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에 바치는 송가_인싸 전시 #22

디스토피아, 데카당스, 오컬트가 뒤섞인 환상동화. 헤르난 바스의 그림 속으로 떠나는 상상의 모험.

BY김초혜2021.03.05
11_Hernan Bas_Four Bathers by a River_Acrylic on Linen_182.9x213.4x3.2cm_2017

11_Hernan Bas_Four Bathers by a River_Acrylic on Linen_182.9x213.4x3.2cm_2017

20대 중반부터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청되고 루벨 패밀리 컬렉션에 소장되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한 화가 헤르난 바스. 5미터 가까이 되는 그의 거대한 그림들은 저마다 독특한 스토리를 품고 있으며 작가가 나고 자란 마이애미와 북부 플로리다의 문화적 배경을 공통점으로 한다. 작가에 따르면 그곳은 문화적 DNA에 UFO, 유령, 괴물, 외계인, 오컬트까지 끌어안는 괴짜 같은 믿음이 자리한 동네다. 때문에 〈기묘한 이야기〉 류의 공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헤르난 바스의 그림 앞에서 몇십 분이고 뭉게뭉게 떠오르는 갖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거다.
01_Hernan Bas_The Young Man _ the Sea_Acrylic on Linen_213.4x182.9cm_2020

01_Hernan Bas_The Young Man _ the Sea_Acrylic on Linen_213.4x182.9cm_2020

 
고전문학, 신화, 불가사의한 이야기, 기네스 기록 등 계통 없는 갖가지 소재를 엮어 자신만의 내러티브로 화면을 구성하는 헤르난 바스는 이번 전시에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들을 표제작으로 선보인다. 소설 속에서 애써 잡은 청새치를 잃고 돌아온 노인을 위로하던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해 〈젊은이와 바다(The Young Man the Sea)〉에 등장한다. 그는 마놀린(Manolin)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배에 혼자 바다에 나가 잡은 거대한 물고기와 함께 실려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몇십 년 전 나의 부모님이 쿠바에서 미국에 오기 위해 항해한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그저 플로리다와 쿠바라는 그 자체가 나만의 신화라고도 할 수 있다.”
09_Hernan Bas_Three_s a Crowd_Acrylic on Linen_76.2x55.9x3.2cm_2019

09_Hernan Bas_Three_s a Crowd_Acrylic on Linen_76.2x55.9x3.2cm_2019

 
마이애미에서 나고 자랐으며 성소수자인 헤르난 바스의 정체성 또한 그의 그림에 투영된다. 등장인물의 구도나 색감이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데이비드 호크니를 떠올리게 하는 〈강가에서 목욕하는 네 명의 남자들(Four Bathers by a River)〉이나 주요 인물의 나르시시즘적인 애티튜드가 인상적인 〈세명은 군중(There’s a Crowd)〉이 대표적이다. 플로리다에서 서식하며 수컷끼리 커플을 맺기도 해 퀴어 축제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핑크색 플라밍고가 종종 화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핑크 플라스틱 미끼(Pink Plastic Lures)〉에서 헤르난 바스는 버려진 듯한 낡은 캐딜락 자동차,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반항적인 눈빛의 남자, 플라밍고 인형이 가득 담긴 박스와 동족인 줄 알고 다가가다 그물에 발이 걸린 진짜 플라밍고가 모여 있는 어느 집 뒤뜰 정원을 그림으로써 허상뿐인 아메리칸드림을 묘사했다.
 
12_Hernan Bas_Pink Plastic Lures_Acrylic on Linen_303.5x504.8x5.1cm_2016

12_Hernan Bas_Pink Plastic Lures_Acrylic on Linen_303.5x504.8x5.1cm_2016

헤르난 바스의 주요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모험, 나의 선택(Choose Your Own Adventure)〉. 1980~1990년대에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 아동용 시리즈물의 제목을 빌려왔다. “당신이 이야기의 주인공! 40가지 결말을 직접 선택하세요.”라는 광고 문구처럼 이 책은 독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되는 독특한 구조다. 소년 시절 좋아했던 책의 제목을 전시 타이틀로 삼으면서 작가는 “나는 언제나 스스로 모험을 선택하는 책 속에 있는 모습으로 내 인물들을 상상했다.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이야기가 흐르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UFO나 네스호의 괴물 같은 주제로 구글링 하면서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는 전시를 본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그림에서 접한 기묘한 이야기들을 검색해 자신만의 모험으로 이어 나가길 바란다.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는 것이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게 하는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