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플 드레스와 레더 벨트는 모두 Alexander McQueen. 스트랩 슈즈는 Jimmy Choo.

풍성한 볼륨감의 튤 드레스는 Off-White™. 새틴 롱부츠는 Fendi. 이어링은 Dolce & Gabbana.

오버사이즈 화이트 티셔츠는 MM6. 로고 플레이 톱은 Vetements. 미키 마우스 패턴의 스커트는 Gucci. 헤어밴드는 Maison Michel.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며칠 전에는 팬들이 마련한 지하철 광고를 직접 보러 가는 영상을 올렸어요 친한 동생이 소식을 알려주더라고요. 이럴 때 아이돌은 인증샷을 찍어준다면서. 집에서 가까워 그냥 지하철 타고 갔다오면 되겠다 싶었어요. 오랜만에 전철을 탔는데 되게 새롭더라고요. 외국에 온 것처럼 역에 있는 의자랑 벽 같은 것도 예뻐 보이더라는. 즐겁게 구경하면서 갔어요. 아무도 저인 줄 못 알아보고.
공효진인데 어떻게 안 들킬 수 있죠 배우들에겐 노하우가 있어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나인 줄 잘 몰라요. 그리고 말을 안 하면 돼요. 목소리가 결정적이라. 여하튼 막상 역에 도착해서는 광고판을 찾느라 좀 헤맸어요. 같이 간 동생이 일부러 날 울리려고 고생시키는 건가 의심할 만큼. 거의 포기할까 싶을 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냥 가자마자 찾으면 재미없잖아요. 그게 삶의 아이러니겠죠.
데뷔 20주년을 맞은 2019년에 〈동백꽃 필 무렵〉 같은 작품을 만나다니, 그 역시 삶의 신비가 아닐까요 사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몰랐으면 했어요. 20년이라니, 책임질 것도 많고 실수하면 안 될 것 같은 연륜이잖아요. 제 데뷔작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인데, 1999년 12월 24일에 개봉했어요. 이렇게 길게 할 줄 몰랐는데, 영 믿기지 않고 기분이 이상해요.
드라마가 끝나고 진행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더군요. “결국 20년을 버티니 새 국면에 서게 된다” 20주년이라고 해서 남다른 포부를 가졌던 것도 아니고, 보는 분들도 특별히 더 기대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행히 잘되고 나니 좋은 말이 만들어지고,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면서 어떨 땐 장점이 더 많은 것 같고, 어떨 땐 단점이 더 큰 것처럼 느껴져요. 20년이나 했으면 이제 거기서 거기라고, 사랑을 받으면 이만큼일 거고 외면을 받아도 그만큼일 거라고, 모든 것에 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죠. 그런 제게 〈동백꽃 필 무렵〉은 대외적인 성공을 떠나 개인적으로 선물 같은 작품이에요. 에너지가 확 차오른 시간이었어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필구는 어쩌고 나왔냐” “두루치기 많이 팔았냐”고 물어요. 머리 모양을 바꿀까 싶기도 했는데, 좀 더 동백이인 척하고 지내야겠다 하고 있어요.
대본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입 아플 정도죠. 오랜만에 이야기의 힘을 느낀 작품이었어요 4부 대본까지 보고 출연을 결정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소리 내서 다른 배우들 대사도 읽어보고 그랬어요. 이렇게 전국민적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그냥 알음알음 보고 ‘좋은 드라마’라고 얘기하는 작품이 될 거라 생각했죠.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그런데 우리 얘기만큼 드라마틱한 게 또 없더라고요. 이런 남자 주인공, 이런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얘기가 어디 있나요. 그리고 누군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이렇게 까불이의 정체를 궁금해 할지 몰랐어요. 이런 저런 황당한 추측에 우리끼리 깔깔 웃기도 했죠.
동백, 덕선, 정숙 등 여러 엄마들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했어요. 공효진의 진짜 어머니의 감상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드라마 초반에 엄마가 내가 죽는 게 맞냐고 물어봤어요. 일부러 그런 척했더니 “마음이 이상하네?” 하더라고요. 극중에서 동백이 엄마가 한창 아플 때는 아빠한테 문자가 왔어요. “니네 엄마 죽니?(웃음)” 두 분 다 드라마에 빠져서 ‘너네 엄마’ ‘너네 아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게 재미있었어요.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출연작이 정말 많아요. 20년을 했다고 해서 다들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닐 거예요 영화든 드라마든 꾸준하게 해온 편인데, 뭔가 계획하고 했던 것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패턴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 사이에 쉬는 기간이 길어진 건, 아무래도 캐릭터나 시나리오를 보는 제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그런 것 같아요.
누구나 본인이 좋아하는 공효진의 최고 작품이 다를 거예요. 저한테는 〈고맙습니다〉 〈질투의 화신〉 〈동백꽃 필 무렵〉. 직접 ‘공효진 드라마 3부작’을 꼽아본다면요 그럼 저는 색깔이 좀 다른 것들로 꼽을게요. 〈파스타〉 〈괜찮아 사랑이야〉 그리고 〈주군의 태양〉? 〈괜찮아 사랑이야〉는 기대만큼 시청률이 나온 작품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너무 미화된 멜로에 익숙하다 보니, 우리가 그린 남녀의 사랑이 너무 시니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전 너무 좋았어요. 〈파스타〉는 ‘공블리’의 시작이 된 작품이고요. 〈주군의 태양〉은 색이 다른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골랐어요.
‘드라마 퀸’이라 불리면서도 영화에서는 〈미씽: 사라진 여자〉 〈도어락〉 같은 작품을 선택했다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없을 법한 ‘쿨’하고 이상한 여자들도 많이 연기했죠 어느 배우나 항상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를 꿈꾸는데 그런 작품을 타이밍에 맞게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드라마를 한두 작품 하고 나면 배우로서 저도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좀 더 낯선 캐릭터를 찾아 헤맸고, 규모나 비중에 상관없이 용기 있게 움직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 보니 대중적이진 않았던 거 같아요. 비슷하게 주어지는 드라마 속 이미지를 제가 얼마나 더 변주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고,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저래도 되나 싶은 용감한 작품을 올리고 싶어요.
20년이란 시간,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훌쩍 지났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까마득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시 한 번 해볼래?’ 하면 다시 해볼 만큼 즐거웠고 견딜 만한 시간이었어요. 지금 그대로 돌아가 다시 하라면 재미있게, 더 잘할 자신 있어요. 모르는 상태로 다시 시작한다 해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고요. 슬프고 괴로운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이었어요.
고비라 생각했던 때는 없나요 없었어요. 성격상 그렇게까지 저를 채찍질하면서 괴롭히는 타입은 아니에요. 저는 완벽주의자가 아니거든요.
자신의 어떤 면모가 20년을 버티게 해줬다고 생각하나요 긍정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적당히’를 추구하는 타입이에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개미보단 베짱이 과라고 여겼어요. 너무 많이 마음 쓰지 말고, 너무 많이 욕심 내지 말고, 너무 많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너무 많이 후회도 하지 말고. 그렇게 20년 동안 멘탈이 다치지 않으면서 일을 해올 수 있었어요. ‘Let it be’, 다 괜찮을 거라는 생각 덕분에 어쩌면 더 쉽게 작품을 정하고 자유로운 행보를 걷지 않았나 생각해요. 팬들이 올려주는 이런 저런 기록과 영상을 보는데, 창피하거나 ‘이건 아니었어’ 하는 건 없더라고요.
지난 10월에 열린 환경을 주제로 한 ‘헤럴드디자인포럼2019’에서 기조 연사로 나섰어요. 그런 자리에 잘 서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서, 좀 놀랐어요 연기 말고 제 인생에 중요한 이슈가 또 있다면 환경 문제예요. 초청을 받고 고민을 되게 오래 했어요. 사실 옆에서 다들 말리는 분위기였어요. 내가 어느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하는 순간, 힘들고 책임도 많아진다고요. 그런데 혹여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꼬투리 잡을 게 무서워서,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일을 “나 혼자만 할게” 그러는 건 용기 없는 행동인 것 같았어요. 내가 나서서 한두 명에게라도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생각도 했고요. 하루라도 지체하면 안될 것 같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스타가 뭔가 목소리를 낸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지요. 선의가 오해받는 일이 많으니까요 저도 오해받고 싶지 않아요. 어떤 댓글을 보면 상처받고, 직접 만나서 설명 좀 해줘야겠다 싶게 화가 나기도 해요. 솔직히 그럴 때마다 힘이 빠지죠. 그럼에도 끝까지 해서 꼭 결실을 맺고 싶어요. 사실 포럼도 자신에게 다짐하려고 간 거예요.
공효진이란 사람을 보며 늘 생각했어요. 연기할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어쩜 모든 게 저렇게 자연스러울까 하고요 알고 보면 저도 고민하고, 자신을 자제한 때도 많았어요. 그럼에도 그렇게 느껴진다면, 처음부터 사람들이 저한테 가진 ‘필터’ 때문인 것 같아요. 캐릭터라는 것, 그게 꽤 쉽게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제가 활동을 시작할 때 좀 거침없이 움직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랬더니 언제부턴가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은 느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사진 찍어 달라고 할 때, “나 지금 잘 나올 자신이 없어요”라고 그러면 못됐다고 흉보지 않고 그냥 가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효진이라는 캐릭터 덕분에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주변에 재미있는 일을 함께 도모하는 친구들이 많아 보여요 저는 항상 사람들과 섞여 지내는 편이에요. 용식이(강하늘)랑 이런 얘기도 해봤어요. 혼자 하는 여행이 좋은지, 친구랑 하는 여행이 좋은지. 저는 친구랑 하는 여행이 훨씬 좋은데, 용식이는 혼자 하는 게 좋다고 해서 ‘역시 신세대구나’ 했죠. 저는 별자리가 양자리라서 그런지 무리지어 사는 걸 안정적으로 느끼는 사람인 거 같아요.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남겨둔 버킷 리스트가 있나요 1000만 영화(웃음)?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를 탈탈 털어 모아도 1000만이 될까 말까예요. 최고 시청률 드라마는 해봤으니까 다음에는 1000만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모델 출신의 개성파 배우에서 ‘공블리’, 이제 ‘동백이’로 불려요. 동백이 역시 언젠가는 극복할 이름이 될까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동백이를 지울 만한 캐릭터를 찾아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더 발전된 느낌의 작품을 하는 게 맞을지. 아직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동백꽃 필 무렵〉에 출연한 배우들끼리 하는 걱정이라면, 이제 다른 대본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웬만한 멜로에는 공감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모르죠. 동백이가 찾아온 것처럼 내게 나타나 줄지.
〈엘르〉 2020년 1월호 커버를 장식하게 됐어요. 새해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우주 전쟁이 일어날 줄 알았던 2020년이 진짜 오다니 낯설어요. 한동안은 사인할 때도 2019년이라 썼다가 다시 지우고 그러겠죠.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이 무섭기도 해요. 내가 발맞춰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요. 자꾸 어른처럼 잔소리하는 사람이 될까봐. 진짜 언젠가 우리가 달나라에 가고 우주 여행을 하게 될까요? 그래도 아마 사람이 사는 건 다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공효진을 보고 〈엘르〉를 집어들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건 저 역시 오래 되지 않았어요. 자신감에서 오는 반짝거림은 그 뭘로도 이길 수 없어요. 동백이를 통해 저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