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매체와 온 · 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꾸준히 영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의 첫 책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에는 김보라, 김종관, 김초희, 박찬욱, 봉준호, 윤가은, 윤단비, 이경미, 이옥섭, 이와이 슌지, 이종필, 이재용, 임선애 감독과 나눈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화이트 셔츠는 Lemeteque. 재킷과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3인의 감독과 나눈 34시간의 대화가 680쪽 분량으로 담겼다. 기획의 시작은
원래 내려고 한 에세이집의 출간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인터뷰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갖고 있던 감독 인터뷰 몇 편을 편집자에게 보여줬더니 한번 모아보자고 하더라.
박찬욱, 봉준호, 이경미, 이와이 슌지 등 13인의 감독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새로 진행한 인터뷰와 재사용한 인터뷰 비율이 반반 정도다. 개인 프로젝트다 보니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데, 다들 흔쾌히 응해줬다.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그때 그 인터뷰를 다시 꺼내 읽어요”라는 감동적인 화답으로 맨 처음 섭외에 응해준 윤가은 감독께 특히 감사하다.
인터뷰 장소와 진행 시간을 표기하고, 현장 사진을 넣은 점은 에디터 출신다운 기획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만만찮은 두께의 책을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으려면 시각적 환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화 포스터나 스틸 이미지 대신 장성용 포토그래퍼와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을 넣고, 표지를 최대한 예쁘게 만들려고 했던 이유다. 판형을 작게 만들다 보니 페이지 수가 늘어났는데 부피가 주는 양적 만족감도 있지 않을까.
대화가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일찍이 〈엘르〉 2019년 11월호에 ‘여자가 한국영화의 미래다’라는 칼럼을 쓴 것과 관련 있나
당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9), 이옥섭 감독의 〈메기〉(2019) 등을 조명하며 읽히는 흐름이 있었다.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여성감독하고만 여성 서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게으른 선택 같았다. 그런 면에서 〈박쥐〉(2009), 〈아가씨〉(2016), 〈리틀 드러머 걸〉(2018) 등을 통해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낸 박찬욱 감독을 섭외하는 게 중요했다.
같은 주제로 책의 세계관을 확장할 때 꼭 초대하고 싶은 외국인 감독은
그레타 거윅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의 셀린 시아마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노아 바움벡 감독과 〈프란시스 하〉(2014)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도 즐거울 것 같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시대에 〈킬 빌〉 같은 하드보일드 여성 서사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정말 진취적인 일일 테니까.
작품과 각본집을 중심으로 박찬욱 감독이 잠시 평론가로 활약하던 시절에 쓴 짧은 에세이라든지 김보라 감독이 〈벌새〉 이전에 연출한 단편 〈리코더 시험〉(2011)처럼 감독이 남긴 모든 족적을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물론 이런 것까지 다 안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뭘 그것까지 봤느냐”는 말을 들으면 기분은 좋더라.
미장센과 사운드트랙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는데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1992)이 영화에 대해 잘 모르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시청각적으로 쏟아부었던 감각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건 미장센과 사운드트랙인 것 같다.
꼭 처음부터 정독할 필요 없이 백과사전처럼 활용했으면. 좋아하는 감독의 인터뷰를 먼저 읽고, 그게 충분히 흥미롭다면 다른 감독의 이야기도 들춰 보길 바란다. 재미있게 본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 읽어봐도 좋고.
대화할 땐 원고 분량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끈질기게 대화한다. 또 그럴듯한 엔딩 멘트보다 정말 궁금한 질문 하나에 끝까지 집중하는 편이다. 각본집에 없는 내용이 어쩌다 영화에 등장했는지 같은.
영화보다 삶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이제 막 데뷔작을 선보인 감독이든,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이든 전부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이상한 위안이 있을 것이다.
영화 모임을 이끌고, 모더레이터로 활약하며 끊임없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가 왜 좋은가
영화는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영화가 알려주는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런 발견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