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식객의 맛집놀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일본의 돈코츠 라멘 운운하는데 웃기는 소리다. 진득진득하고 여러 가지 맛이 섞인 라멘 국물과 비교하다니. 일본이 돼지고기를 가지고 낼 수 있는 국물의 맛이 거기까지라면 우리에겐 육수의 지존 돼지국밥이 있다. 제주도의 고기국수 육수와 어깨를 견줄 만한 돼지와 소의 놀라운 콜라보레이션. ::맛집,구수한,깊은 맛,국밥집,음식점,평상,일상,밀양돼지국밥,돼지국밥,돼지고기,국물,육수,컬래버레이션,엘라서울,엘르,엣진,elle.co.kr:: | ::맛집,구수한,깊은 맛,국밥집,음식점

돼지국밥이다. 국밥이란 단어도 마뜩하지 않은데 거기에 돼지+국밥이라니. 그것도 사람이 먹는 음식인가? 비주얼 보시게나. 견공의 밥 그릇에 담긴 모습이나 인간의 밥상 위에 올라 있는 모습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가. 오우 국밥... 우웩. 이렇게 여기시는 분들은 여기서 그만 보셔도 되겠다. 늘 하시던 대로 우아하게 스파게티 양손으로 잡고 돌돌 말아 잡수시거나 썩기 직전까지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 맛나게 썰어 드시면 되겠다. 아니면 컴퓨터 모니터 바라보며 오물 오물 새침데기 처자처럼 김밥 드시거나 고개 수그리고 컵라면 냄새 솔솔 풍기시며 워커 홀릭의 이미지 맘껏 누리시라. 누가 아는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일한다고 회사에서 꽤나 좋아할지. 날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은 햄버거에 엑스터시를 느끼시고, 매스컴에만 소개된 식당 앞에서 길게 줄 서서 맛 없는 것 맛 있다고 연신 감탄하며 드시라. 정말 맛있는 집은 매스컴에 나오지 않는다. 한바탕 소동을 벌이듯 촬영하고 나면 오고 가는 거래. 똑똑한 식당주인들도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인지는 경험상으로 알게 된다. 국물요리는 왠지 격이 떨어진다고 멀리하는 사람들은 아마 외가나 친가쪽에 앵글로 색슨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떡볶이로 한식의 세계화를 달성하겠다고 연구소까지 차려놓고 지원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오지만 외국인 셰프에게 한식 디밀고 맛이 어떠냐고, 어떻게 하면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겠냐고 묻는 것을 보면 당최 이 나라에서 하는 일들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식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선행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코스 요리가 아닌 한식은 음식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웃기는 소리 마라. 하동관의 곰탕은 30년 이상 검증된 맛이다. 한상 차림은 서양에서도 19세기까지 나타나던 음식 문화였다. 저마다 음식 문화와 전통은 다르게 분화한다. 그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면서 따라하기에 급급한 형태로 세계화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어라. 오늘따라 왜 이렇게 흥분하지. 아마도 돼지국밥을 먹으러 부산에 가지 못한 원한의 기억이 되살아 나서 그런 모양이다. 지난 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려고 짐까지 쌌다가 맥 없이 주저 앉았다. 삼십대 중반에 벌써 갱년기가 온 것인지. 노란 하늘이 뱅뱅 돌고 금방이라도 백혈병 환자처럼 픽 쓰러질 것 같아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축제라고 알려진 부산영화제. 나에게는 부산의 진미를 맛보는 식도락의 축제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해운대 할매횟집의 푸짐한 회 한 상만이 아니다. 밀가루로 만든 밀면이나 부산오뎅은 기본, 짚불꼼장어에 완탕, 고갈비에 팥빙수 등 시장 구석 동네 구석 찾아 다니는 맛 여행이 최고다. 2박 3일 내내 먹기만 해도 충분히 행복한 곳. 부산이 무슨 미식의 동네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많지만 전쟁으로 제2수도 역사가 있는 부산은 그야말로 온 동네의 맛이 섞이고 소용돌이치면서 뚝심 있게 만들어낸 타협하지 않는 맛의 기준이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 중 부산 출신이 하나 있다. 소울 푸드 중 하나인 순댓국에 집착하는 본 식객을 향해 순댓국 따위는 부산 돼지국밥에 비교할 수가 없다며 약 올리던 이다. 서울에 있는 돼지국밥은 부산의 그것에 비하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며 고개를 가로졌던 이다. 한 마디로 비교 불가. 입만 열면 부산 돼지국밥 자랑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어느 해인가. 부산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지러 갔던 날, 영화는 한 편도 안 보고 밤새 술독에 빠졌던 날, 다음날 돼지국밥을 먹으러 갔다. 양손을 꼭 쥐면 술 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아침, 알코올에 흥건히 젖은 몸을 일으켰다.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한 대로 맛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로 떼지어 돼지국밥집을 향했다. 휴일 오전인데도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 점심 때가 되면 줄을 서야 겨우 먹을 수 있지만 늦은 아침 해장을 위해 찾은 우리 패거리에게는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맛 없으면 목을 따겠다, 머리를 밀어버리겠다, 알코올이 채 가시지 않은 패거리의 입에서 험한 말이 쏟아졌다. 그저 웃기만 하던 그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드디어 손마디 굵은 아주머니가 탁 탁 한 그릇씩 국밥을 내려놓고 가자 다들 눈빛이 비장해졌다. 주워들은 대로 부추를 수북이 올리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뒤 국물을 떠 먹는 순간, 다들 조용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쳐 박고 말 없이 조용히 먹기만 했다. 와, 생각보다 맛있네요. 어 괜찮은데요. 이런 이야기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매장에 앉아서 먹는 다른 테이블 손님처럼 무언의 감동에 휩쓸려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그저 수저만 오르락 내리락 했다. 그 직원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그가 승자였던 것이다. 우리가 여태껏 먹었던 수많은 국밥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우윳 빛깔 국물을 보면 시원한 줄 알고, 라면 스프 의혹이 짙은 해장국을 슬쩍 눈감아주고 먹었던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단 말인가. 순댓국이란 이름으로 뽀얀 빛을을 내던 그 국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남은 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떠 먹은 식객의 머릿속으로 번개 같은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아시다시피 돼지고기는 국물내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질 좋은 한우는 찬물에 넣고 끓이면 끓일 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오지만 아무리 좋은 국산 돼지라도 국물 낸다고 쏟아 붓는 경우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한집 건너 국밥집이 번성한 경남 지역에서도 돼지국밥은 조금씩 스타일의 차이를 보인다. 투명하고 깔끔하게 국물을 내거나 진하게 우려내거나, 돼지뼈로만 국물을 내거나 소뼈, 즉 사골육수를 내거나. 송정, 광안리, 부산대 앞, 서면 등 같은 부산 지역 내에서도 스타일은 조금씩 다 다르다. 그날 맛 본 돼지국밥의 육수는 사골 육수였다. 밀양스타일이다. 국물은 맑고 개운하게 소뼈를 이용하고, 고기는 부드러운 돼지를 이용하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콜라보레이션이란 말인가. 돼지고기는 포화지방산보다 불포화지방산이 많다. 불포화지방산이 뭔지는 몰라도 몸 안의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는 것은 아시리라 믿는다. 소고기의 10배가 넘는 B1를 함유하고 있는데, 이 B1이 뇌세포와 신경세포가 원활하게 활동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폐에 쌓인 오염물질을 중화시키거나 밖으로 배출하는데 효과가 있으니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은 귀 기울여 들으시길. 한가지 꿈이 있다면 조그마한 수첩을 들고 부산 내에 있는 돼지국밥 집들을 모조리 순례하는 것이다. 월급쟁이 밥벌이를 졸업하면 언젠가 개나리 봇짐 하나 달랑 메고 온 나라의 숨은 고수들을 찾아다녀야지. 바다 건너 제주도에 있는 고기국수의 육수와 부산 돼지국밥의 육수의 상관관계도 밝혀내리라. 비법 안 가르쳐준다는 할머니 막걸리 한 잔 두 잔으로 꼬시기도 하고, 할머니 집 찾아가 대 자로 누워 안 가르쳐주면 집에 안 가겠다고 꼬장도 부려봐야지. 유구한 음식 전통 찾을 수 없는 이 시대에 발로 쓴 신 음식 대동여지도를 그려보는 것. 날마다 시계 부랄처럼 움직이는 본 식객의 제한적인 동선에 어깃장을 놓으면 국물 요리의 대가들을 만나 그 비법을 꼭 알아내리라. 우훗.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는 일 아닌가. Information밀양돼지국밥 051-754-0564. 광안리 해수욕장 앞에 위치해 있다. 돼지국밥이라면 먹어보지도 않고 손사래치는 초심자에게 적당하다. 일단 돼지국밥의 정체성을 이해한 후 부산에 널린 돼지국밥 순례에 나서는 일도 좋을 듯. 뭐 영 적성에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