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하면 으레 백설탕을 떠올린다. 햇빛에 반짝이는 백설탕의 흰 결정은 단맛으로 옹골찼다. 우리가 백설탕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맛을 보충한다는 소기의 목적에 부합하며, 음식의 색이나 향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탕은 사탕수수, 사탕무, 야자나무, 설탕초 등 다양한 식물에서 채취하며, 이들이 서식하는 지역에 따라 풍미가 확확 다르다. 재료별·지역별로 설탕이 지닌 개성을 모른 채 평생 대자본이 제시하는 획일화된 설탕 맛만 보고 산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정제 과정을 최소화한 비정제 설탕은 당분과 함께 다양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함유한다. 사실 당밀 그 자체인 몰라시스가 아닌 이상 그 속에 든 영양분은 무의미할 정도로 적지만, 그로 인해 복잡다단한 풍미를 낸다. 어떨 때는 그 풍미가 무척 복합적이어서 복잡하게 소스를 만드는 수고를 획기적으로 덜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기분과 용도에 따라 설탕을 골라 쓰는 새로운 재미에 눈뜰 수 있다. 또 최근에는 설탕처럼 달고 새하얗지만 칼로리가 0에 가까운 천연 감미료들이 설탕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주로 남미에서 서식하는 식물로, 잎에서 단맛이 나 예부터 감미료로 널리 활용된 스테비아. 사실 전 세계에 단맛을 내는 식물은 많다. 그중에서도 스테비아가 ‘설탕초’라고 불리며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당도가 설탕의 150배에 가까우면서도 체내에 흡수되지 않아 칼로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도가 너무 높다 보니 쓴맛이 난다는 사실. 그리하여 스테비아에 과일의 포도당을 자연 발효한 천연 당 알코올인 에리스리톨을 섞어 당도와 쓴맛을 조절한다. 당 알코올 특유의 ‘화’한 기운이 있지만 커피나 양념에 섞으면 향이 무색해진다. 오히려 ‘쨍’한 단맛이 간장 등의 양념과 섞이면 즉석에서 신선한 잎채소를 무쳐 먹고 싶을 정도다. 가격대가 다소 높지만 당도가 높아(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설탕의 2배 정도) 사용량을 반으로 줄일 수 있으니 경쟁력 있다. 무엇보다 칼로리가 없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 소량 첨가하면 여름 김치 특유의 가볍고 시원한 단맛을 끌어낼 수 있을 듯하다.
야자수의 꽃이나 줄기에서 나오는 수액을 모아 만든 설탕. 흔히 아는 사탕수수가 아닌 야자나무, 그것도 경우에 따라 꽃의 수액을 받아 완성한 설탕이라니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팜슈거는 수액을 추출하는 나무 수종에 따라 구분되는데, 그중 팔미라 팜슈거는 팔미라야자나무의 꽃에서 추출한 수액으로 만든 설탕을 뜻한다. 이때 팔미라야자나무는 수령이 15년 이상 돼야 하며, 사람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손으로 일일이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을 덜 해친다. 물론 그만큼 사람이 고생스럽겠지만. 팔미라 팜슈거를 그냥 섭취하면 풍미가 설탕에 기대하는 선에서 한참 벗어나, 과연 실생활에서 설탕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팜슈거를 간장에 섞는 순간 당신은 ‘유레카’를 외칠 것이다. 팜슈거를 간장에 섞는 행위만으로 데리야키 소스가 완성된다. 팜슈거가 지닌 감칠맛, 고소한 맛, 새콤한 맛 등이 한데 뒤엉키는 동시에 정제 과정을 최소로 거쳐 결정화가 덜 일어난 덕에 절로 점성이 생긴다. ‘단짠’의 밸런스를 맞추는 동시에 점성을 만들기 위해 대파, 양파, 사과, 파인애플, 맛술 등의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 서 있는 수고를 한 방에 덜어준다.
비정제 설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머스코바도’는 익히 알 터. 머스코바도는 주로 사탕수수에서 불순물만 걸러내 당밀을 일정 부분 함유한 상태를 말한다. 한편 ‘몰라시스(Molasses)’는 영어 이름 그대로 당밀 그 자체다. 그렇다면 당밀은 무엇일까. 사탕수수나무를 설탕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남게 되는, 더 이상 결정화되지 않는 부산물을 뜻한다. 갈색의 끈적하고 밀도 높은 이 당밀에는 자당 외에 사탕수수나무에 있는 다양한 영양소가 포함돼 있다. 특히 칼륨과 마그네슘, 칼슘, 인, 나트륨 등의 미네랄이 많다. 설탕에서 다양한 영양소와 그로 인한 다채로운 풍미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몰라시스는 ‘끝판왕’ 같은 존재다. 당밀은 대체로 사탕수수즙을 끓인 시럽 상태로 유통되며, 가끔 가루로 만든 것이 있으나 수분을 머금어 축축하다. 몰라시스는 진저 브레드처럼 향이 강하고 질감이 부드러운 과자를 만들 때 요긴하지만, 요리용으로는 활용도가 낮아 보인다. 나트륨이 많은 탓인지 다른 양념과 버무리면 단맛보다 짠맛이 두드러지기 때문. 오히려 몰라시스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 낫다. 몰라시스 한 술을 입에 머금으면 짭짤하고 달큰하면서 새콤한 동시에 건자두나 건포도처럼 햇볕에 말린 과일 특유의 풍미가 입 안 가득 넘실거린다. 당 떨어질 때마다 간식 대신 한 꼬집씩 먹기 좋지만, 무엇보다 위스키 안주로 제격이다.
헤세드 팜슈거. 캄보디아 현지에서 15년 이상 자란 팔미라야자나무의 꽃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채취해 전용 스토브로 수분을 제거한 제품. 비타민과 무기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
썬앤지 몰라시스. 국토의 80% 이상이 사탕수수 밭인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제조한 당밀. 수분을 가득 머금은 가루 형태로 조리용보다 간식처럼 섭취했을 때 더 매력적이다.
바이오믹스 설탕 대신 스테비아. 에리스리톨을 97.9%, 스테비아를 2.1%의 비율로 섞어 만든 천연 감미료. 칼로리가 없으며, 당도는 설탕의 2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