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장의 사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열 명의 사진가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패션 사진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패션 사진을 정의할 수 있는 단 한 장의 사진을 고른다면? |

1. 박기숙 “나에게 패션 사진이란, 아름다움이라는 커다랗게 뭉뚱그려진 형용사의 의미가 확장되고 세분화되도록, 그것에 미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놀이다.” By Park Ki-sookPark Ki-sook for January 2009 Issue사진 그대로, 눈 세상이었다. 찍으면서 아주 추운 겨울날,?아이 얼굴을 가진 모델 이솜이?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마시려고 친구 집을 찾아가는 모습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있는 일본 홋가이도 호타루의 기억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기만 하다. 그곳은 가족 말고 애인하고 도망가고 싶은 곳이었고,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건 처음 봤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나는 모든사람이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느끼고 모두를 바라본다. 못생긴 부분도 마찬가지. 그걸 숨기지 않을 때 가장 멋지다. 여기에 장소가 어떤 구체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리움도, 우울함도, 담백함도 좋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것을 끌어 내는 모델을 좋아한다. 언젠가 사계절의 아름다운 지구와 예쁜 할머니, 할아버지와 젊은이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동물들이 함께? 등장하는? 화보를 찍고 싶다. 2. 조선희 “나에게 패션 사진은 탈출구다.” By Zo Sun-hi Zo Sun-hi for Jin Tae Ok, 2007 처음 사진을 배웠을 때부터 목이나 팔 등의 관절에서 트리밍하지 말라고 배웠다. 이런 나의 고정 관념을 여지없이 깨준 고마운 사진 한 장이다. 지난 20년 동안 대체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모델의 목 위쪽 선으로 잘라내니 오히려 더 임팩트 있고 느낌 있는 컷이 탄생한 거다. 패션 사진은 인물에 포커싱을 해야 하는 포트레이트의 부담에서 벗어나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나에게 패션 사진은 재미있는 놀이다. 포트레이트든 패션 사진이든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눈빛이다. 사진 자체가 힘이 있고 감정이 있고 아름다워 보여야 옷도 빛이 난다. 아무리 시크한 애티튜드라 해도 눈에는 꼭 감정이 있어야 한다. 아들 기이가 소년이 되고 사진을 이해할 수 있는 그때가 되면 기이의 누드 사진을 한번 찍어보고 싶다. 3. 김현성“나에게 패션 사진은 의상과 스타일리스트와 모델과의 솔직한 소통이다.” By Kim hyeon-seong Kim hyeon-seong for 거의, 언제나처럼, 흰 벽 앞에 서서 조명 하나로 촬영한 컷이다. 꼭 이 한 장의 사진이라기보다 내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진이란 이런 느낌과 형식의 사진이다. 담아내고 싶었던 건 거기 서 있던 바로 그 모델과 의상. 과장하지 않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호한 환상을 창조하지 않는 것. 쓸데없는 부가 요소로 피사체로의 시선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 것. 영화 같은 상황 설정이나 극적인 느낌의 조명, 의미도 없이 과도하기만 한 감정 표현 등으로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패션 사진의 목적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피사체를 가장 솔직하고 용감하게 담아내고 싶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년 후나 같은 그런 사진을 찍고 싶다. 4. 류형원 “내게 패션 사진은 커머셜 사진의 범주 안에서 가장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무대다.” By Ryoo Hyung-won Ryoo Hyung-won for April 2009 Issue영국에서 현지 스태프들과 작업하며 감흥도 잔뜩 얻고 패션 사진에 대한 새로운 공부가 됐던 촬영이어서 그 중 한 컷을 골랐다. ‘Grand Illusion’이란 주제로 이틀 동안 5컷을 촬영했다. 그 정도로 한 컷 한 컷을 준비하는 과정이 길었다. 파란 방에서 의상과 모든 요소들을 같은 테마인 ‘Blue’로 통일감을 준 컷으로 패션을 통한 묘한 ‘Illusion’을 표현하려 했다. 패션 사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모델의 애티튜드, 조명, 전반적인 앵글의 구성, 절정의 순간. 이 모든 것들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게 내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젠가 부모님께서 정말 좋아하실 만한 두 분의 포트레이트를 꼭 찍어보고 싶다. 5. 홍장현 “나에게 패션 사진은 변덕이다.” By Hong Jang-hyunHong Jang-hyun for November 2006 Issue 이 사진을 고른 건 2차원의 사진에서 줄 수 있는 작은 힘이 느껴지는?‘내 사진’ 같아서다. 모자 화보 중 한 컷인데 순간적으로 본 이유의 옆모습과 얼굴을 과감하게 실루엣으로 표현해 사진 전체의 힘을 높이고 싶었다. 평소 패션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스태프들간의 조화와 문득 시선이 멈추는 어떤 순간이다. 나의 변덕으로 늘 취향도 바뀌지만 그게 나를 바꾸고 변화시킨다. 지루함에서 탈피하게 만든다. 가끔 힘들게도 하지만 그게 나고 또 내 패션 사진이지 않을까. 이렇게 잘 모르는 게 나다. 나는 세상을 모두 담고 싶다. 6. 최용빈 “나에게 패션 사진은 디자이너가 제안한 옷을 여러 스태프들이 재해석해서 만들어내는 판타지다.”By Choi Yong-bin Choi Yong-bin for May 2009 Issue 불에 타버린 대한민국 국보 1호에서 진행한다는 것만으로 긴장됐다. 복원도 끝나지 않은 공간에서 화보를 찍는다는 것 자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 차례 사전 답사를 다녀오고 시간대별로 남대문의 모습을 살폈다. 불탄 남대문을 돌고 또 돌아봐도 삭막하기만 한 풍경은 패션과 어울리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어 한숨만 나왔다. 하지만 밤 촬영을 결정하고 남대문의 기본 틀에?실제 크기의 사진을 대형 프로젝트를 이용해 비춰서 남대문을 살려내기로 했고 우여곡절 끝에?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사진이다. 상황이라는 것이 매번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대의 패션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어찌 보면 난해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의 옷을 일반인들에게 전하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서로 공감하고 호흡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 앞으로 정말 찍고 싶은 건 패션 사진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 그동안 표현을 아끼고 꺼내지 못했던 것들을 쏟아낼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사진, 세상을 뜨고 나서 공개하고 싶은 사진이다. 7. 김태은 “내 사진은 소울이 담긴 리듬이다. 앞으로도 오래 그랬으면 좋겠다.” By Kim Tae-eunKim Tae-eun for January 2009 Issue유승호라는 배우가 변화하는 시기를 포착한 사진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매체 노출이 거의 없던 때여서 신선했고 호기심도 생겼다. 눈에 감정이 그득하게 들어 있던 모습이 아직 청년은 아니지만 소년에선 벗어난 눈빛과 표정이 잘 표현된 사진이어서 골랐다.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소울을 담는 작업이다. 동시에 리듬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찍은 어떤 대상이, 그 작업을 함께한 ‘우리들’이, 그리고 내가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이 한 달 후에도 10년 후에도 한결같이 전달될 수 있는 그런 한 장의 사진을 찍고 싶다. 8. 권영호“나에게 패션 사진은 메시지다.” by kwon younghokwon youngho for Christian Dior‘패션 사진'이란 키워드를 듣자마자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진이다. 약 9년 전 당시 크리스챤 디올로부터 전시를 의뢰받아 립스틱을 주제로 만들어본 작품이다. 평소 패션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패션에 대한?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해석이다. 언젠가 짧은 영화와 같은 그런 사진 한 장을 찍고 싶다. 9. 오중석 “나에게 패션 사진은?사랑이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서 행복하다.” By Oh Joong-Seok Oh Joong-Seok for RADO, Advertorial, 최근에 작업한 라도(RADO) 시계의 애드버토리얼 사진으로 유난히 브랜드는 물론 스태프들과 커뮤니케이션에 공을 들였던 작업이었다. 상업적인 범주 안에서 아티스틱한 캐릭터와 매력적인 사진을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내가 찍는 모든 사진과 닮아 있어 그것들에 보람을 느꼈다. 한번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커뮤니케이션. 그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업이었다. 아직 나는 찍고 싶은 사진이 너무너무 많다. 10. 보리 “나에게 패션 사진이란 ‘놀이’ 혹은 ‘쇼핑’이다.” By Bo leeBo lee for 2006내가 패션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블랙 디테일’이다. 이 사진은 로케이션 장소의 상황에 쫓겨 빠듯하게 촬영했으나 한국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루이 비통이 그려내는 언밸런스함과 상징성이 마음에 들어 고른 사진이다. 진정한 트렌드는 가장 한국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거라 믿는다. 언제면 전 국민 단체사진 같은 걸 찍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