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남과 하는 결혼, 나랑 완전히 똑같은 사람과 할 수 없다지만 내 경우 서로 상식이 통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혼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요소였다. 애인이 화가 났는데 침묵 혹은 ‘내가 왜?’라는 식의 답변을 내놓는 남자와는 절대 같이 살 수 없다고 믿었으니까. 연애 당시 극장 앞 좌석에 발을 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짜증이 솟구친 적 있는데,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지금의 남편은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말로 내게 점수를 얻었다. 혹은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어도 리어카 끄는 어르신을 잠자코 기다려준다든지. 이런 것이 상식의 일치가 아닐까? 결혼해서 10년이 지났고, 가끔 다투긴 해도 일단 기본 마인드가 비슷하니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 같다. (결혼 11년 차, 라디오 작가) 다정하고 사교성 좋아 보였던 구 남친 J, 그는 언제나 내 가족, 내 편, 내 친구를 들먹이며 주변 사람을 살뜰히 챙겼다. 그런 환상이 무참히 깨진 건 J 부모님과의 통화를 듣게 되면서였다. “아, 왜?” “나 바빠” “나중에 전화해” 거침없이 짜증내며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는 모습을 보고 암울한 내 미래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애써 모른 척하려 했지만 연애 후반기에 접어들며 부쩍 짜증과 응석이 늘어난 그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게 됐다. ‘이 남자, 새는 바가지인가?’ 가족에게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남자는 내가 그의 가족이 됐을 때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무한 이해를 요구하는 이기적인 남자를 거르기 위해서, 그가 가족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혼 4년 차, 디자이너)
사실 결혼하기 전에는 이 부분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집안일 할 줄 아세요?’ ‘분리수거는요?’ ‘세탁기 돌릴 줄 아세요?’라고 묻고 연애를 시작하겠는가. 하지만 막상 결혼한 유부녀 선배들과 나눈 이야기를 종합해 본 결과, 집안일을 1도 할 줄 모르는, 결혼생활이라는 것에 당연히 살림이 포함된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한 남자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하는 살림왕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당연히 집안일은 부부가 함께 분담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만 있다면 세탁기에 검은 옷과 흰 옷을 같이 넣고 빨더라도 화가 치솟을 일은 없다. (결혼 6개월 차, 공무원) 일상에서 벗어나 돌발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지켜보는 건 결혼생활을 그려보는 데 결정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 연애 시절, 남자친구는 예측 불가능한 위기상황에서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국 여행을 갔을 때였다. 숙박 예약이 꼬여 밤늦게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고, 마침 비도 슬슬 내려 짜증이 한껏 난 상태였다. 내가 한 예약이라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남자친구가 차분히 호텔 직원한테 와이파이 쓸 수 있는 곳을 묻더라. 결국 다른 곳으로 옮겨 숙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때 어렴풋이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상 밖의 상황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좋았다는 것 말고도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상대방에게 짜증내고 불평을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들었다. (결혼 2년 차, 대학원생)
커플끼리 돈 얘기를 하는 건 참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의 재정 상태와 경제 관념은 한번 체크해 볼 문제다. 회사에 다닌 지 수년이 됐는데 아직 제대로 모아둔 돈이 없다면? 그의 씀씀이나 숨겨진 사정을 한번 살펴볼 만하다(집안에 큰 빚이 있다든지, 도박 중독은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예비 시댁이 넉넉한 편이라 해도 막연히 부모의 서포트만 믿고 있는 남자도 별로. 재정 독립은 안정적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의 필수조건이다. 남편은 일찍부터 적금이나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연애할 때는 유난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지금 와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덕분에 최근 우리 힘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결혼 5년 차, 회사원) 첫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결혼으로 결론지어진 이유. 남자친구가 8년 동안 내게 건넨 말 한 마디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넌 어때?’ ‘네가 좋아야 나도 좋아’라는 말. 연애 내내 나를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던 남자친구의 배려심이 나를 결혼 7년 차 여성으로 만들었다. 연인의 사소하지만 진득한 배려심은 결혼 이후의 버라이어티한 삶을 버텨낼 방패막이 된다. 저녁 메뉴 고르기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부터 출산과 육아라는 인생을 뒤흔들 만한 계획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모든 선택의 동반자가 될 그의 말버릇과 어투에 주목해 보자. 그가 항상 내 안부에 관심이 있는지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결혼 후에도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혼 7년 차, 에디터) 결혼이란 한평생 온종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는 관계가 되는 일이다. 배우자의 성격이나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사소한 생활습관이 결혼 후 공동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모른다. 친구 부부의 경우는 여자는 아침형 인간, 남자는 올빼미형이었는데, 삶의 사이클이 다르다 보니 점점 부딪치는 면이 많아지더라. 주변을 보면 은근히 ‘잘 씻지 않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여자도 많다. 우리 역시 서로 다른 식습관 때문에 신혼 초기에 트러블이 있었다. 연애 시절에는 서로 맞춰주다 보니 짜고 매운 것만 좋아하는 그의 입맛이 문제가 될지는 몰랐다. 장을 볼 때부터 ‘이걸 사네 마네’ 투닥거리고, 늦은 시간에 남편이 야식을 시키거나 라면 끓여 먹는 걸 보면 절로 ‘샤우팅’이 나왔다. 어떻게 해결했냐고? 입맛은 쉽게 못 바꾸니 먹을 것은 각자 챙긴다. (결혼 6년 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