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결혼식
결혼식장에 남녀가 함께 입장하는 ‘평등 결혼식’이 유행이다. 배우자를 고를 때도 평등한 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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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편과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3년간 연애했다. 그동안 남편과 간간이 결혼에 대해 얘기했으나, 그때마다 나는 진심을 담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빈번한 다툼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현실적인 면을 생각했을 때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신부 수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영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유족한 집에 시집갈 거라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큰 깨달음이 있었다.
2012년 나는 신변잡기 따위의 기사 하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설날이 낀 2월을 맞아 ‘신년운세 잘 보는 법’이라는 주제를 다루기로 했다. 철학원 초행길인 사람에게 ‘용한 점쟁이 고르는 법’에서부터 ‘촌철살인 같은 질문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팁을 주는 기사였다. 기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도움말을 받고자 주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두어 번 만난 적 있는 한 역술인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과 궁합이 잘 맞았는지 취재는 곧 수다로 이어졌고, 긴 수다 끝에 나는 즉석에서 지금의 남편과 궁합을 보기에 이르렀다.
궁합을 보기 위해서는 남녀의 사주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먼저 내 사주를 막힘 없이 풀어가던 선생이 남편 사주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줄여 말하면, 남편이 머리가 남달리 명석한 반면 금전운이 부족하고 한량 기질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이 결혼은 역시나 망했구나’ 싶었다. 헌데 예상 밖으로 선생은 남자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감지덕지하며 그리 하라는 거다. 내게 결혼수가 3년밖에 들어 있지 않은데 그마저도 올해가 끝이라며. “이제 와서 다른 남자 찾아 봤자 더 좋은 남자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다 자칫 때를 놓치면 평생 혼자 사는 수가 있어요. 주연 씨가 워낙 일복이 많고 금전운이 있으니 돈은 함께 벌면 되고, 남자 사주에 한량 기질이 있으니 적어도 한평생 재미지게 살지 않겠어요?” 선생이 애써 태연한 투로 말했지만,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우리 둘이 살아온 삶을 표면상으로 비교하면 결혼은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 중에도 남편과 가볍게 연애하다 헤어지라고 내게 조언하는 이가 꽤 있었다. 그런데 일반인보다 인생을 더 통찰할 줄 아는 역술인이 말리기는커녕 감사하게 여기며 결혼하라니, 이만한 확신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사주에 기대어 결혼을 마음먹은 건 아니다. 나는 그때 단 한 명이라도, 그게 누가 됐든 간에 이 결혼에 대해 확신을 실어주는 이가 있으면 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문제를 접어두고 보면 나는 지금의 남편과 꽤 잘 맞았다. 둘 다 기자 일을 하다 보니 일이라는 게 곧 문화생활이었고, 관심사가 비슷하니 대화 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둘 다 술을 좋아해 서로의 음주생활을 충분히 이해했고, 다양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다 보니 3년 사귀면서 지겨울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덤벙대는 성격인 데 반해, 남편은 꼼꼼해서 함께 있으면 상호보완이 되는 점이 많았다.
 
이렇게 보면 결혼을 안 할 이유가 없는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 결혼할 때 남녀의 살아온 배경이나 경제 환경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니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너무 결혼을 가볍게 생각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 사람과 살면 한평생 재미있게 살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역술인 선생 말마따나 내가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니, 돈은 함께 벌면 되고 말이다. 또 내가 막연하게 품어온, 나보다 더 나은 신분의 남자를 만나겠다는 꿈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면서 모순적인 생각인지도 깨우쳤다. 요즘은 결혼도 취업이랑 같아서 어느 수준에 도달하려면 일명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철학원을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전화해 당장 결혼하자 했고, 실제로 그로부터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살림을 합쳤다. 여기서 굳이 결혼했다가 아닌, 살림을 합쳤다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가 결혼식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나와 아버지는 허례허식이라면 두드러기가 나는 타입이라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상대가 수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동등한 결혼을 한 데다, 남편이 나와 생각이 비슷해 ‘결혼식 없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오는 4월이면 결혼 2주년이다. 내 선택이 옳았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하다. 우리는 연애할 때처럼 지금도 빈번히 싸우지만, 그만큼 막역하고 가깝게 그리고 장난스럽게 살아간다. 물론 직장생활만큼은 결혼하기 전보다 더 큰 책임감을 안고 임하지만.
불과 우리 부모 세대만 해도 여성 취업률이 3할에 미치지 않았다. 그 말인 즉, 대부분의 생활비를 가장 혼자서 충당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당시 여성의 인생은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이어져 책임져지고 결정지어졌다. 어찌 보면 결혼식 절차에서 아버지 팔짱을 끼고 식장에 들어간 신부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남편 품으로 인계되는 과정이 당시 여성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결혼할 때도 ‘평등 결혼식’이라 하여 남녀가 동시에 입장한다. 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취업률 또한 대졸 남성 취업률 못지않게 높다. 굳이 통계에 기대지 않더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대학을 졸업한 후 일하지 않고 노는 여자 동기를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 더 이상 가계를 가장 혼자 책임지지 않는 것. ‘가장’이라는 단어가 품은 원 뜻 자체가 흐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급변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여자들은 예전과 다르게 남자들처럼 밖에 나가 일하는데, 남자들은 예전처럼 집안일을 여자 몫으로 여긴다. 여자들은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남자들의 인식이 20세기에 머물러 있다고, 남자들은 시대착오적인 동물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여자들의 인식 또한 20세기에 고정된 채 머물러 있는 듯하다. 
여자들은 경제력이 생긴 만큼 더 이상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순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남편을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로, 결혼을 신분 세탁을 위한 인생의 마지막 비상구로 여기기도 한다. 누구보다 일을 즐기고 삶을 중히 여기는 내가 은연중에 나보다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또 내 주변에는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회사에 입사했음에도 소위 ‘잘나가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부유층 자제들이 드나드는 파티를 쫓아다니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들 중에는 밤새 진탕 마신 파티장에서 모두가 잠든 사이 혼자 수십 개의 와인 잔을 씻어 집주인이던 재력가의 눈에 띄어 결혼에 골인한 이도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존경할 만한 남자를 만나 그의 보호 아래 살고자 노력한 그녀의 오랜 꿈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럴 이유도 없고. 다만, 우리 모두가 그녀처럼 살 수 없기에 결혼에 대해 보다 현실감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나이를 적잖게 먹으면서 주변의 여자들로부터 남자의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곤 한다. 물론 나도 결혼하기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실제로 주변에 소개팅해 달라는 여자 선후배는 많으나, 또래 여자와 소개팅하겠다는 남자는 드물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연상녀만 만나와 친한 선후배 사이에서 ‘연상녀 킬러’라고 불리던 학교 선배가 30대 중반에 이르러 열 살 터울의 연하녀만 골라 만난다는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 찬찬히 이야기해 보면, 남자들이 나이 어린 여자를 만나는 이유가 우리가 으레 생각하듯 그녀들이 더 젊고 예쁘며 싱그럽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현실적으로든 심적으로든 결혼 준비가 안 된 남자들이 결혼을 회피하고자 가볍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어린 여자를 찾기도 하지만, 남자들에게는 본디 여자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회사 동료들을 둘러보면 여자 동료들이 남자 못지않게 주도권을 쥐고 일한다. 심지어 여자들은 군대를 가지 않은 만큼 공백이 없어서 또래 남자보다 직급이 더 높기도 하다. 지위와 계급을 막론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여자들은 지위가 높은 만큼 자신의 격에 맞는 남자와 만나기를 꿈꾼다. 그러니 또래 여자에게 등을 돌린 채 비교적 세상 물정 모르는, 그리하여 내 무용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어린 여자를 찾을 수밖에.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이러하니 혹시 평생 혼자 살 생각이 아니라면 시대 변화에 맞는 결혼 관념을 가져볼 필요가 있겠다. 이제는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경제력과 사회 권력을 쥔 만큼 배우자를 고르는 데 있어서도 남자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우선 순위에 두지 않아도 된다. 100세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남자 어깨에 기대기보다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평생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줄 동반자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백마 탄 왕자 없이도 이미 충분히 멋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Credit
- EDITOR 채은미
- ILLUSTRATOR 김란
- WRITER 이주연
- DESIGN 전근영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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