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미친 존재감, 우리가 진짜 마초다

모두가 최고를 외친다. 가짜가 판을 치는 수식 과잉의 시대다. 하지만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는 그들을, 어느 작품, 어떤 캐릭터로도 가려지지 않는 압도적인 개성과 넘치는 카리스마를, 연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몰입을, ‘미친 존재감’이라는 단어로 대신하려 한다.

프로필 by ELLE 2011.11.09



해골 프린트 티셔츠와  직접 디자인한 데님 팬츠, 액세서리는 모두 최민수 소장품.

최민수,  CRAZY BEAUTIFUL

우렁찬 커스튬 바이크의 엔진 소리가 멀리서부터 그의 ‘등장’을 알렸다. 헌 옷의 자수를 오려 붙인 빈티지 데님 팬츠와 해골 프린트 티셔츠에 직접 만든 가죽 공예 아이템을 레이어드하고 반다나로 마무리한 최민수는 로드 무비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스튜디오 입구에 들어서며 “간지 쩌는데!”라며 말문을 여는 그를 알현한 순간, 번뜩 ‘로큰롤’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로큰롤, 자유? 좋치. 근데 난 자유의 뜻이 ‘자기만의 이유로 스스로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해. 죽기 전까지 우리는 자기가 누군지 찾아가는 여정을 가는 사람들이니까.” 소울 가득한 중저음의 랩처럼 이어진 그의 수다를 경청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배우의 연기에서 내공이 느껴지는 이유가 ‘삶의 공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거들먹거리는 듯 담백했던 <무사 백동수>의 ‘천수’는 장황한 듯 일관된 그의 철학과 상당 부분 닮았다.




빈티지 바이커 룩과 액세서리, 직접 디자인한  커스텀 바이크 모두 최민수 소장품.

“캐릭터를 분석하고 대본을 외우는 건 당연한 과정이지만 그 문지방을 넘어서면 연기를 안 하게 돼. 그 인물이 운명 같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난 몸을 빌려줄 뿐 연기를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거지.” 나열하기엔 너무 장황한 그의 필모그래피 속 인물들은 그렇게 태어났고 연기든 음악이든 형식보단 상황에 젖어 즐기는 천상 예술가 타입이다. 얼마 전 그는 울산재즈페스티벌에서 경희대 교수들로 구성된 밴드 36.5도와 생애 첫 무대를 가졌다. “지금까지 만든 곡이 열네 곡 정도 되는데 음반을 낼 생각은 없었지. 이우창 교수가 권해서 한번 해보자 그래서 미친 듯 작업하고 있다.” 작업은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기타 멜로디를 녹음한 다음 “잘 들어, 이런 음악이야”라며 멤버들에게 들려준 후 바로 녹음에 들어가는 식이다. “악보 같은 건 당연히 쓸 줄 모르고 즉흥적으로 한다. 결국 음악에 채워 넣어야 하는 건 사람의 온기지 다른 게 아니니까.”



스트라이프 재킷과 화이트 셔츠, 팬츠는 모두 Lansmere, 보타이와 행커치프,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 Traction.

윤제문, MORE BETTER BLUES

“만약 연극을 안 했으면 뭘 했을까. 그냥 ‘놈팽이’가 되지 않았을까?”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단단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더니 드디어 표정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약속이나 한 듯 포토그래퍼와 눈이 마주쳤다. 강렬한 아우라였다. “안정적인 삶?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라고 결심한 게 고등학교 때였으니.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해보면서. 대금도 불었다가 기타도 쳤다가.” 장사도 하고 음반 유통도 하며 공부가 아닌 것들은 모두 해보던 시절이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입대 이전은 어찌 보면 인생의 방황기였다. “군에 있을 때 연극을 처음 접했는데 재미있더라. 아, 이런 세계가 다 있구나. 제대하고 스물여섯 나이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더 나이 먹으면 못할 것 같아서 일단 저질러본 거지.” 그때 시작한 연기는 지금껏 평생의 업이 됐다.




거창한 결심보단 연극을 경험해 보겠다며 들어간 극단. 경제적으론 어려웠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힘든 줄 몰랐다. 영화 <열혈남아> <우아한 세계> <비열한 거리>에선 조폭보다 실감나는 조폭이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입소문을 모았던 <위험한 흥분>에선 뒤늦게 밴드에 푹 빠지는 7급 공무원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대중적으로 윤제문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드라마 <마이더스>에 이어 최고의 화제작 <뿌리깊은 나무> 촬영에 한참이다. “어떤 캐릭터가 되는 게 아니라 놓여진 상황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움직이는 거다. 그게 말이든 행동이든. 내가 어떤 캐릭터라서, 착한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라서 이렇게 말해야지가 아니라 상대를 보고 감정이 나오는 대로 흘러 가려고 노력한다.” 그가 덧붙였다. “물론 쉽지는 않지. 그런데 그게 재미거든. 나한텐 연기만큼 재미있는 게 아직 없거든.



헤링본 소재 재킷은 Bean Pole, 체크무늬 셔츠는 Customellow, 팬츠는 C.P. Company, 슈즈는 Nina Ricci, 시계는 Dox, 행커치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류승룡, AS GOOD AS IT GETS

“20대엔 기인으로 유명했지.” 대학시절 류승룡은 물통에 술을 ‘지참’하고 다니던 프리 스타일이었다. 여름이면 대학로 탑차 꼭대기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하늘과 술잔을 기울였고 그러다 차가 떠나는 바람에 팔이 부러진 적도 있다. 상수역 기찻길 아래 난 동굴에 세간살이를 갖춰놓고 인적 드문 밤에 몰래 찾아 들어가 잠을 청하기도 했다. 물론 기인적 행보만 이어간 건 아니었다. 독서와 여행으로 내실을 다지는 데 충실한 삶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연극반에 들면서 시작한 연기는 ‘빼도 박도’ 못하는 삶이 됐다. 스스로 “연기에 미친 게 맞다”고 인정하는 그는 <난타> 공연을 통해 얼굴을 알렸고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수줍게 사랑하던 최 관장으로 재발견됐으며 <7급 공무원> <평양성> <아이들…> <고지전> 등의 영화를 거쳐 2011년 흥행의 우두머리에 선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 역으로 존재감의 우두머리를 차지했다.




연기도 연기지만 인상에서 풍기는 아우라도 대단하다. “강한 캐릭터를 많이 해서 성격도 셀 거란 ‘집단 선입견’이 있다!” 시나리오를 ‘초독’할 때 오는 느낌에 의해 작품을 결정한다는 그를 실전에서 ‘초독’해 보니 장르로 치자면 웃음을 신뢰하게 되는 코미디, 열정이 작렬하는 블록버스터의 기운이 감돈다. “인생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느낌으로 평지도 걷다가 구릉도 오르내리는 것”이라 말하는 류승룡의 삶의 장르는 과장되지 않은 장편 다큐멘터리에 가깝지만. “20~30대는 안개 같던 미래 때문에 표정이 굳어 있었고 웃는 게 아직은 어색하다. 흰머리도 나고 주름도 생기면서 살아온 여정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드러나는 요즘엔 나이에 맞게 나이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좋기도 하고.” 지금도 여전히 중년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 배우, 하지만 좀 여유로워진 생활의 간극을 이웃을 되돌아보는 의식 있는 행보로 채워넣고 싶다고 말하는 이 사람의 너그러운 ‘종주’를 아마도 내내 눈으로 쫓게 될 것 같다.



체크무늬 셔츠는 Dunhill, 헤링본 소재 베스트는 Customellow,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마동석, WITH IRON WILL

마동석의 몸은 그의 제복이다. 굵은 목과 넓은 어깨. 바위와 같은 탄탄한 체격은 그간 해온 역할들의 흔적이다. 형사, 경호실장, 유도팀 감독, 특수부대원. 몸을 써야 하는 직업들이다. 그렇다고 센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펀드 매니저도 했고 유머러스한 모습들도 적잖이 보여줬다. 허나 쉬이 잊히지 않는 인상과 체격 탓에 강인한 캐릭터가 떠오른다. 얼추 비슷한 역할들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직업이 비슷하더라도 다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성격도 다르다.” 마동석은 서른 살에 늦깎이 배우로 데뷔했다. 10년이 지났다. 돌 같은 근육을 뚫고 배우로서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 나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동시에 이종격투기 선수의 트레이너 출신이란 타이틀도 희석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운동 선수들의 트레이너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다 문득 잘나가던 인생을 때려 엎고 중력에 끌리듯 본래 꿈으로 선회했다. 고등학생 때 교회 성극에서 맛봤던 연기였다. “평생 직업으로 운동을 한 건 아니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정점을 찍어봐야지 싶었다. 곧장 LA로 이사했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배우의 문은 할리우드보다 고향에서 먼저 열렸다. 영화 <천군>으로 데뷔했고 드라마 <히트>로 얼굴을 알렸다. 그 뒤 <부당거래> <심야의 FM>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운동을 할 때는 결승점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죽기 전까지 연기를 하는 게 목표다. “촬영을 하다 뼈가 다 부러질 정도로 크게 다친 적 있었다. 재활을 하려고 아령을 들었는데 팔이 부들부들했다. 전에는 몇 백 킬로그램도 훌쩍 들었는데 당시에는 작은 것이라도 들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했다. 이처럼 작은 역할이라도 오래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EDITOR 박소영
  • 채은미
  • 김영재 PHOTO 안주영
  • 이창주 ELLE 웹디자인 김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