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에서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갈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집 안을 뒤집어엎게 만들었고, 당연히 화장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등장한 신조어가 바로 ‘스킵케어(Skip-Care)’. 2019년 8월 글로벌 소비 트렌드 조사기관인 영국 민텔(Mintel)이 발표한 리서치에 따르면 28%의 영국 여성들이 스킨케어 단계를 줄이고 있고, 특히 20~29세의 밀레니얼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동시에 ‘피부 단식(Skin Fasting)’이라는 개념도 유행했다. 코코 하야시(Koko Hayashi)가 일본식 피부관리 기법에서 힌트를 얻어 설립한 미국의 스킨케어 브랜드 미라이 클리니컬(Mirai Clinical)에서 처음 소개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스킨케어 제품을 일정 기간 확 줄이면 오히려 피부가 자연스럽게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 스스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움직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더욱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마스크 착용이 생활화되면서 메이크업에 대한 니즈는 줄어들었고, 스킨케어에서도 시쳇말로 ‘뭣이 중헌디’를 따지게 된 것. 브랜드나 가격, 내가 이 브랜드 제품을 쓰면 타인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볼지 등을 따지던 과거와 달리 성분은 물론, 함량까지 꼼꼼하게 따져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단지 피부를 더 ‘젊게’ ‘밝게’ 만들어줄 수 있는 기능성 성분이냐 아니냐를 떠나 이 성분이 얼마나 ‘순한지’까지 체크하는 것 역시 코로나19 이후에 더욱 두드러진 특징. 소비자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양의 화장품을 생산하고, 또 그 제품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함에 따라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역시 커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피부가 그렇게 많은 제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미시적인 시각으로 보나, 지구가 엄청난 쓰레기와 부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나, 스킨케어가 미니멀해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스킵케어’ ‘피부 단식’에 이어 ‘스킨’과 ‘미니멀리즘’을 합친 ‘스키니멀리즘(Skinimalism)’이라는 또 하나의 챕터가 열린 것이다.
“스키니멀리즘의 기본은 단계든 제품이든 ‘줄인다’는 데 있습니다.” 인도 피부과 전문의 자무나 파이(Jamuna Pai) 박사는 이같이 말하며 피부의 기본적인 기능이 ‘방어벽, 보호벽’임을 강조한다. 너무 많은 제품, 그 제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성분이 피부에 흡수됐을 때 방어벽 기능에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 국내 피부과 전문의들 역시 이에 동의한다. 사용하는 제품이 많아질수록 피부가 받아들여야 하는 성분의 개수와 종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피부에 자극을 주는 화학 성분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무나 박사는 멀티 기능을 하는 최소한의 제품만 사용하거나, 일명 CTM 루틴을 따르라고 제안한다. CTM은 클렌징, 토닝, 모이스처라이징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피부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3단계 스킨케어를 의미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순한 클렌저를 사용하세요. 토너로 피부를 정리한 뒤 보습 크림 하나만 발라도 충분합니다. 피부 고민에 대응할 기능성 성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비타민 C 세럼 하나만 추가하세요.”
그렇다고 무조건 화장품 개수를 줄이고 비타민 C 세럼을 바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명한 스키니멀리스트(Skinimalist)가 되기 위해서는 화장품 성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할 터. 화장품을 구성하는 성분을 살펴보면 대부분 물(정제수)과 오일, 물과 오일이 섞이게 하는 유화제, 여기에 안티에이징이나 화이트닝 인증을 받은 기능성 성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존재하고, 경쟁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내세우지만 화장품의 대부분을 이루는 건 결국 물과 오일, 유화제. 또한 현재 국내에 등록된 화장품 브랜드만 해도 수만 개라지만, 따지고 보면 화장품 제조업체의 개수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 그러다 보니 제품마다 들어가는 성분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스스로 피부 상태를 진단해 이성적으로 스킨케어 단계를 줄여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피부가 건조하다는 이유로 지금껏 토너, 보습 에센스, 보습 앰풀, 로션, 크림 등을 사용해 왔다면 로션을 생략하고 크림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로션은 크림과 비교했을 때 보습 성분은 동일하나 다만 오일 함량이 적어 점도와 밀폐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제품이기 때문. 에센스와 앰풀 역시 같은 원리로 둘 중 하나를 취사 선택할 수 있다.
결국 화장품을 고를 때 그럴싸하게 보이는 제품명 말고 오로지 기능과 성분, 텍스처를 보고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뜻. 세럼과 에센스, 앰풀은 이름만 다를 뿐 핵심 성분만 놓고 봤을 땐 큰 차이가 없고 제형 농도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세 가지 제품을 다 바르는 대신 하나만 사용해도 무방하다. 단, 바를 땐 수분을 공급하는 워터 제형과 그 위에 보습막을 형성하는 오일 성분의 크림 제형이 순차적으로 레이어드됐을 때 최상의 피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기억하길.
아무리 인삼이 몸에 좋다 한들 내가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면 무용지물. 피부도 마찬가지다. 남이 무엇을 쓰느냐가 내 판단을 좌지우지하거나 많은 단계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답이 아니라, 피부 고민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성분을 꼼꼼히 체크하고 정확하게 파악해 불필요한 스킨케어 단계를 과감히 줄여나가는 것이야말로 스키니멀리즘을 실현하는 첫 단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