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룩의 진화!
등산복으로 치부되던 스포츠웨어가 콧대 높은 4대 패션 도시 런웨이의 문을 두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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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오롱 스포츠의 캐릭터인 헤스티아 크루.
 
지난 6년 동안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은 5배가 넘게 성장했고 패션 브랜드들마다 스포츠 라인을 선보이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일도 아니다. 예전에는 고작 한강변을 산책하면서 마치 에베레스트라도 등정하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착장으로 고기능성 아웃도어 룩을 입은 흔한 옷차림을 마주할 때면 일단 눈살이 찌푸려졌다. 설사 그 대상이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기능성 바지와 컬러풀한 바람막이 재킷으로 대표되는 일명 ‘등산복’ 차림으로 산이 아닌 곳은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릴 지경이었다. 이런 현상은 외국인의 시선에서는 더욱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의 등산 문화에 대해 ‘열의와 패션의 조합’이라는 그럴싸한 정의를 내렸다. 그들이 조사한 바로는 “한국인들은 산에서 미국인들이 옛날 서부에 대해 품었던 것과 같은 일종의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느낀다. 이런 등산 문화에는 등산 패션이 짙게 깔려 있는데 산에서는 물론이고 여행, 쇼핑, 커피숍에서도 적합한 복장으로 인식될 정도이며 한국인들은 한 시즌에 평균 100만원 정도를 등산복에 투자한다”는 것. 긍정적인 측면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로 인정하고 아웃도어 패션을 그저 아줌마, 아저씨들의 안티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만 패션을 사랑하는 패션 인사이더로서 아웃도어 룩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된 스포츠 패션은 여전히 넘기 힘든 산이었다. 적어도 지난 2월, 뉴욕 컬렉션을 보기 전까지는.
 
폭설과 태풍이 지구촌 어딘가를 덮쳤다는 기사가 수시로 올라오던 지난겨울, 뉴욕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설로 인해 마치 재난 영화 세트장과 같았던 맨해튼에서 2014 F/W 컬렉션을 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전 세계 기자와 패션 피플 사이에서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단어는 잠시 잊혀진 듯 패딩 코트와 어그 부츠(한동안 패션 테러 아이템으로 손꼽혔던 불명예스러운 과거가 있는!)로 무장한 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 차림의 편안함과 따뜻함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디자이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내가 내놓은 최종적인 타협안은 바로 울 소재 롱 코트와 레더 부츠. 하지만 이 이상의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내 판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칼바람이 부는 어느 날 밤, 사람들을 브루클린으로 초대한 알렉산더 왕이 극한의 날씨에도 버틸 수 있는 투박한 옷들을 선보였던 것. 아무리 그가 늘 스포츠를 테마로 하는 디자이너라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아웃도어 매장에 디스플레이될 법한 옷들을 웅장한 무대 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들에게 입힐 줄이야! 왕뿐이 아니었다. 패딩에 퍼를 부착하고, 스니커즈를 신고 등장한 DKNY 걸들을 비롯해 실크 드레스 위에 두툼한 마운틴 파카를 걸친 제이슨 우의 모델을 보며, “뉴욕의 겨울 날씨가 너무 혹독해”라는 변명은 그 뒤로 이어진 런던, 밀란, 파리의 디자이너들까지 합세한 아웃도어룩 열풍 앞에 할말을 잃었다. 피터 필로토, 아크네, 스텔라 맥카트니는 세련된 프린트의 오버사이즈 핏 윈드브레이커와 파카를, 미우미우와 페이에서는 독특한 누빔 처리와 컬러 블로킹의 스타일리시한 패딩 아이템을 선보였다. 펜디는 고급스러운 컬러에 퍼 장식을 더한 럭셔리 버전의 스포츠 시크를 테마로 컬렉션을 전개했다. 이외에도 다방면에서 스포츠웨어 요소들이 활용됐는데 샤넬의 트위드 운동화, 미우미우의 레인 부츠를 비롯해 운동복에 쓰이는 메시 소재, 파카의 지퍼 디테일, 후드의 집업 끈 장식 등이 다양한 스타일로 선보였다.
 
 
 
 
 
 

 
그렇다면 하이패션에서 선보이는 아웃도어 룩은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펜디의 2014 F/W 프레젠테이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소재. 실크 소재로 만든 윈드브레이커, 캐시미어와 밍크를 사용한 봄버 재킷 등 최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옷들이 아웃도어 패션과 하이패션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쉽게 말해서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명품 매장이 즐비한 거리에서 쇼핑을 하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매장을 찾아갈 필요 없이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아웃도어 아이템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겠다는 심산인 것. 솔직히 샤넬의 트위드 소재 운동화가 얼마나 방수가 잘될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파리의 럭셔리 하우스에서 기능과 실용성에 주목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스포츠적인 요소를 패션에 접목해 왔던 지난날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포츠웨어스러운’ 디자인으로는 더 이상 시각적인 만족감보다 몸이 먼저 반기는 편안함을 앞세운 기능성 아웃도어 룩을 이기기 힘들다는 사실을 디자이너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랑방 스포츠의 상무이자 백 브랜드 안나크루아 대표를 겸하고 있는 방미애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스포츠웨어가 패션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스포츠 브랜드를 얘기하며 한번 기능적인 편안함에 빠지면 제아무리 예쁜 옷이라도 입기 불편한 것은 피하게 된다고 했다(실제로 그녀는 근사한 패턴의 오픈 백 드레스 안에 나이키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제는 럭셔리 하우스에서도 옷의 기능을 외면한 채 그저 기에 멋진 옷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패션 최전방에 있는 이들은 이미 몸소 느끼고 있었다. 한편으로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하이패션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달 코오롱스포츠의 2014 F/W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드레시한 아웃도어 룩들을 보며 평생 옷장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패딩 코트나 윈드브레이커에 대한 생각이 바뀐 이들이 분명 나 말고도 꽤 있을 터. 컬러와 디테일의 변형으로 스타일리시하게 거듭난 점퍼들과 니트, 캐시미어 소재 아이템들은 천편일률적인 아웃도어 룩에 거부감을 느끼던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하이패션과 만난 스포츠웨어 덕에 또다시 혹독한 날씨가 예고된 이번 겨울에는 보온성과 타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릴 적 엄마로부터 지겹게 들었던 “멋 부리다 얼어 죽겠다” 는 잔소리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되지 않을까.
 
 
 
Credit
- editor 황기애 PHOTO IMAXtree.com
- 이수현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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