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보이스] 무엇을 보고 웃는 사람인가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흑역사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흑역사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느냐이다. | ELLE보이스,엘르보이스,재재,연반인 재재,이은재

   ━  무엇을 보고 웃는 사람인가요     “재재님의 웃음은 불편하지 않은 것 같아요.” 처음 이 말을 들었던 때의 묘한 기분이 지금도 떠오른다. <문명특급> 진행자로서 책임감이 있었던 건 맞지만 불편한 웃음을 유발하지 않겠다는 대단한 각오를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했던 말과 행동에 이런 의미가 덧붙여지니, 어쩌면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마치 집에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들고 다니던 물품이 알고 보니 좋은 취지로 기획한 상품이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념인’에 등극해 버린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한 이 말이 왜 그때는 생소하게 느껴진 건지. 물론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은 가차없이 잘라내는 편집의 힘도 클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그렇다. 굳이 누군가를 비하할 필요가 있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재미를 찾을 건 없지 않나. 어쩌면 사람들은 ‘비하하지 않는 웃음’ ‘불편하지 않은 웃음’에 목말라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20년 전에 유행했던 개그 프로그램을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갈증이 생긴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장애인의 신체조건, 외국인의 말투, 인종, 여성의 외모 등 경악할 만큼 놀라운 소재와 다양한 방법으로 특정 집단을 희화화해 놀림거리로 만들었다. 나 역시 웃었으니 할 말은 없지만…. 대학생 때만 해도 ‘자취하고 잘 취해요’라는 말이 대단한 ‘유우-머’라도 되는 양 친구들과 낄낄대며 소비했다. 성적 대상화일 뿐 아니라 범죄 가능성을 은연중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없이 말이다. 인턴 생활을 시작하며 2개월간 자취하고 나서야 이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다. 밤마다 잠을 청할 때면 바깥 복도의 발소리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고, 술 취해 귀가하는 날이면 항상 뒤에 누가 따라오지 않는지 불안해 했다. 실제로 나에게 닥친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피해를 입고 있는 일을 ‘개그’라며 소비했던 내 과거가 ‘흑역사’가 된 순간이었다. 나는 또한 손쉽게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중학생 때였다. 영어 시간에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께서 ‘Coke’라는 단어를 설명하며 맨 앞자리에 앉아 눈을 반짝이던 나와 짝꿍을 그 예시로 들었다. 나는 당시 짧은 단발에 키가 165cm가 넘는 거무튀튀한 피부의 체육인이었고(실제로 육상부였다), 짝꿍은 긴 머리에 아담하고 뽀얀 친구였다. “은재가 ‘Give me coke’라 하면 그건 코카인(마약)인 거고 짝꿍 00이가 ‘Give me coke’라고 하면 그건 코카콜라인 거야.” 다들 박장대소했고 나조차 그 의미가 단번에 이해가 갔지만 묘하게 나빠진 기분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불편한 웃음’을 알게 모르게 체득한 것이 말이다. ‘개그를 뭐 다큐로 받아치냐?’ 모두가 웃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제기하면 듣는 말이다. 개그가 더 이상 누군가에게 개그가 아닌 순간, 불편한 웃음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놀림거리는 내가 될 수도, 내 가족이 될 수도, 내 지인이, 내 연인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그 ‘다큐의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것이 모두에게 개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그’와 ‘다큐’에 놓인 선, 그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물론 나도 그 ‘선’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도 외줄타기를 하는 광대의 마음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배워간다는 점이다. ‘자취하고 잘 취해요’라는 농담을 친구들과 낄낄거렸던 대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제2의 자아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두렵다. 지금의 나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 또 다른 ‘흑역사’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화끈거리는 양 볼, 옹졸한 고집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웃지 말아야 할 소재를 문제의식 없이 즐기는 ‘흑역사’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흑역사’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느냐, 그 차이 아닐까. 웃음 뒤에 따라오는 불편함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아량.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은 발전하거나 퇴보한다.  ‘역사가 반복되고 똑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면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Writer 이은재 SBS PD. 유튜브 콘텐츠인 <문명특급> MC 혹은 ‘연반인 재재’로 좀 더 친숙하다. 가볍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세상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