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삼진그룹 토익반', '디바'
그래픽 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의 이름에서 따 온 '벡델 테스트'는 영화가 얼마나 성평등한지를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 검사입니다. 벡델의 1985년 작품 〈눈여겨 볼 만한 레즈비언들〉의 '규칙'이라는 에피소드에선 볼 만한 영화를 고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제시되는데요. 영화가 다음의 세 조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봅니다.
1.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2. 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3. 그 대화의 주제가 남자 이외의 것인가?
여러 페미니즘 영화 비평 방법론 중에서도 벡델 테스트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간단하기 때문이지만, 그래서 한계도 분명하죠. 테스트가 처음 거론된 1980년대는 여성과 아이가 죽는 공포영화가 많이 나왔던 시대입니다. 이런 점을 차치하고라도, 보다 미세한 성차별적 내용을 거르기엔 벡델 테스트만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영화들이 아직도 태반입니다.
매년 영화계 양성평등주간 행사인 '벡델데이'를 열고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올해 '벡델 초이스 10'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벡델 테스트의 3가지 조건에 조합이 시대상 등을 반영해 추가한 4가지의 조건을 더한 '벡델 테스트 7'을 충족하는 한국 영화 10편의 목록입니다.
추가된 조건은 ▲감독·제작자·시나리오 작가·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 비중이 동등할 것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등입니다.

영화 〈69세〉
이 기준에 따라 선정된 9편의 작품은 임선애 감독의 〈69세〉, 이태겸 감독의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박지완 감독의 〈내가 죽던 날〉, 조슬예 감독의 〈디바〉, 배종대 감독의 〈빛과 철〉, 이종필 감독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미영 감독의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 이충현 감독의 〈콜〉,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콜〉
심사위원들은 "벡델데이가 제시한 새로운 기준 7가지 모두를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은 극히 드물었다"라며 "한국영화계가 여전히 시대가 요구하는 성평등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라고 통탄의 목소리를 냈어요.
하지만 성별 고정관념에 머물지 않으려는 인물과 이야기들이 독립영화뿐 아니라 상업영화 내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을 고무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벡델 초이스 10'으로 선정된 영화들, 얼마나 보셨나요? 관객들이 성평등한 영화를 찾으면 찾을 수록,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들은 늘어날 겁니다. 다음달 4일부터 개최되는 '벡델데이 2021'에서 지난해 등장한 보석 같은 성평등 영화들을 만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