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면 어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중고면 어때?

패션계가 세컨드 핸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레어템'을 구입했다는 특별한 소비심리와 새로운 세대의 소비 성향이 맞물려 형성된 중고 열풍 이야기.

ELLE BY ELLE 2020.03.18
 
MZ세대의 소비 성향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들이 과거 세대보다 중고를 구입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패스트 패션’의 흐름에서 벗어나 윤리적인 방식으로 중고 의류를 구매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
 
‘당근!’ ‘당근!’ 오랜만에 회동한 친구들과의 저녁 자리, 생경한 메시지 알림음이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익숙한 듯 잠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친구가 거사를 마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한다. “드디어 팔았네.” 오래된 명품 가방을 중고 마켓에서 판매했다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친구들도 저마다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작아서 입지 못했던 M 사의 패딩 재킷을 최근 좋은 가격에 팔았다느니, G 사의 빈티지 스니커즈를 ‘쿨거래’로 구입했다는 소식 등. 이 외에도 다양한 루트를 통한 흥미로운 중고 쇼핑담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마치 빈티지 숍에서 그토록 원하던 제품을 손에 넣었을 때처럼 말이다. 친구가 추천한 중고 거래 플랫폼과 요즘 가장 유명하다는 세컨드 핸즈, 빈티지 판매 사이트를 차례로 둘러보니 출구 없는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꼭 사고 싶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바잉 수량과 침이 꼴깍 넘어가는 가격에 가슴앓이만 했던 피비 파일로의 셀린 니트, 80년대에 출시된 고전적이고 우아한 까르띠에 탱크 워치, 알렉산더 왕이 발렌시아가를 지휘하던 시절의 유려한 시가렛 팬츠, 자크뮈스의 최근 컬렉션 셔츠까지 모두 ‘USED’라는 표시 아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자칫하면 멘탈을 잃고 카드를 긁을 이 유혹적인 경험은 따끈따끈한 ‘신상’이 즐비한 백화점 쇼핑을 능가하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그동안 중고를 사고파는 행위에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누군가 쓰던 제품을 구매하기가 탐탁지 않았고, 어디서 샀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황망한 표정을 지을 나를 상상하니 더욱 망설여졌달까. ‘당근 OO와 중고 OO에서 직거래로 구입했어요’라는 말이 ‘런던 브릭레인 마켓 빈티지 숍에서 건졌어요’라는 말보다 ‘쿨’하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반갑게도 에디터처럼 중고 패션의 매력에 눈뜬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세컨드 핸즈 트렌드를 거리낌 없이 즐기는 세대는 단연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합성어)다. 현재 패션계의 주요 고객층인 MZ세대의 소비 성향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들이 과거 세대보다 중고를 구입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의류를 싼값에 구입해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의 흐름에서 벗어나 윤리적인 방식으로 중고 의류를 구매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 게다가 쉽게 접하기 힘든 ‘레어템’을 구매하는 특별한 소비심리 또한 MZ세대가 중고 쇼핑을 즐기는 이유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Accenture)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젊은 소비자의 50% 이상이 중고 의류를 구입하겠다고 답했고, 온라인 중고 의류 유통 업체 스레드업(ThredUP)은 3년 안에 중고 의류 판매 시장이 510억 달러 수준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기대 이상으로 일상에서 빈번하게 포착된다. 뉴욕 세컨드 핸즈 숍 ‘왓 고즈 어라운드 컴스 어라운드(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의 쇼핑백을 든 켄덜 제너와 헤일리 볼드윈, 빈티지 숍에서 구입한 20년 전 로베르토 카발리 빈티지 드레스를 입은 킴 카다시언의 모습은 젊은 소비자에게 중고에 관한 선입견과 거부감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어마어마한 소득을 자랑하는 톱스타들이 빈티지 마켓에서 쇼핑을 즐기다니! 신상 컬렉션을 통째로 구입해도 아쉽지 않을 셀럽들이 중고 쇼핑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은 젊은 세대에게 신선한 자극이자 흥미로운 이벤트로 받아들여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플랫폼, 콧대 높은 하우스 브랜드들이 중고 마켓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니먼 마커스와 메이시스 백화점은 중고 판매 매장을 따로 운영 중이며, 오프화이트™을 인수하는 등 몸집을 불리고 있는 파페치 또한 ‘Pre-Owned’라는 세컨드 핸즈 판매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최근 나스닥에 상장하며 리세일 시장을 선도 중인 럭셔리 중고 판매 업체 더 리얼 리얼(The Real Real)은 버버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빈티지 라인 셀링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는 럭셔리 중고 판매 업체에 대한 확실한 인식의 변화이자 꽤 긍정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보다시피 완전히 바뀌어버린 쇼핑 패러다임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 않았나.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새 옷을 빠르게 소비하는 SPA 브랜드에 심취했다면 이제는 중고 아이템을 거리낌 없이 즐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침투한 것이다. 이는 세컨드 핸즈 추종자만을 위한 옵션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지속 가능성과 최근 대두되는 공유경제 흐름의 한 가닥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희귀한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성취감, 쇼핑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아닐는지. 띵동! ‘팔렸나요?’ 마침 중고 판매 사이트에 올려둔 빈티지 백을 구입하겠다는 메시지가 스마트폰에 떴다. 그 돈으로 과연 무얼 할지 궁금하다고? 글쎄, 아마 어제 장바구니에 슬며시 추가한 올드 셀린 퍼 슬리퍼를 구입할 것 같다. 아, 빠져나올 수 없는 중고 마켓의 마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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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미강
    사진 GETTYIMAGESKOREA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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