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도싱. 직역하면 극소량을 투여한다는 의미로 의약업계에서 유래했다. 부득이하게 항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이 오남용이나 부작용 없이 좀 더 안전하게 약효를 보기 위해 아주 소량만, 약의 효능이 떨어지기 전에 꾸준히 섭취하는 방법을 마이크로도싱이라고 일컫는 것. 이 개념이 피부과와 에스테틱으로 넘어와 2019년 미국 등지에서 ‘베이비 보톡스’라는 유행을 낳았다. 한 번에 많은 필러나 보톡스를 넣어 ‘나 오늘 시술했어’라고 티 내는 대신, 소량을 주입해 육안으로 봤을 때 아무도 못 알아차릴 만큼 자연스러운 효과를 노리는 것. 방법적으로는 극소량을, 규칙적으로, 더 자주 한다는 것이 공통점인데, 이런 테크닉이 스킨케어로 이어지면서 팬데믹 시대의 미니멀 뷰티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바르는 화장품의 개수 자체를 줄이라고 말하는 ‘스킵케어(Skip-care)’ 뒤를 잇는 차세대 스킨케어 핫 키워드인 마이크로도싱. 이 테크닉은 효과는 ‘직빵’이지만 피부에 부담감이 큰 성분을 바를 때 특히 유효하다. 대표적으로 레티놀이나 글리콜산 혹은 살리실산 등 각종 화학적 각질 제거 성분과 비타민 C 등을 들 수 있겠다.
이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현명해질 만큼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런 성분이 ‘피부가 뒤집어지지 않을 정도의 농도인지’ ‘안전한 성분인지’ 등을 체크한다. 문제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초콜릿 강물에 빠져버린 아우구스투스나 몸이 풍선껌처럼 부풀어버린 바이올렛같이 순간의 과욕을 참지 못하고 피부에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화장품 제조사의 잘못도, 소비자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건강하고 매끈한 피부를 원하는 모든 사람의 본능일 뿐. 결국 마이크로도싱은 원치 않는 피부의 결말(!)을 애초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유효 성분의 농도를 의도적으로 마일드하게 낮춘 기능성 제품을 매일매일, 소량씩 바름으로써 피부에는 유효 성분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피부 장벽을 탄탄히 유지해 염증 반응을 최소화하며, 그 성분의 효능이 피부에서 십분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잔근육을 만드는 무산소운동을 생각하면 쉽다. 근육을 늘리고 가늘게 쪼개 라인이 예뻐 보이기 위한 운동을 할 때, 무거운 중량을 단타로 치는 대신 중량을 적당히 줄이되 반복하는 세트의 수를 늘리는 것처럼 말이다. “스킨케어의 여정은 마라톤입니다.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에요. 느리게 가더라도 꾸준히, 평생 효과를 보고 가야죠.” 뷰티 브랜드 스펙터클 스킨케어(Spectacle Skincare)의 창립자 안드레 콘딧(Andre Condit)의 말에서 마이크로도싱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품을 고르고 발라야 할까? 앞서 언급한 마이크로도싱에 적합한 대표 성분을 다시 한 번 예로 들어보자. 레티놀과 각종 화학적 필링 성분들, 비타민 C가 함유된 제품을 바를 때는 특히 스킨케어 초심자일수록 평균보다 더 낮은 농도의 제품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마이크로도싱에 걸맞은 농도는 레티놀의 경우 0.1~0.3%, 글리콜산 · 락틱산 · 살리실산 등은 5~10%, 비타민 C의 경우 10% 미만. 이 정도의 농도를 갖고 있는 제품을 찾아 단순한 스킨케어 스텝으로, 또 다른 기능성 제품을 더하지 않은 채 정량만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바르는 것이 마이크로도싱의 정석. 이때 농도가 낮다고 피부 변화 정도나 속도가 만족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 피부 유효 성분의 농도를 낮춘 만큼 피부가 느낄 부작용이나 붉어짐, 건조함, 과도한 각질 탈락 등을 즉각적으로 진정시켜 줄 별도의 수딩 성분을 배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위 ‘명현 현상’이라 일컫는 불편한 증상 없이 꾸준히 바를 수 있거니와 유효 성분이 피부에 더 스무스하게 안착할 수 있는 것. 그간 무조건적으로 ‘더 높은 농도’와 ‘더 많은 함량’의 제품을 찾았던 자신의 습관을 문득 반성하게 되지 않나!
간혹 사용량을 줄여 피부가 건조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땐 별도의 부스터 제품과 믹스해 바를 것을 추천한다. 기능성 성분이 없는, 기본 보습 로션이나 세럼에 앞서 언급한 저농도의 유효 성분 함유 제품을 소량 믹스해 바르는 것. 여전히 마이크로 도싱에 의구심이 든다고?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킨 클리닉을 운영하는 앤 차파스(Anne Chapas) 피부과 전문의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가 피부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피부는 무언가를 ‘흡수’하는 기관이 아니에요. 피부는 우리 몸을 보호하는 가장 큰 장벽입니다. 외부 자극이 체내로 흡수되지 않도록 막아내는 게 본연의 기능이죠. 때문에 더더욱 화장품을 선택하고 바를 때 효율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최적의 농도를 담은 소량을, 어떻게 피부 속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최소한 뷰티 신(Scene)에서만큼은 다다익선 대신 과유불급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