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삶을 어루만지는 순례자, 루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루오는 종교화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시대를 정의하는 어떤 화풍에도 구속됨을 거부한다. 그보다 사회 저 밑바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약자들의 내면과 고통을 포착하는데 신경 썼으니 말이다.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그림은 남아 프랑스 퐁피두센터에 고이 간직돼 있다. 그리고 깊은 수장고에 잠겨 있던 루오의 분신이 낯선 이국 땅을 밟았다. ::미술, 전시, 화가, 조르주 루오, 루오, 피카소, 피에르, 피에로탱, 산다는 힘든 직업,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도 감미로운 일인데, 기쁨이라 불리는 소녀, 그의 고통 덕분에 우리는 치유되었다, 산다는 힘든 직업, 가을 풍경, 곡예사, 미술관, 전시장, 관람, 엘르, 엣진, elle.co.kr:: | ::미술,전시,화가,조르주 루오,루오

생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루오의 모습(위쪽)“루오, 마티스와 동시대를 대변하는 대표 화가”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은 지겹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도 너무 많이 봤다. 하지만, 조르주 루오는 어떤가. 우리에게 잘 알려졌지는 않지만, 루오는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거장들과 어깨를 같이한다. 프랑스는 그에게 문화계 최고 인사들에게만 준다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여했고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어쩌면 살아생전 그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루오는 단지 ‘입체파’니 ‘야수파’니 하는 미술계의 편 가르기에서 조용히 떨어져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사하는데 열중했다. 이를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우리로서는 루오라는 이름이 낯설 수 밖에 없다.프랑스에서 태어난 루오는 14세부터 스테인드글라스 견습공 생활을 거쳤다. 자연스럽게 화려한 색깔과 검은 테두리로 장식되는 유리를 만들면서 색채와 빛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그러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일생의 스승인 귀스타브 모로를 만났고 스승의 애제자로 아틀리에에서 수학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모로는 미처 날로 향상해 가는 루오의 실력에 감탄할 새도 없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동기생이자 훗날 야수파의 대가로 추앙받는 앙리 마티스, 알베르 마스케가 화려한 색채에 열중하는 동안 루오의 시선은 사회 저 밑바닥 치들을 향했다. 광대, 창부와 같은 소외 계층이 자주 루오의 그림에 등장했다.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점 찍어둔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루오에게 한가지 약속을 했다. 아틀리에를 빌려주는 대신 루오의 작품을 자신이 모두 사겠다는 것. 당시 병마와 가난에 시달렸던 루오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감격에 겨웠을테지만 훗날 이 약속은 동시에 루오를 옥죄는 족쇄가 된다. 볼라르마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유족들이 루오의 작품에 소유권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틀리에의 문을 잠갔고 1947년 루오가 법정에서 승소하기 전까지 그의 작품 백여 개 이상(미완성 작품 포함)을 팔아 치웠다. 이때 루오의 나이 75세. 그는 자신이 돌려받은 그림을 완성하기 이미 늦었다고 판단, 공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315점의 미완성작을 불에 태웠다. 온갖 풍파를 겪은 남은 작품마저도 엄격한 조건을 꼬리에 달고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중 168점이 이번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공개됐다. “오직 그림으로 삶을 살아내던 진정한 예술가”‘거장은 닮았다.’ 일전에 한국을 찾았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많지 않은 사진 작품이 전시된 작은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 곧 몇 십 년이 지난 흑백 사진임에도 방금 암실에서 꺼낸 것 같은 컬러 사진의 생생함을 느꼈다. 예술이라는 장르에 천착하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일상의 순간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가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루오는 드러내어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존재감이 분명한 작가다. 투박하고 거친 선, 그 안을 채운 푸른색. 그의 그림에서는 세상에서 아무개로 사라지고 말 광대도 돋보이는 주인이 된다. 루오의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서 평생을 결정적 순간에 소진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집념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내게서 나의 회화 건반을 빼앗는 것은 내게서 공기를, 빛을, 포도주를, 커피를, 흰 빵을, 혹은 매우 드물기까지 한 우정을 앗아가는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 씐 문구를 따라 낮은 조도의 조명이 비추는 전시장 내부로 들어갔다. 루오의 자화상 이 붉은 벽 한가운데 걸려 있다. 이내 루오의 화풍에 따라 분류된 작품들이 자신들의 방을 배정받은 채 빼곡히 걸려있다. 붉은색, 푸른색, 흰색, 하늘색으로 칠해진 4개의 방에는 루오의 일생이 담겨 있다. ‘부상당한 광대’(왼쪽),‘곡예사’(오른쪽). Chapter 1 서커스루오의 회화 작품 중 700여 점에는 광대가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광대가 가지는 상징성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겉으로 웃지만, 속내는 외롭고 슬픈 인물. 현대 사회의 소외된 인물을 표상하는 것이다. , , , …. 광대들은 표정이 없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에도 어쩐지 우는 것처럼 보이는 광대에게 우리는 그 시대를 살던 소외 계층의 애환을 읽어낼 수 있다. ‘뒷 모습의 누드’(왼쪽), ‘퍼레이드’(오른쪽).Chapter 2 미완성작온갖 풍파를 거쳐 되찾은 루오의 미완성작에는 크게 신체의 움직임이 강조된 작품과 풍경 작품이 많다. 루오는 인물들의 몸짓을 강조한 동시에 지나치지 않게 억제했다. 그래서인지 연작 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과장된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우스꽝스럽지 않다. 벗은 채로 마을을 왔다 갔다 하는 여인들()도 결코 농염하거나 저속하지 않다. 마치 태초의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고 힘있는 몸짓이다. 이때에는 과 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상세한 묘사가 생략된 채 색채와 구조에 의존한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하느님,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왼쪽), ‘우리 모두 죄인이 아닙니까’(오른쪽).Chapter 3 미제레레(Miserere)58개의 판화 연작인 미제레레는 루오를 ‘종교 화가’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것에 일조한 작품들이다. 미제레레는 루오가 아버지를 잃고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일화처럼 ‘십자가의 길’에서 이야기 모델을 가져왔다. 라틴어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nobis)’. 로 시작된 연작은 , , 를 거쳐서 로 끝이 난다. 마치 고통과 절망을 시간을 거쳐 다시 희망을 얻고 치유되는 루오 자신의 감정 변화 순서에 따라 작업한 것처럼 보인다. ‘젊은 피에르’(왼쪽), ‘베로니카’(오른쪽). Chapter 4 후기 작 루오는 말년 다시 회화로 돌아갔다. 이때의 평온함을 대변이라도 하듯 작품들에 붉은색과 노란색이 더해져 화사해졌다. 또 마티에르(화면에 나타난 재질감. 물감 등을 이용해 주는 질감)를 더 두껍게 작업해, 켜켜이 캔버스에 물감을 쌓아 올린 석탑과도 같은 풍성한 재질감을 작품에서 구현하고 있다. 밝아진 표정의 , 형체를 갖춘 얼굴의 와 의 광대처럼 그의 마음은 전보다 한층 더 밝아졌다. 과거 한국의 이중섭은 아시아의 루오라 불렸다. 단순하지만 힘있는 붓질이 루오를 닮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고통을 화폭에 담았던 것도 일련의 이별에도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며 그림에 몰두했던 루오와 비슷하다. 진정한 예술가는 개인적인 고난을 겪으면서도 못내 희망의 끝을 놓지 않았다. 그림을 통해 끊임없이 상황을 재해석하며, 주위에 긍정을 전파했다. 전시를 감상하며, 딱 두 번 멈춰 섰다. 전시 내내 상영된 루오의 다큐멘터리 영상 앞에서였다. 짧은 영상에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캔버스를 걷는 외로운 순례자가 있었다. 상상한 그대로였다. 전시는 3월 28일까지. 관련기사http://www.elle.co.kr/elle/elleweb_template_fashion.iht?contId=B11_20100108_02097&menuId=M00133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http://www.rouaul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