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빈 터크는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미술교육기관인 왕립미술학교 졸업전시에서 텅 빈 스튜디오 공간에 ‘개빈 터크/조각가/ 여기서 작업하다 1989-1991’라고 쓰인 파란 기념패만 설치한 ‘Cave’라는 작품을 설치, 지도교수들의 격분을 사고 학위를 받지 못한다. 스물넷의 그는 이 도발적인 작업을 통해 학위 대신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찰스 사치의 1997년 <센세이션> 전시에 참여하며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개빈 터크는 앤디 워홀, 체 게바라, 요셉 보이스 같은 명사로 변장한 자신의 모습을 조각과 실크스크린 등으로 제작한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업,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연작 등을 똑같은 작업 방식으로 방향만 살짝 틀어놓은 채로 패러디하는가 하면 쓰레기 봉투, 먹다 남은 사과 조각, 씹다 버린 껌 등을 청동, 유리 수지 등으로 조각한다. 개빈 터크는 이런 설치, 평면, 조각 작업을 통해 줄곧 예술의 진위성, 정체성, 예술가의 저자성(Authorship) 등에 대해 의문을 던져왔다. 인터뷰는 개빈 터크가 그의 출세작 ‘Cave’를 ‘The Cave’라고 잘못 말한 에디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왜 거기 정관사 ‘The’가 붙으면 안 되는 건가? 이 작품의 이름은 그냥 ‘동굴(Cave)’이다. ‘The’를 붙이면 특정 동굴을 가리키게 된다. 동굴이라는 개념 전반을 표현하려 했다.
당신은 바로 그 텅 빈 ‘동굴’ 안에 파란 명판 하나만 붙여놓고 그 안에 마치 자신이 잘 알려진 작가인 듯한 문구를 써놓았다. 그 때부터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건가? 나는 ‘관객’을 고려해서 작품을 만든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해서 이런 명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작품은 예술가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도록 한 거다.
당신은 그 소동으로 학위를 받지 못했지만 대신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졸업전시 작품을 준비할 때도 그런 드라마틱한 실패와 성공을 상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론 꽤나 도움이 되긴 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내가 졸업 전시회에서 낙제했다는 일화만을 기억하고 내가 이런 작품을 만들게 된 나름의 복잡한 이유에 대해선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는 거다.
잘 알려진 작가의 잘 알려진 작품을 재현하는 식의 작업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익숙한 작품을 재현하는 작업은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의 소통을 좀 더 편하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내 작업은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을 해체하고 다시 해석하는 것이다.
당신은 가져다 쓴 선배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숨기기는커녕 작품의 전면에 드러낸다. 그런 작업이 스스로 불편하지는 않나? 내 경우에 불편함은 기존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거기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약간의 개성을 부여하는 데서 유발된다. 어쨌든 만들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것들이 나중에 볼 때 좀 더 나은 작품들이었다.
현대미술 외에 다른 예술 장르들에서 패러디는 진지한 예술 형식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때로 표절이라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패러디가 예술의 질을 저하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뛰어난 문학 작품 중에서도 다른 데서 접해본 적이 있는 표현 방식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다. 난 오히려 사람들이 내 작품의 출처를 알아봤으면 한다. 내 작품을 독창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1960년대 이후 나온 예술 작품들은 아무리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라고 포장한다 한들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이 작품에 등장시키는 인물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나? 앤디 워홀과 관련 있는 이미지를 찾다가 체 게바라,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나왔다. 처음에 체 게바라 작품을 만들었을 때 가졌던 의도는 이게 세계적으로 제일 잘 알려진,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미지라는 것이었다. 20세기 그 자체라는 느낌 말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서울 대로변엔 ‘체’라는 이름의 바가 커다란 규모로 오픈한다. 당신이 패러디한 바로 그 이미지가 그 바의 전면에 그려져 있다. 거기 그려져 있는 체 게바라 초상은 예술이 아니지만, 당신의 작품 속에 있는 건 예술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예술이다. 예술은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라 맥락에 있다. 그 레스토랑을 완전히 분해한 후 전시장에 원형 그대로 설치한다면 전혀 다른 맥락을 갖는 예술 작품이 될 거다. 중요한 건 맥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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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our Che, Seven Hues’, 캔버스 위에 실크 스크린, 186×258cm, 2005 2 ‘Monkey-Pookie-Boo’ 캔버스 위에 폴리머 아크릴, 230×170cm, 2009
사람들은 당신을 ‘개념 예술가(Conceptual Artist)’라고 말한다. 그 정의가 마음에 드나?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항상 특정한 아이디어를 잡고, 구조를 세운다. 작업은 아이디어의 연속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개념 예술가라는 표현은 꽤나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개념 예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건가?
글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어려울 것 없다. 다른 예술가들이 이미지를 통해 주제를 끌어낸다고 한다면, 나는 개념을 통해 주제를 끌어내는 게 다른 정도겠지.
당신 작품을 본 사람들의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무엇인가? 예전에 사람이 들어 있는 침낭 모양의 조각을 만든 적이 있다. 난 처음에 그걸 갤러리가 아닌 작업장 근처 거리에 놓아두고 하루 종일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걸 진짜 침낭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게 조각이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은 건축 인부들이었다. 그들은 “침낭이 아니야, 조각이잖아!”라고 소리친 다음 웃으면서 조각을 밟고 올라가 그 위에서 뛰기 시작했다. 다른 행인들은 소스라치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꽤나 희한한 광경이었다.(웃음)
당신과 동료들이 ‘Young British Artists’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도 꽤 오래다. 그 이름이 부담스럽거나 지겹지는 않나? 그건 우리가 만들어낸 이름이 아니다. ‘yBa 선언문’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물론 그런 이름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흥미를 유발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건 또한 사람들의 생각을 거기에서 멈추게 하는 역할도 한다. ‘yBa’라는 이름은 근사한 소개장인 동시에 작가와 관객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작업 이외에 당신이 지금 가장 몰두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 ‘동화의 집(House of Fairytales)’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많은 예술가, 창의적인 사람들이 참여해 아이들과 함께 각종 축제와 행사를 진행하는 상호적인 프로젝트다. 예술을 교육 도구로 활용, 결국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웃음)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12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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