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셀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2018년 4월, 토론토에 살던 25세의 알렉 미나시안은 다음과 같은 글을 자신의 SNS에 남긴 후 밴을 타고 무차별 거리로 돌진했다. 이로 인한 사상자는 25명. 이 사건을 계기로 미디어가 ‘인셀’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며 2014년, 샌타바버라에서 무차별적 테러로 19명의 사상자를 낸 직후 바로 자살한 엘리엇 로저 역시 사건 직전 섹스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비디오를 업로드한 ‘인셀’임이 드러났다. 2018년 2월, 17명의 사상자를 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더글러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 범인인 니콜라스 크루즈는 엘리엇 로저를 추모한 바 있다. 충격적인 것은 세 명 모두 90년대생으로 사건 당시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중반에 불과했다는 점. 혐오와 적의는 SNS와 커뮤니티를 토대로 빠르게 공유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펨셀’은 남성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분노를 쌓은 반사회적 존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여자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인셀의 대응어일 수는 있으나 둘은 전혀 다르다. 미국판 〈엘르〉는 도린(Doreen)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외모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성적 욕망이나 로맨틱한 감정 또한 느끼지 못했다. 남자아이들은 매력적인 여자아이들과 도린을 다르게 대했다. 도린은 “자존감이나 자신감 따윈 아예 없었죠. 이 세상은 여성, 특히 젊은 여성으로서 내 가치는 외모와 직결돼 있다는 걸 가르쳐줬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고등학교 졸업반 무렵, 도린은 노력했다. 스타일을 바꿔보기도 하고 용기를 내 좋아하던 남자아이에게 고백해 봤지만, 우연히 그 아이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못생긴 애’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무렵 알고 지내던 다른 남자아이가 FWB(Friend with Benefits)를 제안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관계를 맺을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오히려 섹스를 하고 나면 역겨운 기분이 들며 피부를 훌렁 벗은 다음 새 몸을 입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때보다 더 기분이 나빴다. 도린이 누군가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도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펨셀은 여성 혐오적이면서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 대한 피해자에 가깝다. 펨셀들은 말한다. ‘여자는 그저 몸뚱어리로만 사용되어도 상관없다면 섹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거나 함부로 대하는 남자들과 자는 것은 굶을지, 아니면 독이 든 음식이라도 먹을지를 결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인셀들은 ‘원하면 섹스가 가능하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펨셀의 존재를 부정한다. 여성을 정복(혹은 삽입) 가능한 몸뚱어리로 보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사실 인셀뿐 아니라 많은 남성이 섹스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여성이며, 여자들이 그로 인해 세상을 ‘편하게’ 산다고 여긴다. 이들에게 여성이 섹스할 때 느끼는 안전과 피임을 둘러싼 불안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펨셀은 불합리한 대우를 감수하면서까지 애정을 갈구하지 않기로 선언한 존재다. ‘비자발적’으로 관계를 포기한 것이 슬프거나 분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런 펨셀의 선언은 2020년부터 기사화되기 시작한 한국 여성들의 4B 운동(비섹스 · 비연애 · 비결혼 · 비출산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4B 운동은 1차적으로는 남성과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선언이지만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의 짐을 지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대한 항의이며, 남성과의 1:1 관계에서 수반되는 여러 위험성에서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4B 운동이라는 정치화된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남성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정서는 많은 젊은 여성에게 공유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판단은 슬프게도 상당히 현명한 전략처럼 느껴진다. 가까운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폭력에 시달리거나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여성들의 사례가 끝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연인관계를 사람들에게 밝혔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오피스텔 8층 복도와 엘리베이터, 로비에 끌고 다니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남았음에도 제대로 구속조차 되지 않아 피해자의 가족은 딸의 얼굴까지 공개하며 처벌강화를 요구해야 했다. 한 남성은 이벤트를 해준다는 핑계로 여자친구를 펜션 근처로 불러낸 뒤 살해를 시도했다. 다행히 여성은 도망쳤지만 사망보험금으로 외제차 할부를 갚으려고 했다는 범죄 목적과 남자의 친구들까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의 나이는 19~20세. 여성을 철저히 도구로 바라본 ‘N번방 세대’의 범죄를 예감하게 했다.
공포스러운 것은 한국의 많은 ‘남초’ 커뮤니티가 점차적으로 ‘인셀’ 문화를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셀들의 분노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 마땅히 자신의 몫이 돼야 할 여성을 ‘배당’해 주지 않은 사회로 향한다. 실제로 엘리엇 로저가 가장 먼저 흉기로 살해한 것은 자신과 같은 아파트에 살던 남성 세 명이었다. 한국도 ‘설거지론’이나 ‘퐁퐁남’ 같은 해괴한 용어가 미디어의 관심을 먹고 자라고 있지만, 이런 적의와 별개로 기혼 남성이 범죄 대상이 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2020년 한 경제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 중 68%는 비혼을 택했다. 반면 남성 중 76.8%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결혼할 것이라고 답했다. 2021년 한국의 전국 출산율은 0.84%로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0명대를 기록했다. 꼴찌를 차지한 서울의 수치는 0.64%였다. 지금 한국 사회가 보유한 지표들은 어쩌면 그 자체로 어떤 펨셀 선언보다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