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견고한 자기 세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행동의 질감과 말의 속도에 따라 자신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김현주는 여전히 스스로를 탐험하고 침범하며, 끊임없이 자문한다. | 김현주,배우,김현주 화보,김현주 인터뷰,엘르 화보

오버 핏 화이트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레이 울 팬츠는 & Other Stories. 볼드한 실버 링과 굴곡진 실버 링은 모두 Null. 블랙 코트와 레더 벨트는 모두 Prada. “언젠가 한번은 샴페인을 마시면서 촬영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해외 셀러브리티 촬영에서나 있을 법한 이 ‘쿨’한 스토리의 시작은 김현주다. 샴페인의 기포만큼 그날의 텐션을 끌어올려 절제하지 않는 자신을 투영하려는 배우의 노력. 주변 사람을 불러모아, 비록 종이컵에 따를 샴페인일지언정 ‘촬영은 재미있게’라는 슬로건 아래, 말 그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샴페인을 쏘아 올렸다. 오늘처럼 배우가 먼저 나서주면 모든 게 수월해지기 마련이다. “작품 외에 별다른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는 편이라 화보 작업을 좋아해요. 따로 팬과 소통하는 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오피셜한 경우에 최대한 새롭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죠.”  그러고 보니 작품 이외에 김현주의 일상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개인 SNS 활동도, 관찰 예능 프로그램도 전무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보여줄 것이 꽤 많아 보이는데, 그 흥미로움은 오롯이 본인의 일상에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끊임없이 침범당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자격이 있다면, 그녀는 너무나 부적격이다. “‘배우는 작품으로만 이야기한다’는 그런 거창한 의미는 아니에요. 그냥 어릴 때 데뷔해서 이미 너무 많은 걸 오픈한 채로 보내왔잖아요. 매 작품 새로 받아 드는 캐릭터 외에 제가 보여줄 새로운 이슈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모든 것을 공유해 본 데뷔 23년 차 여배우. 베이고 상처 난 후에야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선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지금의 안정적인 사이클을 유지하기까지 보내온 혹독한 자기검열의 시간. 그녀의 말을 빌리면, 데뷔 시절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로 카메라 앞에 내던져져 ‘이름값’을 해내기까지 개인의 안위 따위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시간들. “예전엔 모든 게 괴로웠어요. 내가 힘든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나를 힘든 상황에 몰아넣고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훅’ 하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활동을 2~3년 정도 쉬었죠.” 슬럼프라는 말로 그 시간을 단정짓기엔 지나온 시간 속의 그녀가 너무 힘겹다. 일 년에 두 번은 꼬박꼬박 그녀를 만나왔던 그 시기, 우리가 기억하는 김현주는 당차고 밝은 캐릭터였다. “제가 짜증 내고 힘들어하면 그건 제 선택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거니까, 그럼 그 시간 자체를 부정하는 거잖아요. 그러기에 전 자존심이 세고, 책임감이 강했던 것 같아요.”     올리브 컬러 재킷은 Peter Do by 10 Corso Como Seoul.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볼드한 실버 링과 굴곡진 실버 링은 모두 Null. 트위스트 링은 S_S.il. 베이지 레더 셔츠는 Fendi . 화이트 팬츠는 Eenk. 청록색 오버 핏 수트는 Moonsun. 볼드한 실버 링과 굴곡진 실버 링은 모두 Null. 매 작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연기했고, 마무리는 부끄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니 한 작품 한 작품이 치열했다. <왓처>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자신을 괴롭히며 질문을 던졌던 작품. 첫 장르물 도전이기도 하지만 ‘한태주’라는 곁을 내줄 것 같지 않은 차가운 캐릭터는 그녀에게 도전이자 자기학습이 필요한 캐릭터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에요. 드라마의 흐름도 좋고 반응도 좋았지만, ‘한태주’를 연기하는 저는 그 안에서 많이 힘들었어요. 물론 안 해봤던 역할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해 많은 분이 반갑다고들 하시는데, 저는 심리적으로 힘에 부침을 느끼면서 연기했어요. ‘태주’라는 캐릭터가 사실은 완전히 가짜거든요. 진심이 뭔지, 감춰진 건 뭔지…. 초반에 센 척하는 모습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복수하기 위해 ‘태주’가 만들어낸 가상의 모습인 거죠. 후반부에 사라졌던 남편이 나타났을 때 마주한 모습, 그리고 ‘영군’이의 안위를 신경 쓰는 모습이 사실은 ‘태주’ 본연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걸 저만 알고 시청자는 모르게 하려니 감정의 줄타기를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뭐든 시작하면 기어이 정상에 깃발을 꽂아야만 하는 그녀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보면 이번 심리전이 그녀에게 어떤 숙제로 작용했는지 충분히 전해진다. 유일한 여자배우로 사건의 중심축에 서서 한석규, 서강준과 함께 밸런스를 맞추는 것 또한 쉽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안정적인 걸 선호하고, 위험한 걸 지양하는 평소 스타일을 깨고 도전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의미를 두고 싶다.   블랙 레더 원피스는 & Other Stories. 레더 팬츠는 YCH. 블랙 레더 원피스는 & Other Stories. <왓처>가 생각보다 오랜 공백을 거쳐 내놓은 작품이니 또 얼마큼 숨어버릴지 물었다. “일부러 템포를 늦추려고 하는 건 아닌데, 한번 몰입하고 나면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캐릭터가 빠져나가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제야 새로운 작품도 보이고, 시나리오도 읽히고 그래요. 그래도 3년 전부터 작품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 같은데, 물론 제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죠(웃음). 모든 작품이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거니까.” 맘껏 감정을 내뱉은 뒤에 오는 휴식은 달콤하다.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그녀가 쉬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바쁘게 움직일 것.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좋아해요. 1주일에 세 번 정도는 웨이트 운동이랑 필라테스 하고, 그 외에는 스케줄을 짜서 뭔가를 배우러 다니죠. 드럼은 꽤 오랫동안 배웠고,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쳤고, 바이올린도 좀 켰네요. 뜨개질도 하고, 화실에 가서 그림도 배웠어요. 최근까지 열심히 한 건 식물이나 꽃을 주제로 정교하게 그리는 ‘보태니컬 아트’예요. 이건 화실 친구들과 발표회 같은 것도 여는데 친한 팬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그랬네요.” 이뿐인가. 가장 오래, 가장 몰입했다는 꽃꽂이는 취미를 넘어 무작정 영국까지 날아가 3개월 수업을 받기도 했다. 뭐든 꽂히면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스타일. 1년 전부터 행동으로 옮긴 ‘혼자 여행하기’는 이제 어느 정도 내공이 붙은 상태다. 항공부터 숙박, 현지 기차표까지 꼼꼼히 공부하고 스케줄 짜서 적어도 20일은 버티는 편이다. “물론 어느 날은 너무 외로워서 울어버릴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어느 면에서든 성장해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사교적일 것 같다는 인상이 섣부른 판단이란 것은 그녀와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단박에 깨닫게 되는데, 실은 처음 가는 드라마 현장에 낯선 사람이 5명만 있어도 움츠러드는 스타일이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익숙해지는 데 나름의 시간이 필요한 타입이고, 모든 것에 베테랑일 것만 같은 그녀에게도 처음은 언제나 어렵다. 자기가 뱉은 말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의견을 낼 때는 더없이 신중하게 되고, 실수를 줄이려다 보니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활동 시간에 비해 어울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감정이 범람해서 서로 할퀴고 상처 주는 것보다는 조금 절제하고 살핀 후에 내 사람을 알아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블랙 코트와 레더 벨트, 에나멜 슈즈는 모두 Prada. 아주 오랜만에 그녀와 마주했다. 결국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데, 스무 살의 그녀와 불혹을 살짝 넘긴 현재의 그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오락가락하는 것이고, 적당한 간을 맞추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부디 지금 그녀가 만들어놓은 자신의 견고한 세계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기를, 세월에 풍화되거나 명멸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