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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규의 밤과 소문

조병규가 들려준 밤의 고백들.

BYELLE2021.03.17
 
화이트 셔츠는 Delada. 넥타이는 Custome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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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롱 코트와 슬랙스, 화이트 셔츠는 모두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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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롱 재킷과 패턴 셔츠, 모직 팬츠는 모두 Dior Men.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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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소문〉 촬영 뒤 밀린 잠은 좀 잤나요 며칠 푹 잘 자고 있어요. 촬영 때는 저도 모르게 잠이 줄어요. 원래 잠이 많지 않은 편인데 집중하느라 그랬는지. 분명 체력이 달릴 텐데 지친 줄도 몰랐어요. 
 
몸도 정신도 확 깨어 있는 각성 상태일지도 그런가 봐요. 평소에도 4시간 이상 자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잠이 없었어요. 이 일을 하면서는 장점이 됐죠. 덜 자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버텨요. 
 
안 자고 깨어 있는 시간에는 뭘 하며 보내나요 공상해요. 새벽 4~5시에 컨디션이 제일 좋거든요. 그 무렵에 주로 어떤 영화를 찍을까, 혹은 뭔가 기획해 볼까 생각해요.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 중 드라마나 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 분이 꽤 많은데 저도 그래요. 완성된 작품을 보면 그 과정부터 그려져요. 아직 결과물 그 자체를 감상할 수 있는 내공이 없나 봐요. 제가 출연한 작품도 다시 보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도 뭔가 보고 싶을 때는 차라리 책을 봐요. 어릴 때 축구를 해서인지 성인이 되고 나선 정적인 취미가 좋아요. 동적인 취미도 찾아보는 중이긴 해요. 스킨스쿠버를 해보고 싶어요. 물 공포증이 있거든요. 이겨내고 싶어서요. 
 
중3 때 축구에서 연기로 전향하겠다며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고요. 어려서부터 자기 확신이 강한 편이었나요 가족들은 저를 돌연변이라 해요. 어릴 때부터 “무슨 어린애가 자기 할 말을 저렇게 대놓고 하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그래도 부모님은 제가 예민한 아이인 걸 잘 알아주셨어요. 연기를 시작한 뒤엔 부모님이 노파심으로 하는 말에 발목이 잡힐 적도 있었지만요. 
 
어떤 말씀요 제가 안양예고와 서울예대를 나왔어요. 안양예고 동기 80명 중에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서너 명밖에 없어요. 서울예대 동기 120명 중 절반이 다른 일을 하고요. 그중에서도 연극하는 사람, 연극을 하면서 매체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 매체 연기와 영화 출연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 영화에서 더 좋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인가 보면… 사실 엄청나게 좁은 문이죠. 이런 면에서 부모님이 자주 걱정하셨어요. 그런데 전 연기를 20년쯤 보고 시작했거든요. 그냥 오랫동안 하고 싶었어요. 주연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경이로운 소문〉을 만난 게 엄청난 사건이었겠네요 빠르게 주인공이 되는 자는 하늘이 점지해 주는 거라고 여겼으니까요. 〈경이로운 소문〉에는 정말 결연한 마음으로 임했어요. 무려 드라마 제목에 제 배역의 이름이 들어가잖아요. 조병규가 주인공이 되다니. 큰 선택을 해준 거예요. 
 
결과적으로 두 자릿수 시청률이라는 멋진 성공을 거뒀잖아요. 〈경이로운 소문〉을 마치며 어떤 부분에 가장 고무되던가요 행복했던 기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요. 배우와 스태프의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만드는 과정이 행복하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하면서 시청률은 기대하지도 않았거든요. 하지만 과정이 이토록 행복한 작품이 좋은 결과를 거두면 멋지겠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다른 현장에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최우선’이라는 논리를 대입할 수 있을 테니까. 
 
5년간 70여 개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졌어요. 20대 중반으로서는 흔치 않은 다작 배우죠. 그러느라 “노는 법을 잊은 것 같다”고 했는데 슬프게 말하면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달리면서 마음속 갈증이 해소됐어요.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여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소비되기만 하지는 않았더라고요. 일에 완전히 집중하면 오히려 총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거기서 오는 희열이 커서 지친다고 느낀 적 없어요. 아직까지는. 
 
눈물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화제가 됐어요. 그런데 그건 기술의 문제고, 다작이 본인에게 어떤 자양분이 됐나요 다양한 가치관을 체득할 기회를 얻은 것 같아요. 모든 관점을 열어두려고 노력하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고요. 
 
 전 연기를 20년쯤 보고 시작했거든요. 그냥 오랫동안 하고 싶었어요. 주연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새로운 현장에 빠르고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언제나 백지 상태로 현장에 들어가려고 해요. 이전 현장에서 얻은 잡다한 지식들은 다 지워요.
 
 〈경이로운 소문〉에 여러 악귀가 등장하잖아요. 현실에서 조병규가 딱 한 놈만 잡는다면 누굴 노려볼 건가요 저는 겁이 많아요. 하지만 오지랖도 넓어요(웃음). 그래서 지청신을 잡아볼래요. 그런 상황이라면 저도 나설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강한 사람을 잡아야 소명의식도 생기고요. 
 
평소 ‘강강약약’인 편인가요 맞아요. 그래서 동생들이 어려워요. 어른들과는 편하게 지내는데 또래이거나 나이 어린 사람들에겐 엄청 조심하게 돼요. 〈경이로운 소문〉에서 ‘한울’ 역할을 맡은 분과 동갑이고 ‘수호’는 저보다 한 살 어려요. 그 친구들에게 아직도 존칭을 해요. 유준상 형과는 가족처럼 매일 전화하며 친구인지 선배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편하게 지내는데 말이죠. 
 
현장에서 자주 막내였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요. 안 좋은 기억을 빨리 잊는 편인데, 무의식중에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생각이 거세된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눈물 흘리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 것도 그래요.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야, 울어봐’ 하면 눈물을 보여야 했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성격상 그걸 못해내는 것도 분했어요. 그래서 어린 친구들을 대할 때 더 조심스러워요. 그들은 제가 존칭을 써서 불편할지 모르지만, 상처 주는 것보다 거리를 두고 일관성 있게 대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소문이에겐 웅민이와 주연이라는, 둘도 없는 학교 친구들이 있었어요. 조병규의 ‘찐친’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학교 친구들은 별로 없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땐 ‘성격 활발한 왕따’처럼 학교를 다녔거든요. 스스로 혼자를 자처한 거죠. 연기에 목숨을 걸었고요. 휴식기에 만나는 친한 친구가 네 명 있는데 모두 연기하며 만났어요. 그중 하나가 (김)동희예요. 동희가 안양예고에 시험 보러 온 날 제가 진행 요원이었어요. 〈SKY 캐슬〉 이전부터 무척 친했어요. 저보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친구예요. 다른 친구들도 이쪽 계통이에요. 나이는 다양해요. 3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까지. 근데 제가 카드를 가장 많이 긁어요(웃음). 지금도 부모님이 제가 번 돈을 관리하시고, 용돈을 받아쓰는데 적은 용돈 안에서 뭔가 자꾸 사주고 싶어요. 
 
〈SKY 캐슬〉까지 용돈이 15만원이었죠. 지금은 얼마인가요 25만원요. 〈스토브리그〉 끝나고 5만원 올랐어요. 〈경이로운 소문〉 시작하면서 또 5만원 늘었고요. 
 
언제까지 용돈 시스템을 지속할 계획인지 지금이 좋아요. 덕분에 출연료를 차곡차곡 모아 부모님 도움 없이 독립할 수 있는 집도 마련할 수 있었어요. 21세에 독립했는데 보증금은 엄마가 빌려주시고 월세는 제가 냈어요. 보증금 1000만 원을 모았던 22세 땐 완벽하게 경제적으로 독립했어요. 부모님이 돈 관리를 잘해준 덕분이에요. 
 
고등학교 때도 안양에서 자취를 했죠. 혼자 사는 일이 잘 맞나요 자아 형성기 때 부모님의 손길을 많이 안 받고 자랐어요. 뭐든 스스로 해결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게 어색해요. 
 
다양한 독립영화에도 출연해 왔어요.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얻은 경험이었는지 대체로 그래요. 지금껏 상업영화에선 주인공을 받쳐주는 인물을 연기한 경우가 많았어요. 물론 그런 연기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내재된 내러티브를 구상해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가끔은 어떤 이야기의 중심축이 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 고민에 대한 돌파구가 독립영화이거나 예산이 적은 예술영화들이었어요. 상업영화에선 경험할 수 없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시도도 해볼 수 있었고요. 
 
〈경이로운 소문〉 이후 선보인 독립영화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도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죠 최은종 감독님도, 저도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예산이 적어 촬영을 3일 안에 끝내야 했어요. 마음 맞는 분들과 사흘간 3000만 원으로 찍었어요. 제작 시점에 그분들께 출연료를 다 못 드렸는데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왓챠’가 주는 작품상을 받아 손익분기점을 넘은 거예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개봉 지원금을 받았고, 배급사도 구했고요. 덕분에 상업영화만큼 출연료를 드릴 수 있게 됐어요. 정말 뿌듯해요. 최근에는 (유)준상 형과 새로운 시나리오를 하나 구상했어요. 내후년쯤 회사에 전국 여행 간다고 말하고 촬영 다녀오려고요. 
 
20년 보고 시작한 연기, 이쯤 해보니 어때요 지금 굉장히 행복하고요. 저는 깡, 눈치, 겁, 이 세 가지로 살아남은 것 같은데 힘들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니 이번 생에는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다음 생이 있다면 안 할 거예요. 그땐 재벌가 막내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길 빌어주세요(웃음).  
 
화이트와 버건디 컬러의 더블 니트는 Issey Miyake Homme Plissé. 블랙 버클 슬랙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체인 브레이슬렛은 Hyères Lor.

화이트와 버건디 컬러의 더블 니트는 Issey Miyake Homme Plissé. 블랙 버클 슬랙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체인 브레이슬렛은 Hyères Lor.

 화이트 셔츠는 Delada. 넥타이는 Customellow. 버건디 컬러의 팬츠는 Raw Image.

화이트 셔츠는 Delada. 넥타이는 Customellow. 버건디 컬러의 팬츠는 Raw Image.

체크 패턴 재킷은 Vivienne Westwood. 오렌지 컬러의 터틀넥 스웨터는 Wooyoungmi.

체크 패턴 재킷은 Vivienne Westwood. 오렌지 컬러의 터틀넥 스웨터는 Wooyoungmi.

그레이 롱 코트와 슬랙스, 화이트 셔츠는 모두 Prada.

그레이 롱 코트와 슬랙스, 화이트 셔츠는 모두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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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김영준
  • 에디터 이경진
  • 스타일리스트 박지영
  •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지영
  • 디자인 이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