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생명을 불어넣는 복원가 미셸 파르미지아니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낡고 고장난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복원가이자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장인이다. 그는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는 황금비율이 있다고 믿으며 일상에서 그 법칙을 발견하는 걸 즐긴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볼때도, 몬드리안의 작품을 감상할 때도 그리고 그 자신이 시계를 만들 때에도.

프로필 by ELLE 2010.07.02


한국에서 파르미지아니는 부가티 시계로 유명하다. 부가티 시계를 보면서 ‘어떻게 시계 무브먼트를 수직으로 세울 생각을 했을까’ 싶어 놀랐다. 어디서 디자인 모티브를 얻었나?
부가티 베이론 앞에 처음 섰을 때를 잊을 수 없다. 1001마력, 시속 400킬로미터를 자랑하는 엔진이 차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2개의 트윈터보를 수평 대향으로 놓은 모습을 보고 시계에 이 엔진의 모습을 옮겨놓고 싶었다. 수직 구조의 무브먼트는 부가티의 속도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부가티 엔진처럼 무브먼트를 그대로 노출하기 위해 케이스를 덮는 유리를 휘는 기술까지 동원했다.

부가티가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16C 가리비에를 위한 시계를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기존의 시계 개념을 바꿔버리는 무시무시한 컨셉트의 시계라고 들었다.
지난 9월 부가티 100주년 기념식에 다녀왔다. 시계와 차가 동시에 출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부가티 시계는 손목뿐 아니라 차의 대시보드에서도 볼 수 있을 거다. 손목시계를 분리하여 차 대시보드 파트에 끼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의 손목시계가 포켓시계와 탁상시계, 자동차 대시보드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시계 장인이 된 동기는 무엇인가?
난 스위스의 쿠베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스위스 시계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뉴사텔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서 자랐다. 아름다운 자연 아래에서 조용히, 평화롭게 명상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17세기부터 시계 산업이 발달한 이 마을에서 시계 장인들과 함께 자란 덕에 자연스럽게 시계 제조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아버지도 실력 있는 시계 기술자이셨다.

고작 식사 한 번 함께한 사이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은 굉장히 신중하고 차분하고 사려 깊어 보인다. 솔직히 말해 너무 진지해서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친구들이 말하는 당신의 성격은 어떤가?
당신이 말한 대로다.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집중력이 높은 편이다. 시계 장인이 되기에 최적인 성격이랄까? 하하. 그러나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시계나 미술, 음악, 건축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수다스럽다.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미술, 음악, 건축에 대해 말해보자. 시대를 초월해 당신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는 누구인가?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과 몬드리안을 특히 좋아한다. 이들은 작품에서 질서와 비율과 균형의 미를 보여준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음악은 클래식을 주로 듣는다. 뉴웨이브 음악을 들으며 정원을 가꾸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가우디의 건축에서도 균형과 비율, 질서의 미학을 발견할 때가 있다. 

당신은 황금비율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을 통틀어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황금비율의 사례가 있다면?
모든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있다. 풀 한 포기를 봐도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림이나 조각뿐 아니라 자연에도 조화로운 황금비율이 숨겨져 있다. 난 일상에서 사물 속에 숨겨져 있는 비율과 균형의 미를 발견하는 것을 즐긴다.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다 황금비율 법칙을 따른다고 확신한다.

당신이 만든 시계에도 황금비율을 발견할 수 있는 건가?
물론!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시계를 착용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파르미지아니의 러그(시계 케이스와 스트랩을 연결하는 부위)를 보라. 곡선 형태의 러그로 인해 시계가 사람의 손목에 착 감기도록 되어 있다. 러그와 러그 사이, 시계 케이스의 간격도 1:1.6:1의 비율을 따른다. 당신이 보기에 어떤가? 내가 만든 시계가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나?

그렇다. 펄싱의 러그를 보면서 천사의 날개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황금비율에 유난히 까다로울 예술가들, 다빈치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에게 시계를 하나 만들어준다면 어떤 개성과 기능을 담고 싶은가?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스켈레톤 시계를 만들어주고 싶다. 기계식 시계의 메커니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스켈레톤 시계가 그들의 창의성을 자극할 것이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그러했듯이.

신이 당신에게 지금 가지지 못한 능력 하나를 준다면?
하하, 글쎄.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이다.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삼고 있지만, 아직까지 내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은 없으니까.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시계 장인이 되고 싶은가?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가?
지금 시계 장인으로서의 삶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러나 만약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면 건축가로 살아보고 싶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황금비율이 확연히 드러나는 나만의 집을 설계해보고 싶다. 멋지지 않은가?

시계 장인 중에도 당신을 감동시킨 이가 있나?
당대는 아니지만 나를 가장 감동시킨 시계 장인을 꼽으라면 해상 시계를 만든 존 해리슨을 꼽고 싶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배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수많은 사람이 바다에서 길을 잃고 죽어갔다. 존 해리슨의 해상 시계는 경도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시계였다. 영국을 바다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시계다. 그것은 갈릴레오나 뉴턴도 못한 일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존 해리슨에 대해 알아보라. 그의 업적이 흥미로울 것이다.

창작은 늘 고통이 수반된다. 당신은 아이디어나 새로운 뉴스를 주로 어디서 어떻게 얻는가? 평소 신문이나 라디오를 자주 접하는 편인가?
내가 시계 제조에 대한 영감을 얻을 때는 주로 오래된 시계를 복원하면서다. ‘Oldies but goodies’란 것이 정말 괜한 말이 아니다. 복원하는 시계에는 처음 만들어질 때의 시대상이 담겨 있다. 당대의 트렌드가 시계 제조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시계는 음악과 미술, 천문, 조각과 회화 등이 집결된 종합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 관심의 영역도 미술이나 음악, 건축 등으로 넓혀질 수밖에 없다. 신문은 보지만 TV나 라디오를 자주 접하진 않는다. TV를 시청해도 다큐멘터리를 챙겨 보는 정도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장면을 보는 건 경이롭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당신은 시계 제조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시계 복원가로 알려져 있다. 복원한 시계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가장 기억에 남는 복원 시계는 프랑수아 듀코뮌이라는 시계 장인이 만든 플래니타리움이다. 181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계다. 태양 주변을 달과 지구가 공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시계인데, 나의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 밀라노 스포르지스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최근 파텍 필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시계를 1년에 걸쳐 복원하기도 했다.

독창적인 작업을 해오던 독립 제작자들이 기업이나 재단의 제의로 자신의 이름을 건 시계 브랜드를 론칭하는 사례들이 많다. 그러나 거대한 기업의 논리에 맞춰 시계 장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시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무너지기도 한다. 산도스 가문(스위스에서 유명한 제약 회사를 운영하며 부동산과 레저, 미술, 음악 사업을 하는 재단을 갖고 있다)의 제의를 받았을 때, 당신의 주체성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산도스 가문은 내가 독립 제작자로 있던 시절부터 나의 우수 고객이었다. 제안을 받았을 당시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독립 시계 제작자들이 파트너와 손잡을 때, 상대 측이 시계 장인과의 약속을 얼마나 잘 이행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기업이 바른 윤리를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는지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개 시계 장인들에게 시계 트렌드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트렌드에 민감해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당신은 어떤가? 요즘 시계 트렌드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요즘에는 시계 내부의 부품이나 케이스에 어떤 소재를 사용하느냐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팔라듐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많다. 플래티넘만큼 장식 효과가 확실한 소재이면서 플래티넘보다 훨씬 단단하고 가공하기 쉽다. 또 하나의 트렌드를 꼽자면 브랜드에서 보석을 사용하여 시계를 장식할 경우, 보석 브랜드 못지않게 정교한 커팅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는 거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요즘 브랜드마다 기존의 스테디셀러를 리뉴얼하여 내놓는 경향이 강하다.

트렌드를 넘어서서 이번 2010년 SIHH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시계를 혹시 준비하고 있는지? 
아직까지는 일급 기밀 사항이다. 힌트가 되는 키워드를 제시한다면, 역시 ‘부가티’다.

당신 앞에 휴대폰 혹은 컴퓨터로 시계를 보는 편리함에 익숙한 비즈니스맨이 있다고 치자. 그에게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전달한다면 당신은 그와 어떤 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갈 것인가? 남자들은 시각을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를 위해 고가의 시계를 구입한다.
일단 시계 뒷면을 그의 귀에 가까이 대어주고 시계 소리를 듣게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시계 뒷면 사파이어 글라스를 통해 드러나는 무브먼트를 보여주며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할 거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부품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내가 이 시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 말해줄 것이다.

3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당신은 여느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하지 못한 기술적 성취를 이뤄왔다. 1분에 두 바퀴씩 회전하는 투르비용 시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한 미니트 리피터 시계, 케이스와 러그의 분리를 통한 완벽한 피니싱 처리 등. 앞으로 당신이 시계 제조에서 도전해야 할 새로운 숙제가 있다면?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기술이 하나 있긴 하다. 그러나 그 기술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 기술을 성공시킨다면 가장 먼저 당신에게 메일을 보내 그 기쁨을 나누겠다. 약속한다.


모든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있다. 풀 한 포기를 봐도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나. 난 일상에서 사물 속에 숨겨져 있는 비율과 균형의 미를 발견하는 것을 즐긴다.



1 바게트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토릭 웨스트민스터 투르비용은 가격이 무려 10억원을 넘는다. 
2 부가티 베이론을 위해 만든 파르미지아니의 부가티 시계. 
3 부가티 16C 가리비에를 위해 만든 파르미지아니의 부가티 시계가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손목시계, 탁상시계, 자동차 대시보드 역할을 겸한다.



*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12월호를 참고하세요!


Credit

  • EDITOR SON JI HYE
  • PHOTOGRAPHER LEE KI 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