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제 '도큐멘타'에서 목격된 한국팀, 이끼바위쿠르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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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제 '도큐멘타'에서 목격된 한국팀, 이끼바위쿠르르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치러지는 현대미술제인 '도큐멘타'. 올해 '도큐멘타 15'에서 유일하게 목격된 한국 팀은 이끼바위쿠르르다.

전혜진 BY 전혜진 2022.09.05
 

이끼바위쿠르르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치러지는 현대미술제인 ‘도큐멘타’. 올해 ‘도큐멘타 15’에서 유일하게 목격된 한국 팀은 이끼바위쿠르르다. ‘한국 팀’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이들은 어떤 국적이나 학교, 갤러리에 기반하지 않는다. ‘아트 컬렉티브’라는 표현 대신 ‘비주얼 밴드’라고 스스로를 정의할 뿐. 사회적 성찰을 지속해 온 믹스라이스의 조지은, 전공자는 아니지만 생활 자체가 예술인 김중원, 나고 자란 제주에서 예술이라는 ‘육지’를 발견했다는 고결은 잊힌 곳들을 거닐며 잊히지 않을 공동체에 관한 담론을 끊임없이 생성한다. 성별도, 나이도, 예술을 향유해 온 환경도 다른 이 정체불명의 탐험가들에게 영상과 사진, 글과 오브제로 어떤 결실을 만들어내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답하는 지점이 바로 이 밴드가 지닌 강력한 힘이다.
 
(왼쪽부터) 고결, 김중원, 조지은

(왼쪽부터) 고결, 김중원, 조지은

지난 6월 개막한 ‘도큐멘타 15’로 향한 유일한 한국인들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조지은 땅과 공기 사이 좁은 경계에 살며 환경에 적응하는 이끼를 좋아해서 이끼가 낀 바위로 이름 지었다. ‘쿠르르’는 만화에서 나올 법한 조악한 의성어다. 이끼바위쿠르르의 모태인 믹스라이스에서 이주와 공동체를 주제로 작업을 지속해 왔고, 좀 더 생태학적인 접근을 위해 팀을 재결성했다.
김중원 ‘비주얼 리서치 밴드’로 정의해 본다. ‘컬렉티브’와 같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용어보다 우리를 설명할 친숙한 단어를 찾다 보니 ‘밴드’라는 개념을 쓰게 됐다.
고결 유기적이고 단정 지을 수 없는 형태로 시각적 경험을 함께 하는 팀이다. 
 
‘공동의 헛간’을 의미하는 ‘룸붕(Lumbung)’ 정신을 바탕으로 국적과 장르에 상관없이 참여자 모두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고 교감하는 ‘도큐멘타 15’ 정신과 맞닿은 팀이다. 카셀에서의 경험은
고결 참여한 모든 컬렉티브의 정체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나는 아카데믹 기반의 예술가는 아니어서 솔직히 ‘비엔날레’와 같은 행사의 규모감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데, 카셀은 그저 ‘큰 터’에서 벌이는 축제 같았다. 전시장을 보고 설치하고 작품을 공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조지은 카셀의 작가들은 작업 결과물보다 자신의 예술적 기반에서 어떤 활동을 펼치는지 그 태도와 정신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작품 얘기를 해보자. 오토네움 자연사박물관에 놓인 2채널 비디오와 사진 작업 25점으로 구성된 ‘열대 이야기(2022)’는 태평양전쟁과 식민주의의 잔재에 대해 탐구한다. 프로젝트의 시작점은
조지은 미크로네시아와 같은 태평양의 작은 섬에는 원주민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활주로, 진지, 비행 상륙장 등의 잔해가 남아 있다. 비석과 묘지도 물론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숲과 바다의 생태계에 놓여 있는 이 역사의 흔적을 포착한다. 일본과 기타 아시아 지역을 방문해 리서치 작업을 하며 자료를 모았고, 2019년부터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김중원 ‘열대 이야기’를 제작하며 인도네시아 · 제주 · 한국 · 미얀마와 태평양 섬인 사이판 · 괌 · 티니안 · 팔라우에 다녀왔고, 영상에 담지 않은 장소들도 순회했다. 잊힌 시간을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해초 이야기, 2022.

해초 이야기, 2022.

‘해초 이야기(2022)’에는 하도해녀합창단이 ‘제주아리랑’을 부르는 비디오가 포함됐다. 태평양전쟁과 해녀들과의 연결성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온다
고결 하도는 20세기 중엽 제주 해녀 항일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조지은 제주를 보통 관광지로 인식하지만, 전쟁과 식민주의의 상흔을 품고 있다. 관광과 전쟁의 이면이 양면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열대 이야기’의 다른 태평양 지역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김중원 영상물 앞에 해녀들이 물질하러 가기 전 사용하는 작은 집과 해초 조각들을 설치했다. 하도마을에는 일곱 개의 해녀 탈의장인 과거의 ‘불턱’과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카셀의 ‘룸붕’ 정신과도 이어진다.
 
섬들을 직접 다니며 작품 소스를 ‘채집’한 여정 또한 작품의 일부로 봐야 할 것 같다. 이렇듯 개별 프로젝트 단위의 수준을 넘어 삶과 예술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확대하고, 개념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의 특이점은
조지은 의도적으로 어떤 장면을 찍지는 않는다. 마구 채집한 뒤 여정에서 돌아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분류한다. 우연과 필연적인 것이 섞인다.
김중원 이를테면 팔라우 같은 지역은 휴양지로 유명하지 않나. 관광지나 물가 대신 알려지지 않은 땅 위에서 현지인들을 만나 2~3주간 체류한다. 흔적을 발견하면 차를 돌리고, 낯선 길을 헤매고, 배를 잘못 타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담고, 그것을 편집하고 나열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고 재정립한다. ‘해녀 이야기’ 또한 해녀들과 제주에서 1년 가까이 지내는 과정까지 포함해 2년 정도 걸린 프로젝트다.
 
나치즘에 대한 성찰적 성격을 지닌 도큐멘타와 식민주의, 문명과 자연, 역사와 생태학에 관심을 둔 이끼바위쿠르르가 추구하는 지점이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성찰의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는 이유는
조지은 사회적 맥락과 미술이 어떤 연관관계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담론이 된 시기가 있었다. 90년대에 졸업한 나로서도 그런 작업을 지속해 왔고. 역사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 시간성에 대한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어떤 작업을 통해 어떤 움직임으로,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 중시하는 편이고 잊히지 않고 꾸준히 발원됐으면 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 사람의 역할은
조지은 김중원은 촬영을, 나는 글을 쓰거나 편집하고 그림을 그린다. 고결은 뭘 만들거나 리서치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가변적이다.
 
열대 이야기, 2022.

열대 이야기, 2022.

함께하게 된 계기는
김중원 2014년 조지은을 만났고, 2021년 팀을 결성했다. 몇 번 협업한 것이 바탕이 됐다.
고결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조지은이 제주에 작업과 리서치를 하러 자주 왔는데, 튜터링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답 없는 원주민이 문명을 만났다’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의 사건이다. 우리는 나이 차이뿐 아니라 아트 신에서의 경험 차이도 큰데, 조지은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다.
조지은 반드시 ‘날것’의 이들과 함께해야 할 것 같았다(웃음).
 
이끼바위쿠르르만의 예술 언어가 있다면
고결 말 그대로 헤매고 연습하는 그 자체다.
김중원 그것을 정의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 점이 우리의 형태라면 형태다. 특정 예술적 형식이나 목표를 지향하지 않고 현재를 모험한다.
조지은 방향을 정하면 그에 맞춰 나서게 될 수밖에 없다. 재미를 찾으려면 ‘여백’이 많아야 하고. 이 답변에도 여지를 두고 싶다.
 
국내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아트 신의 흐름에 대한 생각은
조지은 사실 매체에서 짚는 만큼 대중이 미술에 관심이 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현대미술은 미술적 담론에 의해 흐르는데 담론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현저히 낮다. 지역마다 기술자, 큐레이터, 학생들이 함께 모여 밥 먹고 얘기하는 카셀 도큐멘타와 다르게 한국은 조용하다고 생각한다. 미술 전문가 간의 대화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열대 이야기, 2022.

열대 이야기, 2022.

아카데믹한 베이스로 혹은 인기 작가처럼 인스타그래머블한 접근으로도 묶이지 않는 팀이다. 이끼바위쿠르르가 궁극적으로 찾으려는 것은
김중원 이 ‘밴드’가 계속 정의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계속 부딪히고, 모험하고 싶다.
고결 사회 체계나 의식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보려 한다. 의식하다 보면 변신은 어려워진다.
조지은 전시 소개서를 내거나 지원금 서류를 낼 때 어떤 기획전에 참여했고, 몇 회의 개인전을 할 것인지 경력 위주로 쓰게 되어있다. 우리의 변신은 제도적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정체성일 수 있다.  그럼에도 꼭 무엇을 전공하고 배우고 보고서 쓰듯 정의해야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교류와 활동이 쌓이면 예술가가 되는 법이라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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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경진/ 전혜진
    사진 이우정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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