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처음에는 다 그래!

누구에게나 '처음'은 서툴다. 좌충우돌 첫 독립, 운명 같은 첫 고양이와의 동거, 그와 떠난 첫 해외여행. 청춘의 한복판 성장의 기억으로 남은 4인의 '처음' 이야기.

프로필 by ELLE 2013.01.17


첫 소개팅, 내가 예뻤던 것을 몰랐던 때
선배 언니의 선심으로 첫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S대 공대에 다닌다는 ‘완전 똑똑한 오빠’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약속 장소에서 그 완전 똑똑한 오빠를 만나는 순간 일이 다 틀렸다는 감이 왔다. 그게 꼭 오빠의 이상한 차림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길게 걷어 올린 바짓단이나 깃발처럼 늘어진 셔츠 깃, 앞코가 뾰족하고도 네모난 가죽 구두 따위는 벗어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오빠의 (실망감으로) 구겨진 얼굴이란. 그는 나를 아래위로 떨떠름하게 훑더니 물었다. “근데, 현역 맞아요? 나이 들어 보이는데, 어디 사회생활 하시다 입학한 건 아니고?” 그래도 우리는 (주선자를 봐서) 맥주를 한 잔씩 마셨고, 완전 똑똑한 오빠는 (거의 자신이 먹고 마신) 술값을 정확히 반으로 나눠 내게 안겨주고 돌아갔다. 그 후로 그 ‘완전 똑똑한 오빠’는 다시 만난 적이 없고, 얼굴조차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 내가 못생겨서, 내가 모자라서 소개팅을 망친 것 같아서 새 구두에 아픈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완전 똑똑하다는 오빠는 사실 완전 무례한 놈이었을 뿐이고, 따져보면 옷도 이상하게 입은 무례한 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충분히 예뻤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완전 똑똑한’ 오빠와 마주할 수 있다면 나는 그가 나이 운운하는 순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 텐데. 여기서 너보다 못생긴 남자는 없다고 속삭여줄 텐데. 물론 절대로 그렇게 어리고 예쁠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박주현·소설가


나를 키운 첫 고양이 씨씨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가, 나는 부모님 집에서 독립을 했다. 고양이를 키우며 혼자 살고 싶었다. 독립을 하자마자 잽싸게 4개월 된 아기 고양이를 데려왔다. 사람들이 기다린다는 운명의 고양이는 별거 없다. 인생이 타이밍인 것처럼 딱 그때 내 눈에 띄어 데려온 아이가 운명의 고양이인 것이다. 어쨌건, 그렇게 나는 나의 첫 고양이를 만났다. 지금이야 우리 집의 네 마리 고양이를 들고 두 손으로 저글링도 할 수 있는 고양이 베테랑 축에 속하는 나지만 역시 처음은 무서웠다. 첫날 가장 걱정된 건 내가 자다가 뒤척이면서 고양이를 깔아뭉개면 어떡하나 하는 거였다. 유난히 내 곁에 붙어 자려고 했던 새끼 고양이 때문에 한동안 나는 자는 것도 안 자는 것도 아닌 반불면의 밤을 보냈다. 물론 바보짓은 그 한 가지만이 아니었다. 고양이의 귀를 보면 사람 귀처럼 귓바퀴가 있는데 어떻게 보면 약간 찢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그걸 발견한 나는 너무 놀라 고양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헉헉거리는 나에게 수의사는 “원래 그래요”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해주었다. 10분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멍청한 걱정이란 걸 깨달을 텐데, 조급한 초보 엄마는 그 10분을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다. 이주희·<이기적 고양이> 저자


환상 혹은 멘붕, 그와의 첫 유럽 여행
결혼 2년 차, 이제 막 신혼의 단꿈을 꾸던 시절에 남편과 나는 무모하게도 ‘동반 사표’를 썼다. 그러고는 내친김에 ‘이번 아니면 언제 가보냐’라는 뚝심 하나로 유럽 여행 배낭을 꾸렸다. 첫 여행지를 북유럽으로 정한 우리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핀란드의 어느 멋진 식당에서 달콤한 시나몬 롤을 먹을 생각에 부풀었고, 더블린에서는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을 기네스 맥주와 함께 만끽할 생각에 자면서도 쿡, 웃음이 나왔다. 이런 환상과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된 첫 ‘동반’ 유럽 여행. 근데 아, 이럴 수가. 북유럽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물 한 잔에 1만원’, ‘맥도날드 세트가 4만원’ 하는 물가에 식겁했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최하위 숙소에서 위태로운 밤을 보내다가 도망치듯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날아왔는데, 이번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선고라니! 환율은 최악의 상황. 가난한 배낭여행객에게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남편의 뒤통수만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웬수도 그런 웬수가 없었다. 만날 가이드북에만 의존하고, 아무리 돈이 없다지만 “까짓것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식당에서 밥 한 번 먹자!” 소리 한 번 안 하는 남편의 조잔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체력도 문제였다. 둘이 합해 60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짊어지기엔 우린 그리 젊지 않았다. 남편은 점점 더 말라갔고, 우리는 점점 더 신경과민이 되었고, 급기야 돌아오는 베를린행 비행기에서는 “우린 끝이야!” 소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꿈꾸던 것과 달리 우리의 첫 유럽 여행은 늘 배고팠으며, 우루사가 그리울 만큼 피곤했고, 서로에 대한 실망의 연속이었다. 김윤경·독립 칼럼니스트


준비된 첫 독립은 없다
“일단 없는 돈 긁어 모으고, 계약서에 도장 찍고, 시작해. 준비된 독립은 애초에 없다고 보면 돼.” 전시기획자 B의 말이다. 시인 K는 시를 쓸 때면 본인의 집을 떠나 몇 개월을 외부와 차단한 채 칩거한다. 뮤지션 L은 5백만원을 들고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독립 선포, 옥탑방에서부터 시작했다. 스물다섯, ‘봄로야’라는 필명을 만들고 내 몸과 마음은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24시간을 오롯이 나에 관해,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그림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하는 일로만 돈을 벌어 생활을 당당하게 책임지고 싶었다. 그래서 작업실 겸 숙식 가능한 원룸을 구하고 용기 내어 조심스럽게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렇다. 나에게 독립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의 반대였다. 자유롭게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이 괴로운 감정의 선은 생각보다 뿌리 깊다. 겨우 설득해 구한 원룸에 이불을 깔고 누운 첫째 날, 천장의 아이보리색 벽지와 창문 밖으로 비치던 전선줄의 그림자를 기억한다. 그러나 매일 밤 10시,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집에서 확인 전화가 왔다. 더군다나 내가 번 돈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들었고 대학원 논문을 쓸 때쯤엔 천 원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불규칙한 생활로 컨디션 난조인 날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설레면서 시작한 ‘나만의 공간’이 원래 살던 내 방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렇게 온몸으로 부딪혔던 첫 독립은 실패했다. 독립이란 외부에 대한 반항이나 대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외부가 나에게 주는 영향을 품고 녹여가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임을 그땐 몰랐다. 물리적 공간의 분리가 일차적 독립이라면, 무엇에 어떻게 자유롭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립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봄로야·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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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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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