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 니트와 스웨이드 벨트, 레드 플리츠스커트는 모두 Zara.
낯선 세계로의 침투
」새로운 웹드라마 〈트웬티트웬티〉 촬영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20부작이었던 〈에이틴〉 때보다 긴 여정이 될 듯하다. TV로도 방영될 예정이라 책임감이 더욱 막중하다. 난생처음 시청률이란 걸 신경 쓰게 됐다. 〈에이틴〉을 좋아해준 10대 팬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연을 조금 넓혀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스럽기도 하다.
주로 1525 세대인 웹드라마 시청층이 지금보다 넓어질 수 있을까 아직은 시청층 확장에 대한 고민보다는 웹드라마 자체의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하지만 시청층은 지금보다 분명 넓어질 것이다. 휴대폰 사용하기를 귀찮아하던 우리 부모님 세대도 이젠 자기 직전까지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지 않나.
웹드라마 연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영상 디자인을 전공했다. 틈틈이 대학 농구 경기를 즐겨 보러 다니다가 아예 대학농구 TV 페이스북 페이지를 오픈하게 됐다. 심지어 네이버 농구 채널에서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올 정도로 꽤 잘됐다. 주로 인터뷰 영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짧고 빠른 호흡의 웹 콘텐츠가 나랑 잘 맞았다. 그래서 웹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다. 단순 연출보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걸 좋아해서 2016년부터는 쭉 웹드라마를 찍고 있다.
〈에이틴〉 시즌 1·2의 누적 조회수는 5억 뷰에 이른다. 제작한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드나 열광적인 반응이 감사하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다. 반 사전 제작으로 이뤄졌는데, 촬영과 편집을 병행하는 것도 어려웠고 직접 다 할 수도 없어서 편집 기사분과 호흡을 맞춰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촬영이나 편집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미완성인 느낌이라 아직도 시즌 1의 1·2화를 못 본다. 공개 당시 악플도 많이 받았다. 2화 업로드를 앞두고 ‘올리지 말까’란 생각까지 했다.
정극과 웹드라마의 스태프 구성은 비슷한가 정극에서는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웹드라마는 아무래도 트렌드에 민감하다 보니 젊고, 다양한 취미나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 팀이 꾸려진다. 우리 연출 팀만 해도 대학생, 아이돌 덕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감독의 역할에도 차이가 있다.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OST 제작과 캐릭터 사업 등 마케팅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숫자 제목인 ‘20-20’를 활용해 로고 디자인 사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이런 이야기들이 종영 이후가 아닌 작품 기획 단계에서 같이 나온다.
기존의 TV 드라마에서는 시나리오와 캐스팅이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에 비해 웹드라마에서는 패션, 헤어스타일, 캐릭터의 SNS 말투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아졌다고 느낀다.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조사할 것도, 회의할 것도 정말 많다. 랩 하는 신을 연출하기 위해 고등학생이 나온 힙합 프로그램을 다 찾아보고, 게임하는 장면이 필요하면 10대가 즐겨 하는 게임을 일일이 다 해본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도 많이 타고(웃음), 청소년들이 올린 게시물과 거기에 달린 댓글을 관찰하며 그들의 일상 말투와 소통 방식을 익힌다. 직접 취재를 나가기도 하지만 ‘진짜 10대’를 만날 수 있는 건 주로 온라인에서다. 이런 조사 과정이 힘에 부치더라도 그만큼 파급력이 있을 거란 생각만 하면 설렌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10대의 공감을 살 수 있었나 보다 〈에이틴〉이 잘된 건 단순히 디테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작 단계에서 ‘과연 내가 열 살이나 차이 나는 친구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당연히 있었다. 그러다 우리 땐 문자를 하고 이들은 SNS를 할 뿐, 느끼는 감정과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자 확 쉬워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도하나’도, 예쁜 친구를 선망하던 ‘김하나’도 전부 한때의 나였으니까.
웹드라마 제작자로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어떤 반응이 나올 거라고 염두하고 만들었는데 실제로 그런 반응이 나왔을 때. 매력적인 두 개의 러브라인을 만들어놓고 파가 갈리길 바랐는데, 실제로 그렇게 나뉘어 서로 옥식각신하는 댓글을 볼 때 정말 짜릿하다.
아무래도 웹드라마는 로맨스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요즘 시대에 로맨스 서사를 다루는 방식은 과거의 인터넷 소설 때와 어떻게 다른가 연애 관계에서 누가 주체가 되고, 감정은 얼마나 드러내며, 키스 신에서 어떤 뉘앙스나 방식을 선호하는지 같은 건 남녀에 대한 시대상이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향받는 부분이다. 옛날 같았으면 문제아처럼 보이는 ‘직진’ 캐릭터가 지금은 걸 크러시로 비쳐지는 걸 보라.
첫 단독 연출작인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2〉(이하 〈사먼의가2〉)부터 꾸준히 청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른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청춘의 입장에서는 크게 느껴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누군가 날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그때의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된 이야기에 이끌리는 것 같다.
이번 〈트웬티트웬티〉가 포착한 청춘의 모습은 억압된 삶을 살아온 모범생 다희와 너무 자유롭게 살아서 오히려 한 곳에 묶이고 싶어하는 현진. 상반된 10대를 보낸 두 스무 살의 이야기가 담겼다. 하지만 성인이 된 딸이 서서히 품을 떠나려고 하는 데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다희 엄마처럼 부모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웹드라마는 신인 연기자들의 등용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현장에서 이들의 능력을 끌어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순간의 긴장과 떨림 때문에 지금을 망치면 후회할 테니 그냥 다 해버리라고 말해 준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촬영장에서 서로 극중 이름을 부르게 하기도 한다.
주연을 맡은 김우석, 한성민 배우에게 확신을 느낀 지점은 촬영 초반에 대본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배우들에게 꼭 물어보는데, 대부분 자기 것만 열심히 익히고 온다. 하지만 현진이(김우석)는 달랐다. “다희와 현진의 내레이션이 겹치는 부분이 좋았다”는 말에서 시야가 넓은 친구라는 걸 느꼈다. 실제로 스무 살인 다희(한성민)는 무표정일 때 나오는 반항기 어린 눈빛이 너무 좋다. 억압된 삶을 살아온 다희가 지녔을 법한 딱 그런 눈빛이랄까.
‘한수지표’ 웹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 뻔하지 않은 스토리와 입체적인 인물. 내가 장난기가 좀 있다. 그래서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신에 갑자기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음악을 넣는다거나 웃긴 분장을 한 채로 말싸움을 하게 만드는 의외의 연출을 시도하는 걸 즐긴다.
웹 소설, 웹드라마, 스트리밍 서비스(OTT) 등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츠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평소 즐겨 소비하는 콘텐츠는 인터넷 강의에서 게임 방송을 해 화제가 된 ‘정예학원 온라인’ 영상, ‘오버워치 숨바꼭질’ 영상처럼 요즘 이슈라고 하는 것은 일단 본다. 송민호와 피오가 패션 센스를 겨루는 유튜브 영상 ‘마포멋쟁이’나 〈부부의 세계〉 같은 화제의 예능과 드라마도 다 챙겨 보고 넷플릭스도 열심히 본다. 대본을 읽을 때나 어린 배우들이 현장에서 어떤 애드리브를 했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게 싫어서 의식적으로 더 찾아보는 경향이 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선택받을 수 있을까’란 불안을 느끼기도 하는지 오히려 기회라 생각한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방송국 3사에 들어가야 하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이 일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혹은 경력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하지만 지금은 플랫폼도 많아졌고, 시청자들도 더 다양한 콘텐츠를 원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거다.
뉴 미디어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마인드가 있다면 항상 시청자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웹드라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관건인 콘텐츠다. 내가 봤을 때 재미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깃 층과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웹드라마 다음 단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내년에도, 10년 뒤에도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면 한다. 별로 먼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콘텐츠가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다.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것이 즐거워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웹드라마 〈에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