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해서웨이, 진짜 여배우가 되다

아네트 베닝으로 남을 것이냐, 줄리앤 무어가 될 것이냐. 앤 해서웨이는 기로에 있었다. 백조 같은 미모, 품행 방정한 ‘굿 걸’은 광고 모델로서는 잘 팔리지만 배우로는 정체될 수도 있으니.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웬걸, 뻣뻣하고 재미 없을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여자, 혼돈과 변화를 성장으로 받아들이는 여자, 술도 좀 마실 줄 아는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앤 해서웨이는 한마디로 ‘맘에 드는’ 여자였다.

프로필 by ELLE 2011.02.01


“So don't tell me to shut my eyes.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행여나 펍 안의 다른 손님들이 들을까 싶어 프라이빗 룸의 문을 꼭꼭 닫았다. 매니저와 에이전트도 없이 운전기사만 데리고 스튜디오에 나타난 여자(그녀는 운전기사에 대해 이런 농담을 던졌다. “내가 자기를 죽이려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면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확인하고 있다니까요!”), “안녕하세요, 애니(Annie)에요!”라고 외치며 두 뺨에 키스를 날리는 여자, 촬영 중 레드 와인을 한 잔 청하는 여자, 그리고 지금 펍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르고 있는 여자. 이 말만한 처녀는 앤 해서웨이다.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그 앤 해서웨이가 이랬던가 싶었다. 갸우뚱거리면서 바라보는데 그녀가 이내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다. 날씨와 휴일 얘기에서 시작된 대화는 곧 철학과 과학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18세기 과학자들과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요즘 읽고 있는 책 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앤 해서웨이는 와인을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리고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말하고 혼자 웃었다. “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나한테만 관심이 있었어요. 잘못이죠. 반성해요. 원래 나 자신에 대해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좀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끙끙 앓기도 했지만(앤은 우울하고 불안정한 10대를 보내기도 했다) 이제는 뭐, 그냥 잘 지내려고 노력 중이에요.” 어떤 일들이 이 생기 넘치는 여자를 괴롭게 했을까? 남자? 외모? 일? 몇 가지 단서를 스타카토로 던졌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렇게 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는지 괴로웠어요.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고민도 하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누굴까’ ‘사랑은 대체 뭘까’ 등등. 겉에서 보는 내 삶은 아름답겠죠. 하지만 내 안은 카오스예요. 질문이 끝없이 샘솟고요. 잘 풀리는 때가 있으면 꼬이는 때도 있고 그렇잖아요. 이제 스물여덟 살이 됐어요.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날들이 있겠죠.”

앤 해서웨이가 말했듯이 ‘겉에서 보는’ 그녀의 삶은 평탄하기만 했다. 변호사 아버지와 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녀. 다섯 명의 가족은 별 탈 없이 오순도순 브루클린에 모여 살았고, 그녀는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다. 방과 후에는 뉴저지에 있는 ‘페이퍼 밀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34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극장이자 뉴욕의 배우와 제작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무대에 올랐으니 눈에 띌 기회도 많았을 터. 할로겐 등처럼 흰 빛을 발하는 피부에 빼쪽한 얼굴, 휘둥그런 눈을 가진 열일곱 살의 소녀는 FOX의 드라마 을 통해 데뷔했다. 2년 후 <프린세스 다이어리>가 개봉했고 이때부터 그녀는 할리우드 톱 스타 자리를 향해 올라갔다. 역시 앤 해서웨이 식으로, 모범생 스타일로, 한 계단씩 차근차근. 그녀는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얄밉게도 잘 유지했다. 그렇게 스물여덟 살의 여배우의 필모그래피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브로크백 마운틴> <레이첼, 결혼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얕지 않으면서도 너른 스펙트럼이 생겨났다. 얼마 전엔 제이크 질렌할과 함께한 영화 <러브&드럭스>가 개봉했다. 여기서 앤 해서웨이는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예술가 ‘매기’를 연기했다. 그리고 매기는 ‘칠렐레 팔렐레’ 놀러 다니는 제약회사 세일즈맨 ‘제이미’와 사랑에 빠진다. “매기는 아주 직설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주 대담한 여자예요. 난 그렇지 못한 성격이에요. 게다가 파킨슨병 환자를 표현해야 하잖아요. 나에게 이 역은 도전이었죠. 미디어의 호들갑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에요.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노출 연기도 만만치 않았죠.”

턱시도 재킷은 Stella McCartney, 스터드 장식의 레더 하이힐은 Christian Louboutin.



맞다. ‘앤 해서웨이 누드’는 최근 검색어 상위권에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부르더라고요.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죠. 침만 꼴깍꼴깍 삼키는데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어요. “그래, 이번에 <러브&드럭스>에서…” 얼른 대답했죠. “네네네.” “노출이 얼마나 있는 거야? 베드 신은 얼마나 있고?” 그냥 질러버렸어요. “엄마, 많아요. 아주 많아요.” 앤 해서웨이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누드 신에 대한 상세 조약’을 포기했다. 보통 여배우들은 어느 부위가 얼마만큼 노출될 것인가까지 계약서에 적는다. “그렇게 촬영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몸을 36°만 돌리면 계약 위배다 이런 식인 거잖아요.” 영화에서 매기는 자기 몸에 굉장히 자신 있는 듯 보인다. 실제로도 그럴까? “살이 좀 붙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항상 빼빼 마를 수 있겠어요. 그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즐거운 것도 아니잖아요.”

에이, 겸손한 말씀이지만 아무리 봐도 그녀 몸에 군살은 없었다. 여름 내내 런던에서 촬영하면서 햇볕을 받아 피부는 한결 건강해 보였고, 와이드 스크린을 꽉 채우고도 남는 이목구비(어쩜, 저 작은 얼굴에 눈 코 입이 다 들어가 있는지 신기하다!)는 한층 더 도드라져 보였다. “외모 덕을 본 건 사실이에요. 외모에 한창 신경 쓰던 때도 있고요.” 더구나 앤 해서웨이는 ‘여배우가 나이 먹는 건 곧 불법’이라는 할리우드 여배우다. “보톡스 맞으라는 말을 몇 살 때 처음 들었는지 알아요? 스물세 살!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스물다섯 살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매일매일 눈가를 자세히 관찰했어요. ‘처진다, 처진다, 처지고 있어!’ 이러면서요.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어요. 그게 주름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냥 웃을 때 생기는 선이에요. 어릴 때부터 그 선은 그 자리에 똑같이 있었다고요.”

눈밑 주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앤 해서웨이는 보톡스 클리닉을 예약하는 대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좀 더 보살피고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헤어와 메이크업 스태프는 나보다 30분 먼저 와서 준비하죠. 운전기사는 나를 데리러 오기 위해 1시간 30분 일찍 일어나야 하고요. 나는 특별한 기회들을 받아왔어요. 그래서 어떤 것에도 불평하지 않을 거예요. 계속 매체에 얼굴이 등장하는 수고 쯤은 감수해야죠. 만사 제치고 달려와 나를 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데요.”

배우 애덤 셜먼(Adam Shulman) 역시 그녀를 위해주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애덤은 뉴욕 토박이로 브라운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 무대와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동 중인 배우. 애덤과 앤은 지금 한창 사랑에 빠져 있다. 그는 그녀가 촬영으로 집을 비우는 동안 그녀의 애완견을 맡아 길러준다. “어제 강아지 사진을 보내주더라고요. 내가 앙칼지게 소리쳤죠. 뭐야, 행복해 보이지 않잖아! 눈에 행복이라고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아! 집으로 당장 가야겠어! 하하. 나는 그 사람 덕에 행복해요. 그 역시 그러면 좋겠어요.” 공공연히 파파라치에 찍힌 사진들이 있는데 모르쇠로 일관해도 별로지만 사적인 관계를 너무 입에 올리는 여배우도 매력 없다. 앤 해서웨이는 적당한 선에서 입을 다물었다. 상냥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더 물어봐도 돼요. 그러면 사람이 이런 주제에 대해 얼마나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지 알게 될 걸요? 하하.”

실크 점프수트는
Donna Karan.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2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EDITOR 김보미
  • WORD ALICE WIGNALL
  • PHOTO DAVID SL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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