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에 입덕한 덕후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덕질까지가 유쾌하오…” 이상의 소설 〈날개〉의 명문을 빌려 지난 2년간 내 ‘덕생’을 잠시 위로하고자 한다. 바스러지고 있는 현생이 안타까워서였을까. 종식하라는 팬데믹은 꿈쩍도 안 하는데 내 휴덕기는 눈치도 없이 종식을 선언해 버렸다. 시작은 달콤했다. 다시 누군가를 이토록 순수하고 무구한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늦덕’이라는 핸디캡도 좋았다. 끝없는 떡밥을 부지런히 소화하는 동안 나를 가슴 치게 만든 건 팬데믹이 세운 물리적 장벽보다 왜 이들을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었으니까. 그 마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무수히 쏟아져 나온 ‘온택트’ 콘서트를 관람하면서부터다. 익숙하게 관람권을 결제한 뒤 공연 시간에 맞춰 노트북 옆에 맥주를 세팅해 놓는 일에 익숙해지던 찰나. 8만 석의 스타디움 공연 현장을 가상으로 구현해 놓은 ‘브이디움(V Dium)’ 무대를 보게 됐다.
모니터 너머에는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는 크로마키 군단을 향해 최애가 벅찬 표정으로 “한 번 더!”라며 호응을 유도했다. 그 눈빛이 하도 애틋해서 하마터면 실제 콘서트로 착각할 뻔했더랬다. 실상은 초록색 허공을 마주한 그가 관객과의 호흡을 연기한 것인데. 갑작스럽게 ‘현타’가 찾아왔다. 이 낯선 공허함보다 무서웠던 건 철저한 가상현실에 내가 몹시 충실한 관객으로 동기화됐다는 것. 그제야 비로소 내가 ‘코로나19 시대의 덕후’임을 실감했다. 이튿날 아침, 오프라인 콘서트를 뛰었을 때와 같은 일말의 근육통이나 입 안의 텁텁함 없이 개운하게 눈뜨며 깨달았다. 몸에 새겨지는 체험의 증거가 부족한 추억은 더 쉽게 휘발된다는 것을, 온택트 덕질은 안전하고 산뜻하지만 누구도 언제까지나 가상의 ‘돔’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마침내 전 세계는 ‘위드 코로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면 팬사인회와 오프라인 콘서트 소식이 하나둘씩 들려오면서 덕후들은 벌써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다. 꺼지지 않도록 지켜온 사랑을 온전하게 ‘직접’ 전달할 기회를 향한 설렘이 느껴지는 지금. 지금까지 긴 간주의 시간을 사랑의 멜로디로 감싸 안아온 나는 “이럴 때가 있었다. 그래도 사랑했다 말할 날이 올 거야. 지나면 다 괜찮아!”라는 온앤오프의 ‘On-You (Interlude)’ 가사를 흥얼거리며 내년의 덕질을 기대하고 또 상상해 본다.
〈아무튼, 아이돌〉 저자 윤혜은 2021년 2월 ‘페이코인’이라는 생소한 코인을 알게 됐다. 2550%가 올랐다던데? 누구는 수익으로 집을 샀다던데? 나만 주식도, 코인도 안 하는 건가? 나만 억울하게 이 좋은 세상에서 돈 못 버는 거 아니야? 이상한 불안감에 그해 봄 코인 시장에 발을 들였다. 철이 없었죠…. 주변 소문만 믿고 코인을 시작했다는 게. 어느덧 텔레그램과 오픈 카톡 방장들의 지도편달로 야금야금 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러다 집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으로 하루하루 행복했다. 내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자가 성공 신화’ 속 인물은 될 수 없으니 용기 내 ‘마통’까지 뚫었다. 그로부터 몇 달간 코인 이슈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치 도박꾼처럼 한시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너무너무 떨리고 흥분됐어. 그러나 5월 이후부터 기분은 나락에 빠졌다. 업비트에 켜진 파란불은 도무지 빨간색으로 바뀔 생각이 없어 보였고, 아무리 물을 타도 내 재산은 다시 ‘양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간 몸도 마음도 통장도 ‘벼락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철저한 시장 공부나 조사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코인에 투자하면 피를 본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제 내 손을 떠나간 돈에 정중히 굿바이를 고한다. 2022년의 나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로또만 1주일에 한 장 정도 사면서) 열심히 월급을 모으는 성실한 직장인이 될 거다.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 서비스 기획자 백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