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프 디테일이 들어간 원 숄더 점프수트는 Moschino.

숄처럼 연출한 크림 컬러의 스웨터는 Lemaire. 블랙 시스루 톱은 Helmut Lang by Yoox.com. 이너 웨어로 레이어드한 뷔스티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크림 컬러의 스웨터는 Lemaire.
홍차영을 연기할 때 꼭 필요한 제스처나 눈빛, 말투가 있다면 독특한 리듬이 있어요. 그게 음계로 느껴질 때도 있고요. 촬영장에 출근하면 초반엔 살짝 쑥스럽다가 조금 지나면 텐션이 확 바뀌어 있어요. 홍차영은 ‘똘끼’와 독기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평소의 나와 달라서 이 사람의 리듬이 몸에 배는 게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긍정적인 영향인 걸요 맞아요. 요즘 촬영장에서 캐릭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쓸쓸하지 않아요. 촬영장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시원시원하시고 멋있어요. 배우들은 촬영 후 집에 돌아온 뒤에 자기 불확신을 갖게 될 때가 있거든요. ‘잘했던 걸까?’ 하는 거죠. 그런데 〈빈센조〉 촬영장은 다녀오면 많은 부분에 느낌표가 생겨요.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는 현장이에요.
상대역인 송중기와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죠 홍차영이라는 캐릭터는 상대방을 계속 툭툭 건드리거든요. 초면인 선배님에게 그렇게 하려니 무안했어요. 그럴 때마다 “더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밥을 엄청 사줘요. ‘밥 잘 사주는 좋은 중기 오빠’입니다(웃음).
〈빈센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배우는 오늘도〉와 〈멜로가 체질〉도 떠오르네요. 코믹한 코드를 지닌 배역을 연기할 때 느끼는 즐거움은 평소에 쓰지 않는 호흡을 사용하는 게 재미있어요. 또 어릴 때부터 개그 욕심이 있었어요. 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 유머러스한 친구들을 좋아하고 부러워했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웃길 수 있어?’ 하고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다니까요.
오랜 개그 욕심을 지금껏 어디에 풀어왔나요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요. 가족과 10년 지기 친구들 정도(웃음). 그런데 〈여배우는 오늘도〉가 나에겐 아주 중요한 기억 중 하나예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문소리 선배님을 뵈었고, 함께 작업까지 했으니까. 현장에서는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우스꽝스럽게 보여도 상관없었고요. 그냥 그 인물이기만 하면 됐어요. 그랬더니 자유로워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캐릭터를 만나는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아요.
감독 문소리가 어떻게 현장을 꾸려가는지 궁금하네요 약한 사람에게 약한 분이었어요. 그 현장에선 내가 약한 사람이었죠.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모든 걸 해볼 수 있게 힘을 줬죠. 선배님이 배우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감독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계속 공부하고 나아가는 모습은 저에게 귀감이 돼요.
〈멜로가 체질〉에서 연기한 이은정도 ‘강강약약’,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죠. 평소 그런 ‘사이다’ 같은 면이 본인에게도 있나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려고 하지만 크면서 방식을 많이 바꿨어요. 청소년기에는 솔직한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솔직히 말했거든요. 점차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여대를 다녔는데, 너무 착한 친구들과 친해졌어요. 인내심이 많은 애들이라 세월을 함께하면서 반성한 것이 많았죠.
대학 시절에는 연기 전공을 하면서 다른 과 전공 수업을 청강했다고요 청강은 부담이 없잖아요. 교수님에게 허락을 구하고 출석 체크만 잘하면 되죠. 열려 있는 배움의 기회를 붙잡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어요. 청강하느라 바빠서 동기들과 점심을 못 먹을 때도 많았어요. 시간표가 다르니까. 얕고 넓게, 새로 아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무용과, 실용음악과, 회화과 수업 등 청강한 수업을 보니 예술적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네요 오글거리지만 그때는 훌륭한 종합예술인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다양한 예술에 대한 이해 능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중에 알바를 하나 더 할지, 수업 하나 더 들을지 그런 걸 늘 고민했던 것 같아요.
스물한 살에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한 후, 서른까지만 해보고 잘되지 않으면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기한을 정했다죠. 왜 서른이었나요 실은 다른 게 아니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 경영할 능력을 갖춰야 했거든요. 어머니가 혼자서, 저희 3남매를 키우셨어요. 그래서 서른을 데드라인으로 삼았던 거예요. 30세가 되도록 이 일로 밥벌이를 못하면 그만두겠다고.
그만둔 다음엔 뭘 할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아뇨. 그래서 더 괴로웠어요. 하지만 그 시절의 엄청난 불안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아예 막다른 골목에 갇히니 눈앞의 벽을 무조건 관통하는 수밖에 없었죠. 물론 정말 다 내려놓고 나면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그래도 당시 행운처럼 느껴진 작은 기회들이 있었을까요 물론이죠. 그런 걸 하나씩 잡았기에 버틸 수 있었어요. 단편영화를 찍거나, 연극 무대의 스태프로 일하고, 스태프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던 것. 그런 게 내 숨통을 트여주었어요. 사랑하는 가족과 몇 명 되지 않는 오래된 친구들도요. 가난하고 못난 모습을 마음껏 보여도 괜찮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게 엄청 힘이 됐죠.
그 후 단순히 관객 수와 시청률로만 따질 수 없는, 의미와 힘을 지닌 작품에 이름을 올렸어요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죄 많은 소녀〉를 만나기 전과 후의 저는 완전히 다른 속성을 품게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저에게 큰 작품이었어요. 김의석 감독님이 치열하고 진실된 사람이라 더욱 그랬겠죠. 창작자가 작품을 다루는 태도와 인물을 만나는 시선을 배웠어요. 엄청난 행운이죠.
한편 노희경 작가를 좋아해서 〈라이브〉에 출연했을 땐 ‘성덕’이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죠 〈멜로가 체질〉에서 천우희 언니와 만난 것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어요. 정말 좋아했거든요. 〈한공주〉와 〈써니〉를 보고 푹 빠졌어요. 관심이 생기고 나서는 출연작을 다 봤어요. 생방송으로 시청한 시상식에서 우희 언니가 상 받을 땐 같이 울었어요. ‘저 배우 내가 진짜 열심히 응원할 거야!’ 하면서.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이라면요 지금 못나고 부족해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게 나의 씩씩함이고 최대 무기예요. 늘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보듬어줘야 희망이 생기잖아요.
엄청 값진 무기인데. 천성일까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너무 열심히 사셔서 알게 모르게 배운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은 아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계속 노력하며 살아요. 물론 아주 어릴 땐 다른 사람들이 가진 화려한 것만 가치 있어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곧잘 “기본도 못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니. 기본부터 잘해라” 하셨거든요. 다들 꿈을 크게 가지라는데 엄마는 기본이나 잘하라니 어릴 땐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확 깨달은 거예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에서 똑바로 해야겠구나. 작은 일에도 스스로 용기를 얻는 법을 알게 됐죠.
에너지가 필요할 때 본인에게 내리는 처방은 산책. 단순한 성격이라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스르르 마음이 풀리고 힘이 날 때도 있어요.
일상에서 연기 외에 몰두하는 순간이 있다면 이건 정말 의외의 답변일 텐데! 설거지요. 설거지할 때 마음의 평온을 얻어요.
요즘 배우들은 본인의 취미나 관심사로 콘텐츠를 만들어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마 내 콘텐츠는 너무 재미없어서 다들 보지 않을 거예요. 산책하기, 영화 보기, 책 읽기. 그런 게 전부거든요.
‘전여빈과 산책하기’ 채널,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전여빈과 ‘말없이’ 산책하기가 될 거예요. 역시 안 되겠죠. 그런 채널은(웃음)….

퍼프 디테일이 들어간 원 숄더 점프수트는 Moschino.

테일러드 재킷은 Off-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