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남성 퇴치용 슈즈?

슈즈 하나로 한없이 섹시해지고 싶은 여성들의 발에 반란이 일어났다. ‘러그솔 슈즈’라 불리는 압도적인 크기의 슈즈가 이번 시즌 메가 트렌드로 떠오른 것. 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 못생긴 슈즈를 여성을 위해 여성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했다는 웃지 못할 사실이다. 우리는 왜 이 슈즈를 롱 슈즈(Wrong Shoes)라 부르게 됐을까?

프로필 by ELLE 2013.11.19

 

패션 어휘 퀴즈를 푼다고 생각하고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투박하게 쭉 뻗은 굽에 트랙터 자국이 있는 튼튼한 고무 밑창이 더해진 슈즈는? 힌트를 주자면 굽만 높인 ‘통굽 슈즈’는 절대 아니라는 것. 정답은 바로 러그솔 슈즈(lug-sole Shoes)다. 트랙터를 연상케 하는 이 울퉁불퉁한 밑창의 러그솔 플랫폼 슈즈는 꽤나 위협적인 존재다. 쿵쾅거리며 걷는 날에는 감히 남자들은 접근도 못할 게 분명할 테니 말이다. 요즘 내 최고의 관심사는 슈즈, 그중에서도 절대 삐걱거리거나 비틀거리지 않을 것 같은 튼튼하고 투박한 슈즈들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나는 왜 이런 못생긴 슈즈들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러그솔 슈즈들은 모양새가 투박함은 물론이요, 볼품없고 험악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시즌 내가 유일하게 신고 싶은 슈즈이며 다른 슈즈와는 견줄 수 없는 장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조금 더 깊숙이 그 장점에 대해 알아보면, 일단 러그솔 슈즈의 묵직함이 좋다. 무엇보다 슈즈의 두툼한 부피감이 내 다리를 한층 더 길고 날씬하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이 슈즈는 올 시즌 키 트렌드의 어떤 옷과 매치해도 최고의 비율을 자랑한다. 오버사이즈 코트부터 크롭트 팬츠,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어중간한 길이의 스커트까지. 얼핏 보면 잘못 신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묘하게 잘 어울리는 매력이 있다. 또 폭신하고 안정적인 착화감과 걷기에 편하기까지 하니, 이 슈즈를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릴 수 있을까? 러그솔 슈즈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번 시즌 내 옷장의 옷들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쿵쾅거리는 발걸음이 문제이긴 하지만 난 이미 이 소리에 친숙해지고 말았다. 뾰족한 주사처럼 가늘고 긴 굽 때문에 비틀거릴 일도 없고, 도로의 갈라진 틈새에 발이 끼여 당황할 일도 없다. 걸음걸이가 불안하지 않으니 이동이 불편하지도 않고, 킬힐 때문에 발 전체가 울긋불긋 낙서될 일도 없으니 나로서는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반항적인 기운에 세상도 거뜬히 정복할 수 있다는 무적의 자신감마저 솟구친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어떤 생각으로 이 슈즈들을 디자인했을까? 늘 젠더 코드가 분명한 옷들을 디자인하는 그녀지만 이 슈즈는 굳이 남녀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러그솔 슈즈에서는 내적인 힘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무언가 단단해지는 느낌이에요. 바로 이 슈즈를 반드시 신어봐야 하는 이유죠.” 런웨이의 백스테이지에서 그녀가 내게 살짝 털어놓은 비밀이다. 미우치아 프라다 역시 프라다의 트랙터 슈즈를 신는 순간, 이젠 더 이상 로맨틱해 보일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난 지금 로맨티시즘과는 거리가 먼 패션에 사로잡혀 있는데, 앞으로 당분간 로맨티시즘은 금기죠.” 쇼가 끝난 직후 그녀는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

 

물론 러그솔 플랫폼은 전혀 섹시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진부함에 빠지는 것이다. 슈즈는 반드시 섹시해야 한다는 것과 투박한 슈즈를 신으면 스타일리시하지 않다는 고정관념. 러그솔 슈즈들은 누가 뭐래도 2013 F/W의 트렌드이자 뉴 룩의 ‘닻’ 역할을 한다. 내적인 반항심과 자유로움 그리고 패션 페미니스트들의 굳건한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일종의 이정표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우린 지금 과거의 어떤 것이 현대에서 또 다른 형태로 동일하게 나타나는 패션의 급진적인 병렬 배치를 경험하고 있다. 보호 시크와 펑크, 그런지와 쿠튀르… 이런 식으로. 그리고 그 트렌드의 밑바닥에는 이 러그솔 슈즈들이 당신의 발걸음에 든든한 토대가 돼주고 있다. 혹시 지금 당신은 슈즈를 잘못 골라 신고 온 듯한 느낌이 들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옳은 것이다. 그래서 우린 이 슈즈는 롱 슈즈라 부른다.

 

 

 

Credit

  • EDITOR 손은비
  • WRITER REBECCALOWTHORPE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