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r
Management

“아, 짜증 나.” 오늘 아침에도 습관처럼(속으로) 내뱉었다. 지하철에서 이어폰 없이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 이에게 1차로, 내 몸과 자꾸 맞닿는 옆자리 ‘쩍벌남’에게 2차로 받은 분노는 스마트폰만 보고 걷는 ‘스몬비’족과의 작은 접촉 사고에서 결정적 홈런을 날렸다. 대중교통뿐 아니다. 빠른 이동을 위해 몸을 실은 택시에서도 마찬가지. 운전 중 볼륨을 높이고 드라마를 보던 기사님은 설상가상 통화까지 하며 알고 싶지 않은 자신의 주말 스케줄을 공고한다. 불편하고 화가 치민다. 이런 내가 예민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에 어쩌다 이렇게 화가 많아진 걸까? 호르몬 때문인가? 고어영화를 너무 봤나? 설마 분노 조절 장애인가? 화에 중독된 듯한 자신을 보며 별의별 생각에 휩싸여 정신과 전문의 유은정 원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김없이 화가 자리합니다. 화는 마음에만 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몸 건강에도 해를 끼치죠. 우리가 잘 아는 감정 폭발뿐 아니라 조울증, 우울증, 인격장애 등 여러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여러 얼굴을 갖고 있는 화의 실체를 이해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 게 중요하죠. 특히 우리나라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문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노를 느끼는 감정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해 부적절하게 밖으로 분출돼 문제가 되는 거죠”라며 화의 원인에 대해 설명한다. 분노는 뇌 편도체와 전전두엽 사이의 소통에서 기인한다. 편도체가 느끼는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려는 전전두엽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것.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다. 물론 자신의 기준이다. 내가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생각하거나 상황이 불공평하게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뇌에는 본능적인 분노 알람이 울리게 된다. 여기서 화를 내는 것은 일종의 자기보호 기능으로 무조건 잘못된 건 아니다. 가만히 있는데 누가 와서 뺨을 때린다면 당연히 화가 나는 게 맞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가 장기적으로 누적되고 육체적으로 피로가 쌓일 경우, 성장 과정에서 정신적인 트라우마나 대인관계에서 상처가 많은 경우, 자존감이 낮고 피해의식이 있는 경우 불필요할 정도로 분노 감정이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화이며, 어디서부터가 분노 조절 장애일까.
먼저 분노 조절 장애는 진단명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분노 조절 장애의 정확한 명칭은 ‘간헐적 폭발 장애’로, 적어도 3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재물 손괴나 언어적 공격 또는 신체적 공격, 1년 동안 부상 또는 파괴를 수반하는 세 번 이상의 심각한 감정적 표출을 말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서 상황에 맞지 않게 분노를 폭발하거나 충동적인 고함, 비명을 지르는 행동은 간헐적 폭발 장애의 초기 증상에 해당한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적 있던 과거의 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방치하면 분노라는 감정에 조만간 휘둘리게 될 것 같았다. 지혜롭고 효율적으로 화를 표출해 내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먼저 스스로 감정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필요합니다. 화가 났다면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건지, 이 분노는 정당한지, 다른 사람도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분노를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거나 전체 상황의 그림을 판단하지 못하죠. ‘이건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다’는 유연한 사고를 기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의과대 명예교수 존 카바트-진(John Kabat-Zinn)이 자신의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훈련법인 ‘마음으로 건포도 맛보기’를 추천합니다. 마음속에서 건포도를 맛보고 먹는 훈련으로 내면의 공복과 포만의 단서를 연결함으로써 몸의 감각과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 챙김(Mindfullness) 방법 중 하나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객관화하고 상황을 바라보면서 수용하는 것. 이를 통해 화는 시간이 지나면 바람과 같이 날아가 버리는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라고 유은정 원장은 권고했다.
〈감정도 설계가 된다〉의 저자이자 치유 심리학자인 브렌다 쇼샤나(Brenda Shoshanna)는 분노 8단계 긴급 대처법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1. 마음속에서 화가 일어나는 것이 감지되면 즉각 모든 것을 멈춰라.
2. 그 상황을 더 큰 맥락에서 바라보라. 그리고 그 일이 결코 세상을 끝장낼 만한 일이 아님을 인식하라.
3. 당신에게도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라.
4.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당신을 언짢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5. 상대방에게 동정심을 느낄 만한 요소를 찾아라.
6. 상대방을 용서하라.
7. 화가 났던 당신을 용서하라.
8.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적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브렌다는 어떤 지점에서 분명히 마음 깊은 곳에서 화가 가라앉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 말한다. 티베트 불교에는 통렌(Tonglen)이라는 수행법이 있다. 이 수행의 절반은 다른 사람과 자신 또는 특정한 감정과 상황을 향해 빛과 사랑을 내보내는 연습이다. 나머지 절반은 호흡하며 까다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빛과 사랑을 내뿜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여기서 사라지는 것은 분노와 슬픔이다. 재료를 다듬고 요리에 집중하는 것, 오감을 이용해서 걷는 것, 목욕을 하며 피부 감각에 집중하는 것 또한 분노와 멀어지는 방법.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나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큰 틀은 일맥상통한다. 생각해 보니 한참 화를 내는, 화의 한가운데 있을 때 상황은 어려워지기만 했을 뿐 해결되지 않았다. 결코 나에게 이득은 없었다. 소란스러운 감정은 내 정신을 갉아먹기만 한다. 부질없는 것에 화내지 말고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침에 마주쳤던 분노 유발자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음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자 다짐했다. 이 시대의 진짜 어른으로서 귀감이 되며 인터뷰마다 명언으로 화제를 모은 배우 윤여정은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지혜로운 한 마디로 정리해 준다. “세상에는 많은 소리가 있어.”
간헐적 폭발 장애 자가진단 테스트
」- 일을 잘했을 경우 반드시 인정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난다.
- 본인 의도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적이 여러 번 있다.
- 타인의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꼭 마찰이 일어난다.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 화가 나면 주변의 물건을 집어 던진다.
-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한다.
-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거친 말과 함께 폭력을 쓴다.
- 내 잘못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면서 화를 낸다.
-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아 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 분노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 중요한 일을 앞두고 화가 나 그 일을 망친 적 있다.
1~3개 어느 정도 감정 조절이 가능한 상태
4~8개 감정 조절 능력이 다소 부족한 상태
9개 이상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