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 왁싱의 새로운 시선!
여름휴가를 앞두고 생기는 고민거리. 은밀한 그곳, 그대로 둘 것인가 혹은 말끔히 제거해 버릴 것인가. 이맘때면 늘 ‘존폐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지는 음모가 페미니즘 이슈로 떠올랐다. 비키니 왁싱에 대한 새로운 시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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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여자 셋 이상이 모이면 이야깃거리의 대부분은 이른바 ‘품위 유지’에 관한 것들이다. 더군다나 맨살을 노출해야 할 여름을 앞두곤 그 소재가 얼마나 풍부해지는지! 1년 내내 등장하는 소재는 마사지, 피부과 케어, 보톡스, 필러 같은 주사 시술, 미용실, 네일, 운동 등. 여기에 여름 특집으로 페디 케어, 보디 피부 관리 그리고 비키니 왁싱 등이 추가되시겠다. 그중에서도 갑론을박이 가장 심하면서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는 비키니 왁싱이다. 아직도 무성한 채 방치하고 있냐는 핀잔부터 계속 왁싱을 받곤 있지만 자연방어막이 사라져 오히려 세균이 침투할까 봐 걱정이라는 푸념 등등. 자, 그렇다면 일단 에디터의 상태부터 밝히자면? 몇 년째 중급(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주변은 깔끔하게 정돈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받고 있다. 수많은 지인들을 관찰해 본 결과 비키니 왁싱의 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번도 못해본 자와 영원히 끊지 못하는 자.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단 얘기. 뭐, 물론 예외는 있다. 허니문 같은 특별한 이벤트를 앞두고 딱 한 번 해본 자.
 
2000년대 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 덕분에 지구촌 곳곳의 여성들에게 보다 널리 알려진 브라질리언 왁싱. 이제는 한국에서도 ‘신경 좀 쓴다는 여자라면 해야 할 필수 케어’ 수준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압구정동 한복판의 찜질방에서 그곳이 풍성한 여자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자연 그대로의 부슬부슬한 밀림 상태를 그들 앞에 내보인다면 도리어 미개인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 언제나 그곳이 말끔히 정돈돼 있는 이들에겐 우리가 영화 <색,계>에서 탕웨이의 덥수룩한 ‘겨털’을 목격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일 테니까.
 
확실히 비키니 왁싱은 섹스와 관련이 깊다. 물론 청결 유지나 모양새를 위해 그곳을 다듬는 이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섹스 파트너(남자친구, 남편 등)에게 보여주기 위한,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과 전혀 무관하다곤 하지 못할 거다. 실제로 여초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제모 후 파트너의 반응에 대한 자세한 후기가 종종 올라온다는 게 그 증거. 때론 상대방의 취향에 따라 하드코어, 유머러스한 형태로 제모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처럼 여자들에게 머리털을 제외한 몸의 모든 털은 미용의 대상이 돼버렸지만 이는 완전히 개인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가 부여한 기준이 작용한 탓도 크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다분히 남성 중심적이다.  최근 이것이 페미니스트들의 논쟁 대상이 됐다. 왜 남자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여자들의 털은 제모 대상이 돼야 하는 걸까? 하물며 같은 여자끼리도 정돈돼 있지 않은 털(팔다리, 겨드랑이 등)은 무신경하고, 불결하고 심지어 무책임한 것으로 간주하니 말이다. 한껏 모양을 내든, 야성의 숲 그대로이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문제인데. 사실 이 ‘시크릿 가든’ 제모의 역사는 짧디 짧다. 어린 시절,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앉으면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던 인상적인 광고 문구. ‘무모증으로 고민이십니까?’ 어린 마음에도 ‘아, 그곳에 털이 없으면 부끄럽고 이상한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게 불과 15년 전의 일인데 이제는 주변 여자들이 “조물주는 왜 그곳에 털을 심으셔서 이토록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주시냐!”고 성토하기에 이르렀으니 실소가 나올 지경. 17~18세기엔 연인들이 음모를 목걸이의 작은 갑이나 모자 속에 넣어 교환하며 애정을 확인하기도 했는데 당시 음모 제모는 매춘부들에게나 한정된 것이었다고. 또 60~70년대의 <플레이보이> 잡지를 살펴보면 오히려 무성한 숲을 드러냄으로써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기도 했다. 2007년 개봉한 영화 <하트브레이크 키드>에서 허니문을 떠난 신부는 신랑에게 “그곳이 틴에이저처럼 보이도록 일부러 왁싱을 안 했다”는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다(안타깝게도 신랑은 질겁했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비키니 왁싱이 완전히 정착되기도 전인 지금 ‘제모 선진국’인 서양권에선 음모 왁싱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월, <뉴욕 타임스>의 패션 & 스타일 칼럼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뉴스. 내용인즉슨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성장해 온 비키니 왁싱 시장이 하향세로 들어섰고 많은 뉴요커들이 그곳을 ‘내추럴한 상태’로 두기를 원한다는 것.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의 스파 대표인 안젤라 지아 김(Angela Jia Kim)에 의하면 “브라질리언 & 비키니 왁싱 예약이 확실히 줄었는데 아마도 많은 고객들이 에코-프렌들리 라이프를 지향하는 최근 트렌드가 영향이 끼친 것 같다”고 말하기도. 또한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솔직한 발언들도 눈에 띈다. 기네스 팰트로는 한동안 왁싱을 전혀 하지 않다가 레드 카펫에서 옆면이 시스루인 드레스를 입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면도기로 제모를 했다는 후문. 스텔라 맥카트니의 경우 친환경주의자다운 의견을 밝혔다. “여성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요. 두 딸을 둔 엄마로서, 부디 여성들이 있는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을 드러내길 바라죠. 남들 시선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요. 특히 섹슈얼리티에 관한 선택은 개인적인 프라이드나 자신감과 관련된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레이디 가든’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스텔라 맥카트니가 말한 대로 ‘자신이 편한 대로, 내키는 대로’ 하면 될 일이다. 지난 10월, 포토그래퍼이자 아티스트인 페트라 콜린스(Petra Collins)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아예 없애버렸다. 그녀가 비키니를 입고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를 포스팅한 직후였다. 이유는? 수많은 팔로어들이 그녀의 사진이 외설적이라 느껴서? 아니, 일부러 의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비키니 팬티 사이로 살짝 삐져 나온 털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거다. 그렇다고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이었을까? 과연 대상이 남자였어도 이처럼 이슈가 됐을까? 여성의 몸은 마치 바비인형처럼 매끈해야 한다는 공적인 기준, 남성적인 잣대를 들이댄 건 아닐까? 2014년 2월호 <엘르> 영국판에서 에디터 프란체스카 오브라이언(Francesca O'Brien)은 이 사회적 기준 때문에 여성, 심지어 소녀들이 비키니 왁싱에 들이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경제적 투자를 지적했다. 2012년 인디애나 대학에 다니는 2451명의 여학생(18~24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3분의 2가 음모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부분적으로 제모했다고 한다. 게다가 5분의 1은 전신 제모! 런던의 소녀들은 이미 11세부터 엄마와 함께 살롱을 찾는다. “11~16세 소녀들의 90%는 올 누드인 브라질리언 왁싱이나 할리우드 왁싱을 원해요. 10대 소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최소 45파운드(8만원선)의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죠.” 런던에 있는 한 살롱 전문가의 말.
 
나 역시 뷰티 에디터라는 직업을 앞세워 주변인들에게 비키니 왁싱을 너무 설파(?)한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요가 후 공동 샤워장에서 직업 정신이 발동해 다들 어떻게 그곳을 관리하나 힐끔힐끔 관찰하며 ‘어쩜 저리 무심하지’라고 속으로 힐책했던 것도. 카메론 디아즈는 저서 <더 보디 북 The Body Book>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음모를 ‘여성의 섬세한 ‘꽃’을 감싸고 있는 사랑스러운 커튼’이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어떻게 손질하느냐는 지극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죠. 모두 밀어버리든, 부슬부슬하게 놔두든요. 다만 레이저 영구 제모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피하길 바랍니다. 시대가 원하는 기준과 환경은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게다가 당신 자신 혹은 미래의 연인을 위해 옵션은 열어둬야 하지 않겠어요?”
 
빅토리아 시크릿의 앤젤들, 온몸이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리한나와 마일리 사이러스 그리고 포르노 영상 속의 여자들의 몸에선 한 올의 털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혹여 실수로 그들의 비밀스러운 부위의 털이 드러난다 해도 그렇게 수치스럽게 비난할 일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물론 반대로, 신생아 수준의 브라질리언 왁싱을 했다고 동네 찜질방에서 뭇 아주머니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일도, 산부인과 검진 의자에서 민망해할 일도 아니고. 그러고 보면 지난 파리 출장 때 들렀던 박물관을 가득 메운 중세시대 여인들의 매끄럽고 순수한 피부의 누드도, 에곤 실레 작품 속에서 음모를 고스란히 드러낸 관음적인 누드도, 모두 아름답고 에로틱하게 느껴지지 않나. 본격적인 여름 시즌을 앞둔 지금, 당신이 왁싱 버진이든, 마스터든 선택은 개인적 미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에디터의 개인적인 결론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적당히 깔끔함을 유지하는  ‘중급’ 코스를 밟을 예정!
 
 
 
Credit
- editor 김미구
- artwork Mia Nolting
-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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