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도 젊었을 때 모습으로 살면 멍청이 아닌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세상에 대한 질문과 화두를 던지는 작가 이외수는 그 자신이 이 시대의 화두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 석 자에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논쟁 거리를 끄집어낸다. 세상의 중심으로 나선 이 전직 은둔 작가는 삶의 모양새만 달라졌을 뿐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이외수,자유로운,개성있는,독특한,작업실,집,인터뷰,화두,작가,논쟁,엘르,엣진,elle.co.kr:: | ::이외수,자유로운,개성있는,독특한,작업실

'에스티엘(S.T.L)’의 스노보드복 광고 촬영 중인 이외수.작가 이외수를 만나기로 한 건 10월 9일. 우연찮게도 한글날이었다. ‘지금 한글날은 그냥 기념일에 불과합니다. 국경일은 문자 그대로 국민과 국가의 잔칫날입니다. 당연히 공휴일이 돼야 합니다. 412,618 팔로어 여러분 모두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제정해서 온 국민이 즐기는 국경일이 되도록 간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 전날 이외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포스팅한 글이었다.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작가는 한글 예찬론자다. 오래전부터 민족 우수성의 핵심인 한글을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고, 필히 국경일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도 한글날에는 모든 일을 접고 쉰다고 들은 듯했다. 행여나 모든 일정이 취소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3시간여 거리를 내달려 밤이면 밤마다 사이버 세상을 호령하고 트위터 포스팅에 도가 텄다는 ‘도인’이 살고 있는 강원도 화천의 감성마을에 도착했다. 도시보다 한철을 먼저 사는 서늘한 산바람 속에는 정적과 고요가 부유했다. 주인은 부재 중이었고 굽이굽이 산자락이 주인 없는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정오에 예정된 ‘화천 산소길 걷기 행사’에 참석 중이라며 연락이 왔다. 인터뷰 뒤에는 자택에서 진행하는 광고 촬영 일정이 잡혀 있다고 했다. 서점가를 벗어나 인터넷, 방송, 광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대중과 온몸으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이외수의 하루는 바빠도 너무 바빴다. “그냥 놀이 삼아 하는 것들이지 일처럼 하는 건 거의 없어요. 글 쓰는 것 이외의 것들은 모두 즐기는 것에 해당합니다.” 휴무 간판을 내건다는 한글날에도 스케줄이 많다는 물음에 ‘작가’ 이외수가 마침표를 찍었다. 정작 자신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다지만 그의 장르 불문 종횡무진 대활약에 대중은 뜨겁게 반응한다. 작가의 뼈 있는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가 된다. 무엇보다 40만 명 이상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트위터는 그의 문장에 기존 미디어를 뛰어넘는 파괴력과 빠른 파급력을 실어줬다. 쌍방 소통을 본질로 하는 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작가를 소통의 달인에서 대가로 만들었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찾아갔던 대형 서점의 팬 사인회에서도 파워 트위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사인회를 하고 있습니다. 기념사진과 격한 포옹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포옹 행렬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며 실시간으로 포스팅이 올라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머릿속의 생각까지 탈탈 털어 보여준다는 의미의 소통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사고를 자신의 잣대로 해석하고 바꾸려는 이들에게도 노출된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작가는 PC 통신 시절부터 트위터를 하는 지금까지도 매일 보이지 않는 돌을 던지는 악플러들과 설전을 펼친다. 30년 넘게 이어온 은둔생활을 뒤로하고 그가 세상의 중심으로 나온 뒤에는 변절과 외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그의 변신이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끊길 줄 모른다. 기행과 파격의 작가와 만능 엔터테이너, 어느 쪽으로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작가 이외수를 그의 자택에서 마주했다. 방문을 닫자 광고 촬영 준비로 인한 소란함과 분주함은 실이 끊어지듯 뚝 하니 자취를 감췄고 찻잔에 차를 따르는 소리가 여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인터뷰에 앞서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카메라 앞에 서는 데 익숙하다. 예전에 사진을 하시는 육명심 교수께서 학생을 한 명 나한테 보냈다. 학생의 말을 들으니 학교에 나올 필요 없으니까 4년간 이외수만 찍으라고 했다는 거다. 처음에는 무척 거슬리고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려니 하게 됐고 카메라에 익숙해졌다. 사실 인터뷰하고 촬영할 때마다 어색해하고 경직되면 사진가들이 짜증 내잖아.꾸준히 인터뷰와 광고, 방송 촬영을 하고 트위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들 모두가 소통이란 키워드와 연결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두가 소통을 외치고 있지만 막상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데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란? 일방통행은 소통이 아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주입만 하고 상대의 메시지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았다 하더라도 의식과 삶이 질적으로 향상되지 않거나 변화하지 않으면 이 또한 소통이 아니다. 오고가는 것을 통해 삶의 질이 향상돼야 진정한 소통으로서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이외수란 이름에서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걸까? 트위터에 새벽반과 야간반을 개설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 글을 읽고 자야 잠을 잘 잔다고 그러더라. 출근 직후에 제일 먼저 내 글을 읽고 일을 시작해야 상쾌하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에게 난 짧은 글을 통해 인생 선배로서 메시지를 전하고 삶의 용기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나한테 기대를 걸어주고 내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 트위터 팔로어 수가 40만 명에 이른다. 그만큼 파급력이 엄청나다. 포스팅하기 전에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하나? 당연히 많이 한다. 여덟 번이나 수정해서 올린 적도 있다. 한 글자라도 오타가 있거나 콤마 하나 덧붙였거나 빠졌다고 해도 다시 올린다. 특히 지금처럼 철학 부재 시대에서는 문장의 정확성뿐 아니라 자유의 깊이와 논리의 정당성을 갖춘 글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더 어렵다. 펜으로 글을 쓰는 것과 컴퓨터 키보드로 쓰는 행위를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을까? 글 쓰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깊이 있는 사유가 필요한 글을 쓸 때는 종이 위에 쓴다. 컴퓨터에는 손가락을 놀리는 대로 즉각적으로 글이 써진다. 글이 가벼워지고 표면적 사유를 통해 산출된 것들만 보여줄 우려가 있다. 조금 더 무게감과 깊이가 있는 문체를 보여주고 싶다면 명상과 사유를 한 뒤 종이 작업을 해봐라. 그래도 트위터에 짧게나마 글을 쓰는 것은 발상을 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이 되지 않을까? 트위터는 일종의 습작 공간이다. 난 서술형 문체가 아니라 묘사 중심으로 글을 쓰는 편이다. 표현주의 기법에 가까운데다 한 단어, 한 문장을 다듬는 데 공을 들여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단편 하나를 쓰는 데 보통 한 달, 장편은 4, 5년이 걸린다. 그런데 지난 1월 1일에 단편을 하나 썼는데 일주일 만에 완성했다. 트위터를 했던 지난 1년의 수확인 것이다. 운동으로 따지면 트위터를 통해 글쓰기 트레이닝을 했다고 보면 된다. 요즘도 손으로 직접 글을 쓰기도 하나? 지금은 트위터와 홈페이지에 쓰는 글이 대부분이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려고 구상 중인 건 있다. 제목은 ‘미확인 보행물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로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가치관을 수정하거나 새롭게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작가의 의중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독서 방법이란? 마음으로 읽어야지 머리로 읽으면 안 된다. 예술은 지식이 아니라 ‘감성’을 전달한다. 그것을 ‘감상’할 줄 알아야 하는데 머리로는 절대 ‘감동’받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학교 교육의 논술과 언어 영역이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하는 탓에 자꾸 머리로 독서를 하려 든다. 이건 껍데기만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밤의 알맹이는 팽개치고 밤송이만 씹어먹은 뒤에 밤은 너무 따가운 열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작중의 모든 인물이 돼 봐야 한다. 머리로 분석하고 재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감성적인 글을 이성으로 해석하는 것도 일종의 난독증이다. 팔로어를 맺는 기준이 있다면? 우선 상대방의 블로그를 살펴본다. 최소한 포스팅이 20개 정도는 있고 자기소개도 있어야 한다. 자기소개와 사진이 없고 가입한 지 2, 3일밖에 안 된 사람이 팔로어를 맺자고 하면 의도를 알 수 없다. 언제 대화가 중단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통성명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이건 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하루에 보통 3000명 정도가 팔로어하자고 하는데 일일이 블로그를 확인하다 보면 하루에 20~30명 정도 가능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외수를 찾는 이유가 뭘까? ‘만만하네, 별거 아니네’라며 날 쉽게 보는 거겠지. 그런 부류에는 악플러들이 많다. 나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들어줄 것 같다며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이다. 예전에 도를 터득한 사람의 외모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했었다며. 무술을 예로 들 수 있겠지. 눈빛이 너무 무섭고 강렬해서 사람들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무술인은 하수에 속한다. 누군가를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실력을 쌓는 거라 고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난 아직도 공부가 부족해 악플러한테만은 홑이불이 되지 못한다. 가차없이 되받아친다. 말이나 소나 다 노래로 얼려 부릴 수는 없다. 소는 노래로 달랠 수 있어도 말은 박차를 가해야 달린다. 타블로의 학력 위조를 주장하는 네티즌과 설전을 벌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나? 타블로가 억울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도 분명 존재하는데 자기네 잣대만으로 재단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타블로의 가족과 갓난 어린아이까지 악담에 시달리고 저주받아야 하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한다. 자신은 피해를 입은 것도 없는데 괜히 증오하듯이 악담을 퍼붓는 이들이 있다. 인간이 그렇게까지 잔인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사람보다 위약적인 사람과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그런 이유로 타블로를 두둔했는데 나도 엄청 시달렸다. 하지만 어른이 혜안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억울한 사람을 감싸는 게 당연하다. 손해를 입고 미움을 받더라도 팔로어 수가 많은 내가 이런 일을 해야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온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개방적이다.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늘 산에만 오르는 알피니스트도 있고 때로는 들길을 걷는 알피니스트도 있다. 알피니스트가 지붕을 고친다고 해서 타락한 것도 아니다. 단지 취향과 개성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미래의 작가들에게 대중과의 소통은 필수다. 동서고금, 전후좌우,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경계를 넘나들 수 있어야 훌륭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소통은 자신의 생각과 의중을 통째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개인의 생각을 멋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텐데. 안티의 존재 자체는 인정한다. 하지만 같이 놀기 싫다. 악플러들은 트위터에서 블록을 쳐버린다. 트위터가 지닌 안전장치이자 매력적인 기능이다. 지금의 행보를 지지하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작가로서 변절과 외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늙어서도 젊었을 때 모습으로 살면 멍청이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젊은 시절의 몰골처럼 절망과 패배의식 속에 갇혀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더 바보스럽다. 점점 개선되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구원을 모색하고 사람들에게 구원을 제시하는 것이 작가의 진정한 역할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예술이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일수록 예술가들은 멋지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 허망하고 절망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을 쓰다 구원과 행복을 화두로 던지게 된 계기는? 온 가족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 가장으로서 책임의식을 느꼈고 일단 집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을 살 수 있는 돈을 어떻게 벌겠나? 글을 써야지. 이란 작품을 써서 돈을 만들었는데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붓을 꺾었는데 차마 글을 버릴 수 없더라. 그러면서 수도자적인 자세로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글을 쓴다면 구원을 모색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그때부터 구원과 행복에 대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간혹 행복의 본질을 곡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글을 통해 알리고 싶은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로 보장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야 행복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하지도 받을 수도 없다. 이때 내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필요한데 외적인 미는 세월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 퇴락하고 변질되고 만다. 내적인 아름다움은 그렇지 않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갈구하는 사랑은 결국 물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에서 구할 수 있는 거다. 만물을 사랑할 수 있고 만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여자란? 따로 뭐가 있겠어. 여자는 무조건 아름답지. 여자를 보면 기분이 좋은 걸 어떡해. 경험에 비춰보면 남자가 하는 것을 옳게 봐 주고 남자의 기를 살려주는 여자, 자신의 생애를 내맡길 줄 아는 여자가 아름답다. 우리 사모님 같은 여자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부부라면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면서 자신은 정작 어디에서 행복을 얻나? 조금만 자신을 낮추면 주위에 널린 것들 모두가 스승이 된다. 사람들은 세상의 잣대로만 사물을 보고 물질적인 가치를 계산한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저거 돈이 안 될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것에서 애정을 발견하고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고 꿈도 찾지 못한 채 치열한 경쟁 사회로 내몰리는 지금의 청춘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웃을 일이 많지 않다. 인생의 정석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는 거다. 그렇지 못하면 제대로 된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없다. 도매급으로 살든가 잉여인간으로 전락해 평생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때 실력을 연마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구원할 수 있는 무기와 필살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젊었을 때 가능하다. 나이가 들고 늙으면 감각도 떨어지고 용기가 없어 너무 늦는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얻으려는 거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뭔가를 만드는 기회를 갖지 못한 게 이유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엄마, 돈!” 이러면 다 해결되지 않나. 세상이 이러하니 창조력을 갖지 못한다. 직접 창조하고 모색하고 때론 실패를 하고 피를 흘리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할 수 없는 거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주어지고, 노력해서 손해 보는 사람도 없다. 불로소득을 꿈꾸는 건 강도 심보다. 행복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행복 전도사’로 불리다 얼마 전 남편과 동반 자살한 최윤희 씨의 삶은 진정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 만인을 사랑하고 만인에게 사랑받았던 그녀의 삶은 내 행복 이론과 딱 맞는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려 했다면 그건 더 보람 있는 삶일 테지. 더 이상 아픔을 견디지 못해 떠난 건데 혼자 떠나 보내기 싫어서 부부가 동반 자살을 하지 않았나. 사랑하면 행복한 거다. 그들 부부의 자살은 행복한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픔과 슬픔, 외로움 속에서 자살하는데 그들은 사랑하는 마음에 그랬으니까. 한 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고 방을 나서자 거실 곳곳에 조명과 카메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숨 좀 돌렸을까. 주위를 살피니 임시로 메이크업 룸이 차려진 곳에서 이외수가 분장을 하고 있었다. 그날 촬영은 스노보드 CF. 광고 아이템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헛웃음이 났다. 이외수와 스노보드복의 조합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긴 ‘파격’으로 이름난 그의 행보를 보자면 전혀 말이 안 되는 일도 아니었다. 한껏 갖춰 입은 스노보드복도 제법 잘 어울렸다. 산골의 어둠이 알맞게 익었을 즈음 시작한 촬영은 문지방 넘듯 훌쩍 밤을 새우고 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콘티는 막춤을 추는 상황. 예순이 넘은 CF 스타는 밥을 먹어도 두 끼를 먹을 시간 동안 두 팔을 돌리고 골반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지켜보는 사람이 지겨울 만큼 반복되는 촬영에 “이거 지난번 공중부양하던 광고보다 더 힘들잖아.”라면서도 “이왕 시작했으니까 끝을 내야 하지 않겠어!”라며 불같은 애드리브 연기를 풀어놓았다. 밤샘 촬영이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서도 혈기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쉬는 틈에 노래방 기계를 틀어 열창을 하고 즉석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펼치기도 했다. 40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고 매일 강원도의 맑은 공기를 체내에 숙성시킨 덕분인지 젊음으로도 새벽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픽픽 쓰러지는 한참 나이 어린 스태프들과는 흑백의 대조를 이뤘다. “그냥 놀이 삼아 하는 것들이지 일처럼 하는 건 거의 없어요. 글 쓰는 것 이외의 것들은 모두 즐기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가 처음 했던 말이었다. 노년의 작가는 깊어 가는 토요일 밤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