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의 옛집

한국미 전파에 힘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의 안목과 멋, 예술혼이 배어 있는 한옥.

프로필 by 이경진 2023.10.05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인 혜곡 최순우가 1976년 성북동으로 이사와 1984년 작고하기까지 살았던 한옥이다. 이전에는 누구의 집이었나
1930년대에 우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목수를 고용해 지은 근대 한옥으로 서울 경기 지방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큰 미음 자 집이다. 평면은 ‘ㄱ’자 형 안채, ‘ㄴ’자 형 바깥채가 마주보며 ‘ㅁ’ 자를 이루되 모서리가 트여 있다. 그 시절 북촌에는 이런 모듈 형태가 많았다. 지금 우리는 혜곡의 사랑방과 따님 방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서 보존하고, 나머지 공간은 교육이나 프로그램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한옥의 특성이 한 개의 방을 다용도로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1984년 혜곡이 작고한 이후 그의 가족들이 거주한 것으로 안다. 어떻게 공공에 개방됐나
이 일대 한옥이 재개발되던 시기, 집이 헐릴 위기에 처했다가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위원회 주도로 시민들의 후원과 성금에 힘입어 2002년에 보존했고, 2004년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최순우 옛집’을 출연 자산으로 설립돼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이후 2006년 9월에는 ‘최순우 옛집’이 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된 바 있다. 처음 한국의 국립박물관이 개관하고 자리 잡는 과정에 혜곡이 그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한 것처럼 우리도 이 집을 보존하면서 선생님이 계셨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하며 방향을 잡아왔다. 사람이 살던 자리에는 그의 기운이 감돌아 교감되는 게 있지 않나. 최순우 옛집이 품은 공간과 이야기의 힘이 이 집에 새로운 일상과 인연이 연결되게 한다.
 
 
이곳을 찾는 자원활동가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후원 회원들이 꽤 많지 않은가. 간혹 대중을 대상으로 수업도 진행한다
소풍도 궁궐로 가지 않는 대학생들이 ‘한옥에 처음 와본다’며 자원활동을 지원할 때도 있다. 직접 작은 한옥을 쓸고 닦고 시간을 보내고 최순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한옥을 실감한다. 그들이 보고 발견하는 것들, 동시대의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이 혜곡의 삶 위에 덧대어지는 것 같다. 10년 전에는 무형문화재 이수자 선생님께서 문득 오셔서 “필요한 거 없냐?”고 물으셨다. 도배를 하든 뭘 하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면서. 얼마 전 경복궁 향원정을 작업하신 분이다. 선생님과 인연이 이어져 다음 달에는 한지를 이용한 미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 갈고 닦은 멋이 은은히 느껴진다. 혜곡은 이 집의 어떤 면을 좋아했을까
북향이라 조금 어두운 느낌이라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꽤 반대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북향 집에 딸린 마당이 넓으니 마음에 드는 나무를 심으면서 본인 취향대로 가꿨다. 한옥이 가진 나무 창살을 사랑했고 달 항아리와 벼루, 목가구로 방치레를 하고 석물이나 수석을 집 안팎으로 두고 즐겼다. 옹기로 된 테이블도 있고, 마당에는 산사나무, 산당화, 모란, 수련 등을 키웠다. 고향이 개성인데 더는 갈 수 없는 그 집에서 선생님의 아버지가 산사 차를 끓여주던 기억 때문에 산사나무도 심었다. 빨간 열매를 맺으면 참 예쁜 나무다. 성북동 집에 오기 전에도 궁정동과 삼청동에 사셨는데, 줄곧 한옥이었다. 선생님은 어디서나 그 집이 지닌 멋을 가꾸며 사셨다고 한다. 감수성이 남다른 분이었다.
 
혜곡은 북향의 집 앞에 딸린 작은 정원을 아끼며 가꿨다. 강아지와 고양이, 때로는 두꺼비가 노닐던 마당.

혜곡은 북향의 집 앞에 딸린 작은 정원을 아끼며 가꿨다. 강아지와 고양이, 때로는 두꺼비가 노닐던 마당.

 
사랑방 문 위에 혜곡이 쓴 유명한 문구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라는 뜻이다. 혜곡은 집에서 어떤 일상을 보냈나
집에 와서는 현판 문구처럼 편히 지내고 싶었던 것 같다. 집 안이 깊은 산속이고 자신은 선비인 것처럼. 1974년에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했으니 이곳에 살던 시기는 바쁜 날의 연속이었다. 모든 문화계 행사에서 모시고 싶어 했고, 웬만한 전시 방명록에는 선생님 이름이 항상 있었다. 교류도 즐기셨다. 손님들 오시기 전 마당에 촉촉하게 물을 뿌려 놓으시기도 했던 뜻을 따라 우리도 손님이 드는 날이면 종종 물을 뿌려둔다. 호스를 연결해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들리기도 하고. 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줄기 색이 짙어지니 그걸 갈아내 더 하얗게 다듬으셨다.
 
 
이 집에 와서 혜곡이 바꾼 것은
방 옆에 있던 부엌 자리를 과감하게 뒤쪽으로 뺐고, 정원에 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리 크지 않은 안뜰에 생각보다 다양한 나무와 풀, 꽃을 심어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이를 <혜곡의 뜰>이라는 책으로 엮어 비매품으로 비치했는데 언젠가 출판까지 했으면 좋겠다. 2016년에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들의 글을 모아 책을 엮었다. 혜곡 탄생 100주년 기념이었는데, 그때 취재하며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박물관에서 후배들이 전시 준비를 위해 설치를 완료하면 마지막에 선생님이 오셔서 위치나 방향을 살짝만 비틀어도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런 분이었으니 이 집을 단장하고 매만지며 사는 동안에도 그만의 운치와 멋이 남달랐겠다. 혜곡은 수화 김환기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들과 돈독한 관계였다. 특별히 다정했던 인연과 이 집에서 나눈 추억에 관한 기록도 있나
이 지역에 예술인이 많이 살았는데 모두 선생님과 친했다. 어린 시절 친구인 운보 김기창도 근처에 살았다. 방에는 운보와 천경자 선생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술을 좋아하니 아는 이들끼리 모여 자주 술잔을 기울였다. 문화계 중심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교류했던 선생님이 남긴 자취와 김환기, 천경자, 박수근, 김기창 화백의 손 글씨와 그림 연하장을 모아 <최순우를 사랑한 예술가들>이라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 시절 혜곡을 알던 방문자들도 이곳을 찾아오겠다
같이 박물관에서 생활하고 이 집에 자주 왔던 분들이 지금도 오신다. 그러면 그분들이 늘 “더 잘하라”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선생님이 계실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손님을 맞기 전에는 뜰에 물을 뿌리고 물 소리가 ‘졸졸’ 나도록 수도에 물을 틀어놓는다.
 
‘두문즉시심산’.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던 혜곡의 집.
 
최순우 선생님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에 관한 기록 중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뜰에 꽃과 나무만 살던 게 아니다. 한때는 두꺼비도 키웠다. 경주로 출장 다녀오는 길에 두꺼비 한 마리를 잡아왔고, 한동안 마당에서 기르면서 기뻐했다고 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도 좋아하셨다. 미술품과 골동품의 멋을 아시고 한국미를 즐겼던 분이지만 생동감 넘치고 재미있는 분위기였다. 그분이 만든 분위기는 뭘 꾸민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좋은 작품을 걸 수 있는지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도 선생님이 계셨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면서 이곳을 생동감 있게 지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씩 개보수를 해왔다. 최근에도 한 번 정비한 것으로 아는데
이 집을 매입한 뒤, 예전 사진이나 드나들던 분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보수를 2002년에 구입해서 2004년 4월까지 한 차례 크게 했다. 등록문화재인 데다 목재로 만든 집이라 2013년에는 대대적으로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문화재청 위원들이 와서 한 번씩 점검한다. 근래에는 지난해에도 크게 보수공사를 했다. 일부 옛 기와를 남겨두고, 나무 썩은 것도 교체하고. 대들보 중에서 색이 진한 것은 10년 전 보수할 때 넣었던 것이고 조금 밝은 부분은 이번에 갈아 낀 것이다. 마사토도 이번에 새로 깔았고.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면 여기 육각형 모양이 콕콕 붙어 있는데 원래는 서까래 쪽으로 이어지는 부재인 ‘소로’였으나 근대 한옥에서는 끝부분 모양을 장식용으로 겉에 붙였다고 한다. 그것까지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안팎으로 커다란 함지박과 석물 등을 두고 보며 즐겼다.안팎으로 커다란 함지박과 석물 등을 두고 보며 즐겼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꼽는 이 집의 정수는
같은 모습인 날이 없다는 것. 항상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집이다. 선생님 생전에 이 집을 드나들던 분들은 “전시관처럼 돼버렸네”라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최대한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이 느껴지도록.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가 표기식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