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매 시즌 샤넬 쇼가 열리던 그랑 팔레 에피메르에서 샤넬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출시 90주년을 맞아 전시 형태로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건 1932년 가브리엘 샤넬이 하이 주얼리를 소개하기 위해 보낸 초대장. 한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크기의 초대장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후원으로 설립된 파리모성자선협회와 중산층을 위한 민간지원단체에 수익금을 기부한다는 내용과 함께 20프랑의 입장료가 있었음을 보여줬다.
화이트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이뤄진 꼬메뜨 볼류트 네크리스.
초대장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의 첫 하이 주얼리 전시가 열렸던 당시는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실업률이 치솟았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런던다이아몬드협회가 디자이너로 주목받고 있던 가브리엘 샤넬에게 주얼리 컬렉션을 의뢰해 그녀만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면서 룩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든다는 원칙으로 다이아몬드를 다뤘고, 그 결과는 런던뿐 아니라 파리까지 관통해 주얼리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가브리엘 샤넬이 진두지휘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1932년에 열린 ‘비쥬 드 디아망’이 처음이자 마지막 컬렉션이 됐다. 일명 ‘샤넬 사건’으로 불렸던 소동 탓이다.
브로치로 연출할 수 있는 알뤼르 쎌레스테 네크리스 펜던트.
주얼러들이 방돔광장에 모여 샤넬에게 주얼리를 해체하고 보석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며 더 이상 하이 주얼리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한 장의 초대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며 궁금증을 안고 입장한 전시는 어둠 속의 빛을 따라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토회 수도원으로 이끌었다. 밤하늘의 별과 빛나는 초승달,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녀가 뛰어놀았을 운동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가브리엘 샤넬이 10년 동안 살았던 생토노레 29번지 타운 하우스, 바로 ‘비쥬 드 디아망’ 전시가 열렸던 곳을 모티프로 꾸며놓았다. 타운 하우스의 상징과도 같은 계단을 지나 이어진 전시는 90년 전 가브리엘 샤넬이 초현실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방식을 재해석했다. 유리 케이스에 전시했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 눈높이의 밀랍 마네킹에 주얼리를 전시하고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거울을 배치한 것. 마네킹엔 전시 첫날 팔린 작품 중 일부와 당시 파테 고몽이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시 제작한 작품이 나열돼 있었다.
5.52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가 인상적인 솔레이 19 웃트 링.
날아오르는 혜성과 달, 태양 등 하늘에서 모티프를 얻은 제품부터 샤넬 룩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연한 리본과 춤추는 듯한 프린지, 가벼운 깃털 그리고 나선, 원, 사각형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시간, 장소에 초점을 맞춰 주얼리를 구성했다. “여성과 드레스, 주얼리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드레스는 매 시즌 바뀌기 때문에 주얼리도 함께 변신해야 한다.” 패션 디자이너인 샤넬이 주얼리에 접근하는 방식은 여느 주얼러와는 달랐다.
3.54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더한 꼬메뜨 앙피니 링.
긴 길이의 깃털 브로치는 지지대를 제거해 어깨에 걸쳐 연출하거나 코트를 여미는 용도로 사용하고, 네크리스를 분리해 다양한 길이로 연출하거나 브레이슬렛으로 활용하는 등 룩에 어울리는 스타일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하이 주얼리를 하고 움직임에 제약을 받으며 마네킹이 되기보다 개성을 살린 주얼리 스타일링으로 여성에게 자유를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그녀의 컬렉션은 단 한 번으로 끝났지만 하이 주얼리의 고정관념을 깬 방식은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샤넬 화인 주얼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패티리스 레게로가 전개한 ‘1932’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 그대로 반영됐다.
3.54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더한 꼬메뜨 앙피니 링.
“1932년의 정수로 돌아가 혜성과 달, 태양이라는 세 가지 상징에 관한 메시지를 조화롭게 제시하고 싶었다.” 패티리스 레게로는 가브리엘 샤넬이 만든 하이 주얼리의 개념, 즉 유연한 아이디어로 스타일링이 가능한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천체라는 주제를 간결한 선으로 연결해 나갔다.
브레이슬렛으로 연출한 알뤼르 쎌레스테 네크리스.
별을 수놓은 나선형 주얼리와 네크리스를 분리해 브로치와 브레이슬렛, 초커로 연출하는 등 77개의 작품 중 12개가 변형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 몸의 곡선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별자리를 따라가다 보면 사파이어와 옐로 다이아몬드, 루비 등 유색 컬러 보석이 그만의 방식으로 리듬감 있게 배치된 것을 알 수 있다.
55.55캐럿 오벌 컷 사파이어가 인상적인 네크리스. 브로치와 브레이슬렛으로도 연출할 수 있다.
가브리엘 샤넬이 밤하늘을 보며 꿈꿨던 어린 시절부터 패티리스 레게로의 새로운 ‘1932’ 하이 주얼리 컬렉션까지 그랑 팔레 에피메르를 거닐며 돌아본 전시의 끝자락엔 파편처럼 별빛이 쏟아졌다. 선명하게 보였다가 사라지는 별빛을 보며 지금 시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겹치며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시대를 비관하기보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로운 시각으로 시장에 변화를 일으킨 가브리엘 샤넬의 태도를 말이다.
화이트골드와 다이아몬드, 오닉스로 이뤄진 꼬메뜨 아모니 링.
가브리엘 샤넬이 ‘비쥬 드 디아망’을 소개하며 보낸 초대장.
1932년 밀랍 마네킹에 전시한 꼬메뜨 네크리스.
내가 다이아몬드를 선택한 것은 최소한의 양으로 최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가브리엘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