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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살인자와 막걸리 소녀 사이, 김다민 감독
청년 살인자와 막걸이에 빠진 소녀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93년생 이야기꾼. 김다민 감독은 말한다. 우리 세상은 여러 인간이 공존해서 재밌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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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는 Labeless. 팬츠는 Dint. 이너 톱은 Marni. 슈즈와 네크리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장편 데뷔작인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둔 <파묘>와 대작 <듄2> 사이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한 적은 없는데(웃음)…. 극장 가면 나란히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작은 영화라 상영관도 많지 않은데 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뽀글뽀글’하며 말을 걸어온 막걸리와 동춘의 여정을 다룬 이 작품은 지난달 개봉했지만 일찌감치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관객과 만났다. 가장 와닿았던 반응은
연령에 따라,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감정이입하는 인물이 다르다는 것. 입시 준비하던 분들은 페르시아어까지 배워야 하는 열한 살 동춘을 마음 아프게 바라보고, 경력 단절을 겪은 어머니들은 동춘의 엄마 혜진의 사연에 울컥한다. 이입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 감독으로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스스로 어떤 인물에 이입했나
아무래도 동춘이다. 나도 어릴 때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해소되지 않은 의문도 많았다. 공상을 즐기고, 어른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달까.
박효주가 연기한 엄마 혜진에게 감정이입하는 여성이 많을 것 같다. 대한민국 사교육 시스템 아래 혹은 현대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보통 미디어를 통해 욕심이 들끓는 인물, 예컨대 <SKY 캐슬> 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그려지는데 혜진은 어딘지 다르다
교육열이 소재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아이 입장에서 부모가 ‘악당’으로 대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동춘은 공부가 마냥 하기 싫은 것보다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아이일 뿐이고, 혜진이 그에게 하는 행동도 개인적 욕심이라고 치부하기엔 사회문화적 맥락이 겹겹이 닿아 있다. 딸을 응원하고 싶은데 정답을 몰라 헤매는 사람으로서 엄마라는 존재가 보여지길 바랐다.
동춘의 고충을 깨닫자 울먹이며 “우리 그럼… 이민 갈까?”라고 남편에게 말하는 대사에서도 느껴진 맥락이다
방법을 모르기에 남들이 으레 그러듯 자유를 찾는데, 이민이란 방식을 떠올리는 게 참 ‘웃픈’ 일이다. 아이가 힘들다니 어쨌든 다른 차원으로 가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 아니겠나.
막걸리가 발효되며 내는 소리를 모스부호로 해석한 지점이 흥미롭다. 왜 하필 막걸리가 그 시발점이 된 걸까
영화를 만들려면 제작 지원이 필수이기에 지역 평생학습관이나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를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 우연히 전통주 클래스를 듣게 됐는데 발효 정도에 따라 막걸리의 기포 크기와 내는 소리가 달라지는 걸 보고 모스부호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초등학교 앞에 길게 늘어선 학원 버스들이 보였다. 막걸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니 두 소재를 합치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확신했다.

첫 장편 데뷔작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포스터. 2월 28일 개봉했다.
어린이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어른에게 발휘하는 힘은 무엇일까
익숙한 것도 낯설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라는 제목처럼 막걸리만 알고 우리는 모르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그럼에도 답을 모르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 순수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모두 성인이 된 지금도 답을 찾지 못해 동춘이처럼 ‘방황’하고 있지 않나. 정답을 말할 단계가 아니라 ‘왜?’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세상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결국 동춘은 답을 찾는다. 하지만 ‘그 결말’에 대한 해석은 극과 극이다
어른들은 동춘의 선택을 슬프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춘의 입장에서는 진짜 궁금했던 질문의 답을 모르고 살다가 여정의 끝에서 결국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은 것이니 그에게는 완전한 해피엔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뻔뻔하게 밀고 나가려던 작품이라 나는 ‘꽉 닫힌 해피 엔딩’이라 말하고 싶다.
영화 전공이 아님에도 무작정 독립영화 현장에 뛰어들었다
항상 영화가 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다녔고 학교 특성상 자유로운 분위기에 놓여 있었지만, 뭔가를 배우고 채워 넣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하지만 심리학으로부터 배울 거라 기대했던 건 꽤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부분이었다. 고민하다 복수 전공으로 문화인류학을 골랐는데 인간의 삶에 꽤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할 수 있었고, 실제 필드에 나가 평소 접점이 없던 사람들을 만나 오랫동안 대화하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것들, 또 다른 사고방식이 열렸다. 다만 문화인류학과에서 영화를 찍을 순 없으니 빨리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현장으로 향했다.
첫 장편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상업영화로 분류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독립영화라기엔 SF 요소가 독립영화의 주류가 아니기에 펀딩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참여했던 영화에서 함께한 동시녹음 감독님 등 더 큰 현장에 계실 분들이 발벗고 도와줬고, 제작사 안나푸르나 또한 연출부 막내 시절을 보냈던 회사라 20대에 노력한 것들이 집약된 느낌이 들어 감개무량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펀딩을 기다리는 동안 생계를 위해 지난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각본을 썼다. 두 이야기 사이에 엄청난 ‘갭’이 보인다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사를 만나면 다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제작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딴것 하자고 했다(웃음). 그중 하나가 <살인자ㅇ난감>의 각본 작업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웹툰 원작을 재밌게 봤었다. 생계 문제도 있고, 뭐라도 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되니 감사한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어땠나
즐거웠다. 2023년에 맞는 이야기로, 지금 내가 이입할 수 있는 어느 20대 남자의 모습으로 ‘이탕’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극중 여성 캐릭터는 연출 과정을 통해 색깔이 꽤 바뀌었다. 작가와 연출의 영역을 새롭게 실감했다. 결과물의 반응이 좋아 장르에 충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춘의 앳된 얼굴을 보다가 이탕의 무기력한 얼굴을 묘사하는 식의 ‘온 앤 오프’가 쉽게 이뤄졌는지
두 작품의 기획과 제작 시기가 늘 맞물려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일종의 회피처럼 하나를 쓰다가 힘들면 또 다른 걸 연출하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힐링한 것 같다. 그러면서 머리가 환기되는 효과가 있었달까.
그럼에도 두 이야기의 공통점을 꼽아본다면
장르적 재미 속에서 뒷맛이 약간 찝찝한, 현실감 있는 성격을 구축하는 걸 좋아한다. 관객이 완전히 옹호할 수도 없고, 완벽하다 해도 그 속에 구멍을 만드는 일이랄지. 두 작품 다 그런 작업이 들어갔다. 두 작품의 소재와 장르는 다르지만 요즘 시각을 주려 한 점이 공통적으로 반영됐다.


원작의 이탕을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가장 유념한 것은
원작의 이탕은 10여년 전의 20대이고, <살인자ㅇ난감>의 이탕은 2023년의 20대다. 그러니 그의 얘기가 지금 내 옆사람과 밀착된 이야기로 느껴졌으면 했다. 대부분 ‘단죄’나 ‘사적 복수’가 이야기의 소재가 됐을 때 그 악인을 완전한 악으로 규정하면 간단히 풀리는데, <살인자ㅇ난감>에서는 끊임없이 무엇이 맞고 틀린지 시청자가 고민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완전무결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찝찝함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이탕의 일을 자신이 겪는 듯 생생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이탕은 살인마임에도 묘하게 친구 같은 면이 있다. 그런 생각조차 ‘찝찝’하지만
그에게 평범성을 부여하는 일이 중요했다. 평범함과 찌질함 사이에서 공감할 구석 말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고, 자신이 그다지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껴지고, 약간 붕 떠서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암담한 상황을 일부러 많이 넣었다. 생각해 보면 개인 경험도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동춘이란 어린이를 들여다보는 과정과 비교했을 때, 살인마지만 또래인 이탕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쩌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원작 속 이탕에게 지금 시대에 이입될 만한 요소들, 예컨대 내 20대의 싫은 부분을 다 쪼개 넣은 것 같다.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부분까지.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긴 했지만, 아무래도 동춘의 마음이 내 삶과 더 밀착돼 있는 것 같다(웃음).
‘차세대 스토리텔러’로 불린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란
‘다양한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섞여야 저마다 의미를 갖고 빛날 수 있다. 주류 이야기에 색다른 요소를 끼얹은 이야기, 주류는 아니지만 최근 쏟아지는 회귀물 장르처럼 새로운 한 끗으로 생존하려는 이야기 모두 가치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초딩’ 동춘이도, ‘청년’ 이탕이도 있어야 한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스타일리스트 이지현
-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현정
- 아트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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