 컬렉터이고 런던 사치 갤러리의 주인이다. 그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건 그가 1977년 ‘찰스 사치의 젊은 영국 작가들(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센세이션 Sensation> 전시를 히트시키면서다. 이 전시는 평범한 광고쟁이가 영국의 전위 예술을 전세계에 알린 시발점이었고,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 차에 대한 논란으로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그는 초기 아트 컬렉션을 시작할 때 미국 예술에 주목했지만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을 보고 키를 돌려 희대의 작가 그룹 yBa(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 젊은 미술가들)를 구축했고 최근엔 그 시절만큼 감이 살아있지 않음을 시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지난 해 프랑스 남부 생 폴 드 방스에 위치한 <매그미술관 Foundation Maeght>에 들러 미로가 그렸다는 바닥의 하얀 실선을 따라 아트 작품들을 감상할 때 나는 예술계에서 후원자의 성향을 띤 수집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부유한 아트 컬렉터였던 에메 마그와 부인 마그리트 마그의 예술에 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우리에게 후안 미로와 마르크 샤갈,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르주 브라크 같은 유럽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마주볼 기회를 열어주었다. 찰스 사치는? 그는 데미언 허스트, 레이첼 화이트리드, 트레이시 에민 같은 영국 아티스트들을 발굴 및 후원한 것과 더불어 예술의 보는 다른 여러 시각이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으며 예술가도 할리우드 스타 못지 않은 부를 쌓을 수 있음을 지지했다. 그리고 사치 갤러리에선 한국 아티스트들을 주목해 <코리안 아이>라는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다국적 젊은 아티스트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찰스 사치의 사진들은 주로 화가 난 모습이다. 그에 대한 거의 모든 인터뷰가 들어있는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을 읽고 나면 이 표정이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그가 영국 아트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젠틀맨인 것만은 아니다. 찰스 사치를 우리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트 컬렉터라고 일컫는 이유는 그가 가진 논란의 소지와 삶의 소재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센세이션> 전은 yBa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아니라 찰스 사치라는 사람이 가진 논란 유전자의 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문고본 사이즈다. 한 손에 쏙 들어온다. 폰트도 제법 크고, 원본과 일맥상통하는 읽기 쉬운 디자인도 맘에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괴짜와 철학자, 장사꾼과 아트 컬렉터를 넘나드는 그의 두뇌와 수완과 꼼수와 감성과 위트를 한꺼번에 엿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터뷰어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신경질적인 면모 역시.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내가 어떻게 예술가의 작품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아이디어를 낸 것도 아니고, 그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닌데요. 작품을 구매한다고 해서 자부심까지 가질 수는 없습니다.”
 
 
언제 처음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하셨습니까? 단지 집을 꾸미기 위해 시작하신 건가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작품 몇 개를 벽에 걸기도 했죠. 하지만 한번 집에 둘 수 없는 것들을 사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미술품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공식적인 아트 컬렉터가 되는 겁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작품들이 트레이시 에민의 지저분한 침대 작품과 같이 창의력보다는 충격에 더 치중하는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예술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충격 받기를 좋아하지요. 모두가 행복한 것 아닙니까.”
 
 

 
“흑인들을 미워하는지 물어보는 겁니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내가 인종에 대해 약간 색맹이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3명의 배우는 덴젤 워싱턴, 모건 프리먼, 윌 스미스이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뮤지션은 패츠 도미노, 척 베리, 베리 고디랍니다. 모두 흑인이지요. 하지만 흑인들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 또한 많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라크 내 유대인들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점도 많고요. 프랑스인들에 대해서도요. 상류 계층, 중류 계층 또는 하층계급에 대해서도요. 치과 의사 혹은 배관공에게도 좋지 않은 점들이 있어요.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진보주의자들도요. 그리고 환경보호주의자들도 확실히요.”
 
 
데미안 허스트의 땡땡이 그림들은 벽지 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는 거실에 깔린 카펫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장식적이라고 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많은 굴욕들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대부분 잊었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는데요. 열일곱 살 때의 일인데 하루는 잔뜩 취한 채로 집에 왔습니다. 취했으니 몸이 약간 달아올랐고, 당시 우리 집 가장부의 침실이 복도 끝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금발의 스칸디나비아 사람이었지만 굉장한 비만이었고, 그녀의 암내는 말까지 놀래킬 정도였죠. 이미 말씀드린 대로 나는 약간 달아오른 상태로 그녀의 방문을 노크했고, 기쁘게 맞아주는 그녀를 어설프게 끌어안았습니다. 취한 상태에서도 느껴질 만큼 냄새가 심했고 그녀의 몸도 아주 볼만하게 뚱뚱했지만, 나는 같이 목욕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조금은 로맨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녀는 얼떨떨해했지만 선뜩 동의하더군요. 그런데 욕실에 들어간 나는 술에 떡이 되어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이 얘기는 두 번 다시 입에 오르지 않았죠. 하지만 우리 둘 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죠. 헬가, 이걸 읽게 된다면 정말 미안하다는 말 전하고 싶군요.”
 
 
어릴 때는 무엇을 수집하셨나요?
<헬스 앤드 이피션시 Health & Efficiency>라는 누드 잡지의 최고 수준 컬렉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한 대 맞고 결국 다 버렸지만 말입니다….
Credit
- EDITOR 채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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